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정책중독 그리고 검은 코끼리

김성민 / 2023-07-18 / 조회: 2,857       시장경제신문

영국의 1960년대와 1970년대 경제 정책을 연구한 Leeds 대학의 케빈 틱스턴(Kevin Theakston)교수는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거나 반복하는 경향을 '정책중독(policy addiction)’이라고 표현 하였다.


Kevin은 정책중독이 정책 변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을 분석하고 영국 정부가 이 시기 동안 영국은 일종의 '정책중독’에 의하여 경제적 변화와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적절한 대응책을 채택하지 못하고, 정책의 효과적인 조정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검은 코끼리(black elephant)’는 예상은 가능하지만 무시되거나 무시당하는 큰 위협을 의미하는 말로 미래학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커다란 검은 코끼리가 날뛰면서 집안을 풍비박산 내거나 낼 것이 자명한데도 누구도 못본 척 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세계적으로는 기후변화에 의한 환경위기 문제, 국내적으로는 저출산에 의한 국가위기가 좋은 예일 듯하다.


위 두 가지 용어에 적합한 문제로서 필자는 우리나라의 농업, 특히 쌀 문제가 딱 들어맞는 사례라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나라 농정은 해방과 동시에 조선시대 길고 긴 소작제를 통한 지주들의 착취를 해결하고자 농지개혁을 통한 소규모 영세농 체제로 일시에 전환하였으며 80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농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수출경제를 힘으로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하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 농업과 농업인들은 70년대 녹색혁명을 통하여 주곡인 쌀을 자급할 수 있었고 80년대 백색(비닐하우스)혁명을 통하여 사계절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WTO(세계무역기구)라는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무역체제에 참가하였으며 농업도 일부 예외나 지연 적용을 받았지만 결국 개방경제로 진입하였다.


우루과이 협상이 합의된 직후 1993년 12월 15일 황인성 총리는 국회보고를 통하여 쌀 협상과 관련 ”이렇게 들어오는 쌀은 정부 또는 정부대행기관이 국내 쌀과는 완전히 별도로 관리토록 할 것이며 이를 수출가공용 등의 원자재로 사용하거나 일정량을 흉년이나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비축함으로써 국내시장 쌀값이 내려가게 하거나 생산농가에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정부는 현재의 양곡관리제도를 당분간은 그대로 유지하되, 농민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토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쌀 소비량은 1984년 이후 37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30년 전인 1991년 116.3kg에 비해서 21년 쌀 소비량은 56.9kg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개방경제 하에서 쌀의 국제가격은 우리보다 3배 이상 낮고 쌀 관세율은 513%로 고정되어 있다. 쌀 농사만 지을 수 있는 농업진흥지역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지금도 쌀 가격이 떨어지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쌀 과잉 상태를 누구나 알고 있지만 쌀 생산 지원 정책을 누구나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문제를 모르는 척한다. Kevin교수가 얘기하는 '정책중독’의 전형이다.


1993년 황인성 총리의 답변에서 이미 곧 다가올 엄청난 '쌀’이라는 검은 코끼리를 못 본 척하고 있다. 1995년 WTO체제를 국회에서 비준을 받으면서부터 이미 농업은 개방체제로 전환하기로 국민적 합의가 있었으며 이를 위해 농업에 많은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당국은 쌀이 '검은 코끼리’가 되어 농업과 국가를 뒤흔들고 있도록 방치하면서 무책임한 정책중독에 걸려 있는 듯 하다. 검은 코끼리는 더욱 커지고 난폭해져서 최근에는 야당주도로 국가 의무매입 의무화 조항을 법조문화한 양곡관리법을 국회에서 통과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무효화 시키면서 일단 '검은 코끼리’를 가두기는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쌀 문제의 해법은 너무나 간결하고 당연하다. 공급은 줄이고 수요는 늘리면 된다. 우선 수요 측면을 보자. 우리 쌀에 대한 수요를 의미있는 수준으로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국내 수요는 쌀 1인당 소비량 감소 추세와 인구 감소 전반으로 보면 오히려 지속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국외 수요 즉 수출은 서너배가 비싼 쌀 가격을 고려할 때 일부 특수 수요를 제외하고는 불가능하다.


결론은 국내 공급을 줄이는 것이 명확한 답이다. 국내 공급은 쌀 생산면적과 면적당 생산량이다. 생산면적은 농지를 줄이는 데 있고 농업진흥지역을 완화하여 다른 용도로 농지활용을 하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 단위 생산량을 줄이는 것은 고품질 쌀 생산을 위하여 정부 종자 보급체제를 중단하면 효과가 클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정책 수단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시장 메커니즘’을 되살려 내는 것이다. 수많은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 얽혀 있는 문제를 정부가 제도과 예산으로 아무리 해결하여 해도 점점 더 문제만 키울 뿐이다. 2030 미래세대들이 쌀을 '독’이라 여기고(탄수중독) 국내출산율 전세계 최저인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의 정책을 지속한다면 검은 코끼리는 점점 더 커지고 난폭해져만 갈 것이다.


쌀 문제를 시장으로 가져가야 한다. 시장의 가격이 생산과 소비에 신호를 주도록 하여야 한다. 쌀이 시장에 나온 후에 수급조절을 하는 하수 중의 하수 정책을 지속하기 보다는 생산 이전에 수급 조절하는 것이 상수이며 이는 시장 메커니즘을 살려내는 것이 가장 쉬운 길이다. 이번 정부에서는 시장과 자유를 기조로 여러 분야의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 노동, 연금 3대 개혁에 이어 농정개혁을 주문하고 싶다. 국민에게 '짐’이 되는 농업이 아니라 '힘’이 되는 농정을 기대한다.


이제 검은 코끼리를 집 밖으로 내보내야 할 때다.


김성민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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