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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실을 베스트셀러가 아닌 고전에서 마주하고 배우다 : <노예의 길>

박용진 / 2022-02-25 / 조회: 602

필자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는 큰 서점이 있다. 그곳은 쇼핑센터에 있는데, 필요한 물건을 사러 쇼핑몰에 갈 때면 당연히 방문하는 장소이다. 이유는 서점 안의 베스트셀러들이 놓인 코너는 사람들의 관심사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대학생인 본인이 사회 트렌드를 파악하면서 진로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에, 근래에 진열된 베스트셀러의 유형은 대부분 재테크 서적이었으며, 가끔씩 ‘코로나 블루’와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들만이 눈에 띌 뿐이었다.


반면, 꾸준한 고전인 <노예의 길>은 어느 한구석 책장에 있었고, 사람들의 손이 타지 않았는지 겉표지에 먼지가 만져졌다. 실은, 본인도 얼마 전 대학 동기이자 같이 활동하는 독서동아리원이 “자유기업원에서 대회를 하니 동아리원 모두가 이참에 유명한 고전을 읽어보자”는 이야기를 하여, 평소 베스트셀러의 진열대에만 머무르던 나는 그래도 얼핏 제목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 책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노예의 길>을 읽으면서, 그동안 베스트셀러를 다독하며 ‘나름 세상의 흐름에 밝은 사람’이라 스스로를 칭찬했던 나 자신이 오만했으며, 오히려 사회를 바라봄에 있어 무지함의 자체였음을 바로 자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하이에크로부터 전염병의 위협과 함께 점점 사회주의 모습을 서서히 닮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 과정을 마주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 인류는 전염병의 굴레에 갇혀있다. 또한, 각국 정부는 방역 계획의 주체가 되어 ‘봉쇄’ 및 ‘상점 영업 시간제한’ 등으로 구성된 물리적인 지침을 세우고 이를 시행 중이다. 한국도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인원 및 시간제한’이 주요 골자인 방역을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염병은 쉽사리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으며, 계속되는 거리두기로 사람들은 지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지친다기보다는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자유와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생계를 위해 일하며 경쟁할 권리의 침해가 방역이라는 목적과 수단 아래 누적된 것이라 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본인은 이렇듯 <노예의 길>을 읽으며 현재의 ‘거리두기’ 방역이 자유의 침탈이라 느꼈던 것일까.


우선은 코로나가 발병하고 계획을 정부가 수립했으며, 전염병으로부터 하루빨리 안전을 얻는다는 목표에 따라 기본권침해를 용인한 국민들의 암묵적 동의와 함께 방역당국에 권력이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국은 반자유주의적인 방역 협조에도 감염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으며, 2주마다 중앙에서 발표하는 거리두기는 일관성이 없었고 다수의 사람에게 신뢰를 잃은 지 오래였다. 그리고 이따금씩 친정부적인 단체들의 위반에는 사과와 작은 처벌이었지만, 반정부적인 사람들의 행동에는 즉각적인 처벌로서 강력히 맞대응했다는 비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결국, 방역당국의 지침에 수반하는 원칙은 허울이었으며, 도리어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가 원했던 결과보다, 많은 사람의 피해만 양산되었다. 더불어 국민의 안전이라는 궁극적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모임인원 및 영업시간 제한’과 QR코드를 통한 출입은 자유주의에 역행하는 수단으로 사회주의와 흡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렇듯 사회주의로 향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하이에크로부터 어떤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방역 계획의 주체를 정부에서 개인으로 바꾸어야 함에 있다. 책에 따르면, 중앙의 전체주의적인 계획으로부터 개개인이 얻는 고통보다는 개인의 자유 속에서 겪는 손실이 낫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집단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선택 자유가 억압되어, 더 나은 길을 모색하기가 어려움을 말한다.


반면에 자유주의에서는 손해를 입더라도 향후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의 제한이 거의 없어서, 이는 모두가 전염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자유경쟁의 개인주의로 오히려 코로나 감염의 위험을 떨어뜨리는 상황을 만드는 기대가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중앙 당국의 계획은 각 국민들은 처지에 따라 정책을 받아들이는 정도와 감수하게 되는 손해가 각기 다르기에, 개인이 방역 주체가 되어 보다 자유롭게 계획을 만들어 실행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이렇게 현 상황을 보며 필자가 생각한 부분을 오래전 하이에크는 책을 통해 그가 목도한 현실과 중앙의 계획이 갖는 특징들을 나열하며 그것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또한, 생산의 통제는 소비의 통제가 된다는 내용은 현재의 방역수단 중 하나인 ‘영업시간 제한’이 정부의 생산활동 통제가 소비에도 영향을 끼치는 모습을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와 관련해 사고하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따라서 우리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정부 주체의 계획에 의해 자유주의가 사라지고 있음을 자각하며, 역사실 사실을 통해 복잡함이 가득한 고통의 감내에도 당국보다는 개인의 자유로서 문제해결이 옳았다는 교훈을 얻었다.


끝으로, 곧 있으면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리더를 선택하는 순간이 온다. 많은 사람이 알듯, 현 정부는 작은 정부보다는 큰 정부였다. 문제해결을 국가가 주도해 계획을 만들어 영향을 끼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코로나는 기존보다 정부의 역할을 더욱 확대시켰지만, 허둥대는 당국의 모습에 국민들에게는 불안감이 심어졌다. 더군다나 개인의 사회활동 자유를 침해가 방역의 수단이 됨으로써, 사회주의로의 변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렇다 하여 향후 다시 자유주의로 나아갈지 미지수이다. 그 이유는 사견이지만, 각 정당의 선거 공약들에는 정부 주도의 계획이 많기 때문이다. 자칫 이 상황은 자유주의 체제에서 많은 이들이 자유를 위해 겪는 고통이 감해질 거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렇지만 <노예의 길>의 민주주의가 전체주의로 흘러간 사례들처럼 우리는 그것들이 나쁜 결말을 맞이했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 개인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 국가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를 통해 사고하고 행동해야 함을 많은 사실이 방증하고 있다.


이에 자유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서 하이에크의 이야기를 유념해야 함을 자각하면서 서점의 베스트셀러 진열대만 서성거리던 20대 청년이 자유가 훼손되고 있는 상황을 깨닫도록 해준 하이에크와 이를 도와준 대학 동기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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