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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을 계획하는 것은 노예로 가는 길이다: <노예의 길>

서보민 / 2022-02-25 / 조회: 668

전 세계에서 포퓰리즘의 득세와 민족/국가주의의 부흥으로 자유주의의 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서 불평등한 소득 분배는 도덕적으로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사회의 평등하지 않는 결과에 대한 대중의 사회운동으로 이어졌다. 특이한 점은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국가주의적인 포퓰리즘의 추구는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20대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의 대선 공약을 살펴보니, 포퓰리즘이 난무하다. 포퓰리즘적인 공약은 대중의 표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시장개입인 포퓰리즘은 국가주의적이다. 자유주의에서 국가/관료주의로의 퇴보를 하이에크는 어떻게 바라볼까.


반세기전에 출간된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은 역사적 맥락과 명쾌한 논거를 통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비교하여 설명한다. 여기서 계획경제, 사회주의, 전체주의, 관료주의, 국가주의적인 파시즘과 나치는 자유주의의 반대편에 있는 용어이다. 민주 사회주의의 허구성, 통제사회와 개인의 자유의 상관성, 법체계와 국가의 임무를 통해 오늘날 당면한 사회문제 속에서 추구해야할 지향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역사는 반복 된다고 했던가. 지난날 과오를 반복하지 않고, 노예의 길로 들어서지 않기 위해 미래 세대를 위한 하이에크의 메시지는 친절하다.


민주주의이면서 사회주의인 유토피아 국가가 건설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스탈린 치하에서의 공산주의, 히틀러의 민족사회주의의 전개 과정은 유혈이 낭자했다. 그들은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 할 것이지만, 대량의 인명을 학살해 이루어낸 평등은 옳지 않다. 사유재산의 철폐를 통한 자산의 분배는 소수의 계획가들이 계획하며 모두의 이상을 대변할 수 없기에 다양성은 짓밟힌다. 공동선을 추구하던 계획자는 독재정권으로 나아가던지 아니면 경제계획을 포기해야하는 한계에 이른다. 사회주의정권에서 개인들의 의견이 공동체가 추구하는 선에 일치하도록  선전과 선동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민주사회주의는 도덕성이 파괴된 허황된 이상이다. 


통제사회에서 개인은 직업선택의 자유, 중요하고 덜 중요한 가치를 선택하는 자유를 앗아간다. 자본경제사회에서 돈을 수단화하여 개인의 이상을 이루지만, 통제사회는 개인을 수단화하여 공동의 이상을 추구한다. 경쟁사회에서 개인의 지위와 자유는 자신에게 달려있지만, 통제사회에서는 소수의 지휘자에 달려있다. 가난한 노동자는 통제사회에서 직업을 강요당하고 자유를 박탈당하지만, 부의 세습이 있는 경쟁사회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다. 


경쟁사회에서 법의 역할은 무엇인가? 법의 지배 아래 정부의 정책은 제한된다. 정부의 행동의 예측가능성과 확정으로 개인은 그만큼 더 자유롭고, 계획할 수 있다. 하이에크는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공장의 규제, 도로교통망의 공급에 따른 국가의 역할을 부인하지 않는다. 국가가 일할 분야는 사회에 유익하지만 이익이 없어 기업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일이다. 법체계는 원활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사기나 기만의 방지와 재산권보호등을 정비하여 국가의 자의적인 개입을 막는 것이다. 국가의 자의적인 개입은 특정 집단에게 특권을 부여한다. 


하이에크는 포퓰리즘은 실질임금의 하락과 인플레이션을 야기한다고 할 것이다. 언발에 오줌누기 식의 부의 재분배와 고용보장은 중산층의 이탈로 사회가 붕괴될 것이다. 특정 단체에 대한 보장의 약속은 그 밖에 단체에 대한 희생으로 이뤄낸 것이다. 오로지 노동의 생산성을 높여 부의 수준을 개선하는 길만이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산성의 확대로 부자만 향유하던 TV는 중산층 나아가 빈곤층까지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경쟁과 인센티브로 인한 노동성의 향상은 상품의 질을 높이고 값을 낮춘다. 중앙집권적 체제하에서 현대문명은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며, 노동의 질적 하락으로 의식주의 빈곤을 양성할 뿐이다. 


휄더린의 국가가 지상지옥이 된 것은 항상 국가를 지상천국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유념해야 한다. 이를 풍자한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서 인간의 착취가 없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를 외친 돼지감독은 타락으로 추락했다. 이상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권력의 추구는 또 다른 억압과 희생을 낳을 뿐이다. 역사적으로 평등을 추구하는 길에는 더 많은 대중의 희생을 낳았다. 중국 문화대혁명과 캄보디아 킬링필드 사건은 지식인과 지주를 학살하여 다수의 소작농에게 땅을 분배하자고 주장한 국가주의적 정권하에 일어났다. 평등을 추구하는 길은 학살을 불러오기에 평화로울 수 없다. 그 길에는 소수의 권력자와 평등한 노예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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