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는 어째서 무너졌나: <노예의 길>

김지호 / 2022-02-25 / 조회: 128

큰 정부와 작은 정부 중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하이에크가 <노예의 길>을 집필하던 당시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역시 중요한 질문이다. E. H. 카가 말했듯 모든 역사가들은 자신이 처한 역사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패권국, 약소국 할 것 없이 곳곳에서 전쟁이 빈번하던 20세기 초중반을 지켜본 하이에크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한 정치적, 경제적 자유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했을 것이다.


피폐한 상황일수록 사람들은 해결 의지를 잃어버리고 문제를 대신 해결해줄 구원자를 찾는다. 전쟁이 무서운 점은 그 폭력도 있지만, 이념에 눈이 멀어 자기비판을 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에 있다. 이 책이 탄생한 20세기 중반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빠르고 명확하게 해결해줄 사람, 당장 자신들 손에 음식과 물을 쥐여 줄 사람을 찾았다. 하이에크는 시간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의문을 던진다. 정말 우리에게는 문제를 빠르게 해결해줄 구원자가 필요한 걸까.


하이에크는 이 책을 통해 거듭 말한다. 정부 계획의 목적은 오직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있고, 이외의 정부 계획은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을 넘어 사회의 발전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고. 개인의 자생적 힘을 믿는 하이에크의 철학이 잘 녹아 있는 말이다. 책에서 말했듯 근대 계획가의 첫 세대인 생시몽(Saint-Simon)은 자신의 사회주의 계획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가축처럼 취급당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사회주의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사람일수록 가축 비슷한 게 되었던 것이다.


사회주의가 주장한 새로운 질서란, 이해관계로 뭉쳐진 개인주의 공동체를 찢어서 민족 또는 이념 단위로 나눈 또 다른 선긋기에 불과했다. 안타깝게도 역사는 모범적인 면보다는 따르지 말아야 할 면을 더 많이 보여준다.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사회주의 계획 아래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개인의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사회주의는 하나의 이념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서구문명으로부터 패권을 가져오기 위한 몸부림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회주의자들은 하나같이 서구문명을 전복시키려는 야망을 품었고, 뒤이어 러시아와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개인주의는 집단주의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편협한 태도를 가지면 진정한 위협에 대해서는 장님이 되기 마련이다. 정부가 사회의 경제 과정을 내다보기 어려울수록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경제 과정을 통제하려는 잘못을 범한다고 하이에크는 지적한다. 우리는 왜 불확실성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걸까. 본능적으로 인간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주의와 계획 정부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 책은 여러 예시를 들어 설명하지만, 하이에크가 그저 큰 정부를 반대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대에 따라 큰 정부는 필요하다. 정부가 사회 전면에 나서서 힘쓸 일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장벽을 허물고 각자의 재능과 취향을 펼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지, 사람들 손에 당장 음식과 물을 쥐여 주기 위한 게 아닌 것이다.


소수가 다수에게 그들의 자유를 펼치도록 강제하는 것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는 정의롭다는 존 밀턴의 말을 인용하면서, 하이에크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역시 차선이라는 점을 깔끔하게 인정했다. 사회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가치는 다른 무엇도 아닌 자유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대체할 이념이 있다면 어째서 그 이념은 개인에게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해야 할까. 인간의 존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자유이기 때문이다.


<노예의 길>이 쓰인지 80여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읽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늘날 세계는 개인주의가 꽃피는 동시에 여러 국가들이 복지국가를 표방한 큰 정부를 향해 나서고 있다. 또한 환경보호나 동물복지 등 선한 영향력이 유행하는 동시에 그에 대한 회피와 반발 역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양가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 해결책이 정부의 통제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개인의 선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책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피상적인 감상일까. 오늘날 우리가 가진 자유가 하이에크의 시대보다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더 크다는 점에서 우리는 자유의 방향을 조정하는 데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간단한 해결책보다 중요한 것은, 느릴지라도 올바른 해결책이다. 정부와 개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고 있는 어려운 시국에 이 책을 만나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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