금융 지식으로 부자되기
| 도서명 | 금융 지식으로 부자되기 |
| 저자 | 최승노, 김인숙 |
| 발행인 |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
| 출판사 | 자유기업원 |
| 발간일 | 2019-12-20 |
| 요약 | 자유기업원 콘텐츠팀 |
1. 제1장
pp. 14–39
제1장 요약: 돈이란 무엇인가
유대인 번영의 비결: 돈에 대한 올바른 인식
전 세계 인구의 극히 일부(약 1,400만 명)에 불과한 유대인이 구글·애플·페이스북 창립, 글로벌 투자은행 운영 등 세계 경제·문화를 주도하는 배경에는 돈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있다. 유대인은 탈무드의 가르침에 따라 "돈은 나쁜 것도 저주스러운 것도 아니며, 사람을 축복해주는 것"으로 인식한다. 나라 없이 2천 년 이상 떠돌던 역사 속에서 돈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기에, 유대인에게 돈은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불안한 삶을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이었다.
"부유함은 견고한 요새이고, 빈곤은 폐허다."
돈을 긍정적으로 보는 태도의 중요성
우리 사회에서는 조선시대 이래 돈을 천시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내려왔다. 양반은 물건 값을 묻지 않았고, 장사를 천하게 여겼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가난을 대물림하는 문화적 유산이 되었다.
번식력을 가진 돈: 종자돈과 중력의 법칙
"Money attracts money(돈이 돈을 끌어온다)"는 원리에 따라, 돈은 쓰기만 하면 불어날 기회가 사라진다. 스노우폭스 그룹 김승호 회장은 종자돈을 '일정하게 모여서 다른 자본을 만들 수 있는 돈'으로 정의하며, 돈에는 중력의 힘이 있다고 설명한다.
왜 금융교육이 필요한가: 유대인의 사례
유대인은 하버드대 학생의 30%, 예일대의 25%를 차지하며,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30%를 배출했다. 《포브스》 집계 세계 400위 억만장자 중 60명이 유대인이며, 맨해튼 인구의 20.5%(31만 명)가 유대인으로 골드만삭스·로스차일드 등 글로벌 투자은행도 유대계 자본이다.
• 어릴 때부터 저금통, 심부름·청소·세차 등으로 직접 용돈을 버는 경험
•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쿠키·중고물품 판매 등 장사 체험
• 성년식(남자 13세, 여자 12세)에서 4~5만 달러(약 5천만~6천만 원)의 축하금을 받아 예금·주식·채권에 분산 투자하며 살아있는 금융교육 실습
• 성인이 됐을 때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난 돈이 대학 등록금과 독립 자금, 투자 종자돈이 됨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맹(financial illiteracy)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맹보다 더 무섭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돈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세 가지 주요 연구 결과가 있다.
세 연구 결과는 공통적으로 일정 수준의 소득과 자산이 행복감을 제공한다는 점을 확인해 준다. 돈은 의식주 보장, 질병·사고에 대한 방어막, 시간적 자유와 선택의 폭 확대를 통해 행복의 조건을 만들어준다. 조기은퇴(early retirement)가 가능한 것도 경제적 자유에서 비롯된다.
돈의 철학: 달란트의 비유와 세상을 이롭게 하는 돈
마태복음의 '달란트의 비유'(5달란트·2달란트·1달란트를 받은 세 종)는 돈에 대한 올바른 철학을 일깨운다. 장사로 돈을 두 배로 불린 첫째·둘째 종은 사람들에게 상품 구매의 편익을 제공했고, 그 이윤은 세상에 기여한 값어치의 대가였다. 반면 돈을 땅에 묻어둔 셋째 종은 세상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아 '무익함'으로 꾸짖음을 받았다.
2. 제2장
pp. 43–64
제2장 문명과 역사 속에서 — 천년 부국(富國)의 비밀
① '도시 제국' 베네치아 — 상업의 자유가 번영의 비결
《뉴욕타임스》가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린 곳으로 꼽은 베네치아공화국은 5세기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이민족의 침략을 피해 석호(Lagoon) 지역에 형성된 작은 도시국가였다. 농사지을 땅도, 특별한 자원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베네치아가 선택한 것은 지중해를 통한 동서양 중계무역이었다. 전성기에도 인구 20만 명을 넘지 못했지만, 활발한 해상무역으로 거대한 경제 강국이자 해상 네트워크의 주인공이 되었다.
상업이 번성하면서 대규모 자금 융통 수요가 커졌다. 기독교 교리상 대금업이 금지된 유럽인 대신, 이교도인 유대인이 대금업에 뛰어들었다. 유대인은 게토(ghetto)에 격리되어 살아야 했고 사회적 차별을 받았지만, 베네치아의 법은 유대인에게도 평등하게 사적 계약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장했다. 그 결과 대금업은 합리적 법제도 아래 금융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② 유대인은 어떻게 고리대금업자가 되었나 — 샤일록의 재평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악당 샤일록은 오랫동안 탐욕스러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전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근래에는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샤일록은 합의하에 차용증을 작성했고, 무리한 변제 기한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채무 불이행 시의 불이익도 충분히 설명하는 등 절차적으로 지켜야 할 것을 지켰다.
유대인이 대금업에 종사하게 된 역사적 배경은 구조적이다. 기독교 유럽은 유대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했고, 대금업은 기독교인이 할 수 없는 틈새시장이었다. 12세기에는 교황청이 대금업자의 기독교식 매장을 금지했고, 13세기에는 동물의 사체와 함께 유기되기도 했다. 유럽 전역에 흑사병이 창궐한 14세기에는 전염병의 원인을 유대인 탓으로 돌려 테러가 빈번했다. 오늘날 유대인이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압도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이러한 오랜 박해에도 굴하지 않은 집념 어린 금융 투쟁의 역사적 승리라 할 수 있다.
③ 정부 잘못을 이용해 돈을 번 조지 소로스
"시장은 끊임없이 불확실한 흐름에 노출되어 있으며, 불확실성에 베팅함으로 돈을 벌 수 있다."
워렌 버핏, 짐 로저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가로 꼽히는 조지 소로스(자산 약 27조 원)는 '악랄한 환투기꾼', '자본주의의 악마'로 불리기도 한다. 1930년 헝가리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공산화를 피해 영국으로 이주, 런던 정경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칼 포퍼 밑에서 철학을 수학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짐 로저스와 함께 헤지펀드 퀀텀 펀드를 설립했다.
저자는 소로스를 단순히 악당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한다. 화폐금융시장의 논리로 보면 실제 잘못은 인위적으로 화폐를 과대평가한 중앙은행에 있으며, 소로스는 잘못된 정부 정책이 누적된 상태의 허점을 이용해 이익을 얻은 것이라는 시각이다. 소로스의 투자 철학은 과감함이 특징으로, 확신이 드는 투자처에 최대한의 자본을 집중 투자하는 방식이었다. 2011년 펀드매니저를 공식 은퇴한 후에는 자선사업과 가족펀드 운용을 병행하고 있다.
④ 신용으로 세운 금융 왕국 — 로스차일드 가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금융 가문인 로스차일드가의 전체 자산은 약 3,500억 달러에서 2조 달러(한화 약 400조~2,300조 원) 사이로 추정된다. 그 시작은 18세기 프랑크푸르트 게토의 작은 골동품 가게였다.
이 장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베네치아의 법치, 유대인의 집념, 소로스의 시장 통찰, 로스차일드의 신용—이 모두가 자유로운 거래 환경과 신뢰를 기반으로 할 때 금융이 번성하고 부가 축적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보여준다.
3. 제3장
pp. 67–103
제3장 개요: 신뢰의 산업으로 발전한 금융
제3장은 금융이 단순한 돈의 거래를 넘어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지식산업임을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설명한다. 메디치 가문의 은행업, 로마의 국채, 신용카드, 보험, 선물·증권, 환율 등 다양한 금융 주제를 아우르며 민간 자유 금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① 르네상스의 주역, 메디치 가문
14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된 르네상스의 배후에는 메디치 가문의 막대한 금융 자본이 있었다.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 거장들은 모두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았다.
메디치은행의 수익은 피렌체 문화예술 전반에 투자되어 로렌초 성당, 산 마르코 수도원 등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유산들을 낳았다. 결국 르네상스라는 문화적 황금기는 금융 자본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했다.
② 로마는 어떻게 포에니전쟁에서 승리했나?
기원전 264년 발발한 포에니전쟁은 로마와 카르타고 양국 모두에게 극심한 재정난을 야기했다. 두 나라는 같은 문제에 서로 다른 해법을 선택했다.
청일전쟁에서도 채권을 활용한 일본이 규모가 큰 청나라를 이긴 사례는 채권 시장의 위력을 재확인한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회사채 비중이 줄고 국채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장기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우량기업의 자유로운 회사채 발행을 통한 설비 투자와 기술 개발 독려가 필요하다.
③ 신용이 만드는 현금 없는 사회
신용카드의 개념은 1888년 미국 작가 에드워드 벨라의 소설 《뒤를 돌아보며》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를 현실화한 것은 1949년 프랭크 맥나마라로, 식사 자리에서 지갑을 두고 온 경험을 계기로 '다이너스클럽' 카드를 창안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신용카드사의 출발이었다.
④ 불확실성에서 벗어나려면 — 보험과 레몬 시장
보험은 삶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위험에 대비해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적립한 자금으로 손해를 보상하는 제도로, 개인과 사회를 보호하는 안전망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정보 비대칭이 지속되면 우량 가입자는 빠져나가고 불량 가입자만 남아 보험사의 손해율이 치솟게 된다. 보험료 인상 → 우량 가입자 이탈 → 시장 붕괴의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보험사는 가입자 정보를 최대한 확인하고, 가입자는 정보 변동 시 고지 의무를 진다. 상호 정보 공유와 투명성 강화가 보험 시장의 신뢰를 높이고 건강한 시장을 만드는 핵심이다.
⑤ 알고 보면 쉬운 선물과 증권
1842년 브라질 허리케인으로 미국 커피업자들이 줄줄이 파산한 사건은 가격 변동 위험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이를 계기로 가격을 미리 정해 거래하는 선물(先物) 시장이 탄생했다.
현물 거래: 현재 가치를 기준으로 즉시 거래하는 방식. 주식·채권 등 증권 시장이 대표적이다.
⑥ 경제를 보는 창, 환율
1992년 9월, 조지 소로스는 파운드화 폭락을 공언하고 헤지펀드를 동원해 파운드화를 대량 매도했다. 영국 정부는 국고를 쏟아부어 방어했지만 역부족이었고, 결국 유럽환율메커니즘(ERM)을 탈퇴하게 됐다. 소로스는 이 과정에서 10억 달러(약 1조 2천억 원)의 수익을 거뒀다. 이 사례는 외환시장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전환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주요 수출기업은 환율이 100원만 변동해도 분기 영업이익이 수천억 원씩 달라질 만큼 환율의 영향이 크다. 변동환율제는 글로벌 경제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정부 개입으로 인한 경직성을 차단하는 데 유리하다.
"금융은 신뢰가 핵심 가치를 이루는 지식산업이다. 신용이 없는 사회에서 금융기업은 발전하기 어렵다. 금융은 계약을 믿고 시간을 넘어들며 이루어지는 행위다."
4. 제4장
pp. 106–121
제4장 요약: 정부가 금융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
제4장은 프랑스·영국의 역사적 비교, 싱가포르의 개방 정책 성공, 베네수엘라의 통제 경제 실패라는 세 가지 사례를 통해 재산권 보호와 시장 자유화야말로 국가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임을 역설한다.
① 프랑스는 왜 영국에 추월당했나?
17세기 초반까지 프랑스는 유럽 최강국이었다. 로마시대부터 이어진 도로망, 세계적 수준의 운하, 그리고 재산권을 명확히 보호하는 사법 체계가 상업을 활성화하고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1302년부터 운영된 삼부회(신분제 의회)는 성직자·귀족·평민이 협의를 통해 과세에 동의하며 재산과 권익을 지키는 제도적 장치였다.
"사유재산 제도는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고, 그들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② 자유를 좇아 흘러가는 돈: 싱가포르의 사례
인구 약 580만 명, 국토 718㎢에 불과한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현재 1인당 GDP 6만 달러를 넘어서는 아시아의 금융허브다. PwC의 '2016년 기회의 도시' 보고서에서 런던에 이어 세계 2위로 평가받았다.
19세기 초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던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선박 90%가 지나는 말라카 해협의 지리적 이점과 영국으로부터 도입된 자유주의 정책·무관세 정책으로 중계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965년 독립 후 영국 해군 기지 철수로 GDP의 20%, 고용 4만 명 이상을 잃는 경제적 위기에 봉착했다.
위기 앞에서 리콴유 총리는 "구걸하며 살 수는 없다"며 과감한 개방정책을 단행했다.
그 결과 1970년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도약했으며, 2016년 해외직접투자 약 770억 달러를 유치했다. 세계은행은 싱가포르를 세계 최고의 물류허브이자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로 선정했고, 세계 3대 신용평가사 모두 AAA 최고 등급을 부여했다. 현재 6명 중 1명이 백만장자일 정도다. 반면 정세 불안으로 자본이 유출되는 홍콩과의 대조는 "돈은 자유를 좇아 움직인다"는 명제를 실증한다.
③ 환율조작국으로 전락한 베네수엘라
세계 석유 매장량 1위 국가인 베네수엘라는 한때 중남미 최고 부국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국가를 파탄으로 몰았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통제하고, 2011년부터 50여 개 생필품에 가격상한제(SUNDEE 감독)를 시행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5. 제5장
pp. 136–163
화폐의 기원과 진화
고대 이집트에서는 맥주가 임금 지불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파라오부터 평민까지 즐겨 마셨던 맥주는 의사의 처방전 700건 중 100여 건에 치료약으로 포함될 만큼 귀하게 여겨졌다. 피라미드 건설 현장의 노역자들에게는 빵과 함께 4~5리터의 맥주가 지급되었다. 맥주 외에도 16~18세기 유럽 선원·군인들도 지위에 따라 3~7리터의 맥주를 급여로 받았다. 소금 역시 대표적인 물품화폐로, '샐러리(salary)'의 어원이 로마 병사에게 급여로 지급한 소금 '살라리움(salarium)'에서 비롯됐다는 추정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화폐의 진화: 물품화폐 → 금속화폐 → 지폐 → 디지털
금속 가공 기술이 발달하면서 물품화폐는 금속화폐로 빠르게 이행하였다. 기원전 650~600년경 리디아 왕국은 금·은 합금인 일렉트럼으로 최초의 동전을 만들었고, 로마 제국의 금화 솔리두스는 1,000년 이상 유통되었다. 이후 1630년대 골드스미스의 약속증서(Promissory Note), 1694년 잉글랜드은행의 인쇄 뱅크노트 발행, 1844년 은행법 제정으로 신용화폐 시대가 열렸다. 1930년대 이후 각국은 지폐와 금의 상환을 중지하고 국가가 법적으로 가치를 보증하는 법정화폐를 채택하였다. 오늘날에는 신용카드·간편결제·디지털 결제 시스템의 발달로 화폐는 실물이 아닌 데이터로 저장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닉슨 쇼크와 금본위제의 붕괴
19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은 외국이 보유한 달러를 미국의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는 국제결제 금본위제 파기를 선언했다. 이 '닉슨 쇼크'로 원유 가격이 급등하고, 달러 가치는 30%나 하락했으며, 세계 경제가 패닉에 빠졌다.
금본위제 파기의 근본 원인은 무분별한 화폐 발행이었다. 미국은 냉전 시대 소련과의 군사적 대치, 베트남 전쟁 자금 충당을 위해 달러를 과도하게 찍어냈고, 무역 적자까지 누적되면서 달러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금 보유량보다 훨씬 많은 달러가 발행되어 금태환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화폐를 마구 찍어내면 안 되는 이유: 초인플레이션의 공포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전쟁 배상금과 산업 기반 붕괴로 재정이 극도로 악화되자 화폐 인쇄기를 돌렸다. 그 결과 1918년 1달러당 8마르크였던 환율이 1923년에는 1달러당 4조 2,000억 마르크로 치솟았다(5,250억 배 상승). 인플레이션 최절정인 1923년 10월에는 한 달 사이 물가가 300배 상승했다. 사람들은 지폐를 땔감과 벽지로 사용하고, 돈을 세지 않고 무게로 달아 거래할 지경이 되었다. 이 경제적 고통이 결국 히틀러 나치 정권의 등장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초래했다.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떠한 경우라도 화폐적 현상이다(Inflation is always and everywhere a monetary phenomenon)"
프리드먼은 '신화폐수량설'을 통해 통화량이 물가와 국민소득을 좌우하며, 통화제도는 사소한 변화도 예기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만큼 민감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1930년대 대공황의 핵심 원인을 통화 공급량의 급격한 감축으로 지목하고,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보다 통화량의 적절한 조절과 시장 기능 활성화로 경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970년대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도 프리드먼의 이론에 따른 통화량 조절과 정부 지출 축소·규제 완화로 극복할 수 있었다.
화폐 안정성의 중요성: 역사적 교훈
서기 64년 로마 대화재 이후 네로 황제는 재건 자금 마련을 위해 은화의 은 함량을 줄이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은화 무게가 4.55g에서 2.3g으로 줄었고, 3세기 중반에는 은 함량이 초기의 1/5,000 수준까지 떨어졌다. 결국 로마 시민 누구도 은화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고, 발행 주체인 로마조차 현물로 세금을 걷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화폐 신뢰의 붕괴가 로마 제국 멸망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2016년 인도의 급진적 화폐개혁도 실패 사례다. 하룻밤 사이에 유통 현금의 86%가 사용 불가 상태가 되어 전국적 현금 부족 현상이 발생했고, 경제성장률이 0.4~3.3% 하락했다. 단순한 신·구권 교환에 불과했음에도 일방적·급진적 화폐 변경이 신뢰와 안정성이라는 화폐의 본질적 가치를 뒤흔든 것이다.
암호화폐: 새로운 화폐의 가능성과 한계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의 논문에서 시작된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이 통화가치를 훼손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암호화폐는 발행 수량이 정해져 있어 인플레이션이 없고, 발행·거래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며, 탈중앙화와 거래의 투명성을 특징으로 한다. 2017년 12월 비트코인 가격이 2만 달러를 넘으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2013년 독일 재무부의 합법 화폐 인정, 캐나다 밴쿠버의 첫 비트코인 ATM 설치 등이 이어졌다.
암호화폐는 현재 화폐보다 투자 대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며, 법정화폐를 완전히 대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화폐도 시장의 경쟁을 통해 안정성을 확보해야 하며, 경쟁적 화폐 발행이 더 질 높은 화폐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단순히 법정화폐에 반한다는 이유로 억압하기보다, 암호화폐가 내포하는 다양한 가능성에 주목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