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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정부평가] 교육 정책: 통제와 규제가 사라져야 교육에 희망이 보인다

신중섭 / 2007-08-23 / 조회: 9,114
시작하는 말

많은 기대를 안고 출범한 참여정부는 이제 몇 개월을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참여 정부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곱지 않다. 교육 부분도 예외는 아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2007년 2월 13일 한국경제학회 회장 퇴임사에서 “우리 나라 교육은 사경을 헤매고 있으며 이런 상황은 참여정부 4년 동안 조금도 개선되지 않은 채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고 하면서 “유치원 때부터 고3 때까지 학생들은 주입식 공부에 내몰리고 있지만, 대학이 평가하는 신입생들의 학력은 나날이 저하되고 있다.”고 우려하였다. 미적분도 모르는 자연과학 지망생, 아무런 사회의식도 갖지 못한 사회과학 지망생들이 넘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 교육 현실에 절망한 다수의 학부모들은 조기유학이라는 매우 비정상적이고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현실에 적응하고 있다고 하였다.


참여정부의 교육 정책에 동의하느냐의 여부를 떠나 우리는 정운찬의 지적에 동의한다. 왜 이런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는가? 이 글은 우리 교육의 문제점과 원인, 대안이 무엇인가를 탐색할 것이다.


참여정부의 교육 철학


정권교체와 교육정책 변화


오늘날 우리는 세계화 및 정보화 시대의 도래로 지식기반 사회에 살고 있으며 국가의 경쟁력은 교육에 의해 좌우되며,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가 창의적인 인재 양성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창의적 인재 양성이 시대의 요청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게 되었다.


국가의 모든 정책은 시대의 변화와 정권 교체의 영향을 받는다. 교육 정책도 예외는 아니다. 교육 정책은 특히 정권 교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우리의 교육 정책의 변화가 주로 정권 교체 시기와 동일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화 이후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로 교체되면서 다양한 교육 개혁안이 제시되었다.


참여정부도 시대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어 분권과 자율, 참여를 내세우면서 교육의 공공성과 복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육 정책을 수립하였다.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여러 가치를 혼합한 참여정부의 교육 정책은 근원적으로 자기모순을 포함하고 있었다. 겉으로 자율을 내세우긴 하였지만 실질적인 자율은 보장되지 않았고, 교육의 공공성과 교육복지확대를 앞세우면서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을 보장하는 교육의 자유는 자취를 감추었다. 계층간 지역간 교육격차 해소, 교육 복지, 교육의 공공성 강화, 학벌 타파, 대학서열완화를 앞세운 교육 평준화 정책으로 교육 현장은 더욱 황폐해졌다. 참여정부가 실현하려고 한 결과들은 모두 강력한 국가 개입과 강제를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의 자유는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 공교육 안에서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없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보완책으로 사교육을 선택하거나 아예 이 나라를 떠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초래되었다. 문민정부에서 구호처럼 등장한 교육의 자유와 수월성의 실현, 교육에 경쟁원리의 도입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참여정부의 교육 정책


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백서에 나타난 새 정부가 구상하는 ‘교육개혁과 지식문화 강국 실현’의 국정과제는 ▲참여와 자치를 통한 교육공동체 구축 ▲공교육 내실화와 교육복지 확대 ▲과학기술교육의 질적 고도화 ▲창조적 문화역량 강화 ▲문화적 창의성을 기반으로 문화산업 육성 ▲지식정보사회의 전면화 추진을 근간으로 이뤄졌다.


추진과제로 △참여와 자치를 통한 교육공동체 구축에는 ㆍ교육혁신기구설치 ㆍ단위학교의 참여와 자치 확대 ㆍ대학운영의 민주성과 자율성 강화, △공교육 내실화와 교육복지 확대에는 ㆍ공교육의 공공성 강화와 공교육의 내실화 ㆍ학벌타파와 대학서열완화 ㆍ교원의 전문성 강화 및 승진제도 개선 ㆍ유아 및 특수아 학습권 보장과 지역간 교육격차 해소 △과학기술교육의 질적 고도화에는 ㆍ초ㆍ중등 과학교육 강화 ㆍ이공계 대학교육의 질적 제고가 설정되었다.


분과별 주요 정책 사업 가운데 교육부 소관에는 1)학교장 임용제도의 다양화 2)학교운영위원회 기능의 선택적 강화와 교사회ㆍ학부모회ㆍ학생회ㆍ교수회 법제화 3)사립학교법 개정 4)교육혁신기구 5)교육행정정보시스템 추진 계획 6)WTO 교육시장 개방 7)지방교육자치제도 개선 8)유아교육법 제정 9)교원승진제도 개선 10)‘국립대학 운영에 관한 특별법’ 제정 추진이 포함되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공교육의 내실화와 교육복지의 확대 부분이다. 이 부분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역할 재정립, 사교육비 경감, 평준화 정책의 기조 유지와 자립형사립고ㆍ특목고ㆍ자율학교에 대한 실태 파악과 본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는 학교 정책의 마련이다. ‘대학운영의 민주성과 자율성 강화’에는 대학 자율의 핵심인 대학입시와 대학운영의 자율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교육 전반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의 확대는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


대통령 취임사에서는 과학기술의 부단한 혁신, 교육의 혁신을 강조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저마다의 소질과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나아가 소득격차를 비롯한 계층간 격차를 좁히기 위해 교육의 개선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교육의 혁신의 내용으로 과학기술의 발전, 입시제도의 개혁, 교육 격차 해소를 설정한 것이다.


국가 역할의 강화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신년 연설인 “참여정부 4년 평가와 21세기 국가발전 전략”에서 교육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정리하였다. 노대통령은 연설에서 교육의 목표를 “경쟁력 있는 사람, 창의적인 사람, 사람다운 사람, 훌륭한 공동체 시민을 양성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그는 현재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초ㆍ중등교육과 대학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초ㆍ중등교육의 문제점은 ▲ 과중한 입시부담과 성적부담 (학생) ▲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학부모) ▲ 기회의 불균형, 계층이동 기회 상실 (사회) ▲ 교단붕괴, 공교육 부실 문제 (교사)이며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 공교육 정상화를 제시하였다.


대학교육의 문제점은 ▲ 수요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교육, 경쟁력 없는 교육이며 해결책으로는 ▲ 입시개혁 ▲수요자 중심의 교육 ▲ 경쟁력 있는 교육 ▲ 경쟁과 평가 수용 ▲ 개방을 통한 경쟁력 강화 ▲ 유학 수요 흡수를 제시하였다. 나아가 ▲ 뽑기 경쟁에서 가르치기 경쟁으로 ▲ 한 줄이 아니라 여러 줄로 경쟁하는 사회 ▲ 서열화가 아닌 적절한 차별화 ▲ 학연사회 해소 ▲내신과 교단의 신뢰 회복 ▲ 교사의 자질 향상을 위해 경쟁과 평가 도입 ▲ 다양화 시대의 교육 수요의 충족을 위해 학교의 개방도 필요하다고 하였다.


참여정부 교육 정책의 기본은 교육격차 해소이다. 이를 위해 다양하고 균등한 교육의 기회 제공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자연스럽게 교육에서 국가 역할의 강화로 이어진다. 교육은 시장이 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확고한 평소 신념도 국가의 역할 강화에 한 몫 하였다. 2006년 12월 7일 ‘시드니 동포 간담회’에서 인적 자원을 최고급 인력과 보편적인 인재 수준으로 나누면서, 최고급 인력의 확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보편적인 인재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가 마음 속에 두고 있는 ‘보편적 인재 수준’이 무엇을 말하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문맥에 비추어 해석하면 한 나라 인력의 일반 수준을 말하는 것 같다. 그는 인재 수준을 높이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작은 정부가 되기 위해서 국가가 해야 할 기본적인 책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교육을 국가의 기본적인 책임 가운데 하나로 설정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시장이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시장이 교육을 할 수 있습니까? 교육 투자는 20, 30년 뒤에 본전이 나오는 것인데, 어느 기업이 그걸 내다보고, 그중에 내가 몇 사람을 쓸 지 모르는데, 교육 투자를 할 수 있겠습니까? 국가가 해야 합니다.”


사교육비 경감과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그동안 정부가 시행한 ‘방과 후 학교’ 지원 확대, 저소득층 학생 대상 대학생 멘토링, 유아교육비 지원 확대,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제도 개선, 다문화가정 자녀 교육 지원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2007년도 교육부의 주요 업무도 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교육 정책의 1차적 고려 사항을 사교육비 경감과 교육격차 해소에 두면 국가의 역할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목적 달성이 국가의 책임이라는 의식이 강화되어 교육의 중심에 국가가 자리 잡으면 규제가 강화되고 교육 사회 보장제도가 확충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교육에서 학생과 학부모, 경쟁이나 효율은 사라진다.


교육격차 해소와 교육복지


정부는 교육 문제의 초점을 계층간ㆍ지역간 교육 양극화에 맞추고 이것의 해소를 국가 정책의 제1목표로 삼고 있다. 이것은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학생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경제와 같은 외적 여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관점이다. 머리가 좋거나 노력하는 학생이 아니라 자본의 혜택을 많이 보는 학생이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있는 “공부 잘하는 아이의 일반적인 조건”이라는 글에서는 공부 잘하는 아이의 일반적인 조건으로 “돈 많이 버는 아빠, 영어되는 엄마, 집에 있는 엄마, 좋은 동네, 입시정보에 빠른 엄마, 정보망과 인맥이 있는 엄마, 무턱대고 비싼 사교육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 시장에서 현명한 소비를 하는 엄마, 다른 것은 몰라도 공부와 대학입시에 관해서만은 대화가 이루어지는 가정, 독립적이긴 하나 반항적이지 않은 아이, (교사, 간호사, 경찰, 어른 등 평범한 꿈이 아니라) 전문직 이상을 꿈으로 하는 아이, 집중력이 뛰어난 아이, 간혹 이기적이기까지 한 아이, 함께 나누는 것보다 경쟁에서의 승리에 목마른 아이, TV와 컴퓨터 게임을 자제하는 아이, 면학분위기가 괜찮은 학교, 오래 공부시키는 학교, 교사 말을 잘 듣거나 그런 것처럼 행동하는 아이”를 제시하고 있다. 공부 잘하는 아이의 조건은 거의가 외부적인 것이다. 자신감, 집중력, 경쟁심, 자제력과 같은 학생이 가지고 있는 능력도 궁극적으로 환경에서 나오며 환경을 결정하는 것은 돈이라는 것이다. 돈이 곧 학생의 실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불가피하게 교육의 평등을 외치고, 평등을 깨는 모든 교육 정책을 거부하게 된다. 대학입시와 관련된 3불정책, 평준화 정책, 자립형사립고ㆍ외국어고 억제 정책과 연결된다. 교육에서도 국가를 통해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내세우는 것이 바로 교육의 공공성이다. 교육의 공공성은 시장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 학교에 선택의 자유를 주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교육이 아니라 획일적인 교육을 실현함으로써 교육의 공공성은 실현되며, 필요한 비용은 모두 국가가 부담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들이 목표를 삼는 것은 동일한 교육을 완전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교육의 다양성, 자율성, 선택, 경쟁, 효율 등은 ‘기득권에 의한, 기득권을 위한, 기득권의 교육’을 위한 가치일 뿐이다.


사학법 개정도 이런 노무현 정부의 국정 철학에 기초해 있다. 스스로의 건학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설립된 사학의 자율성을 침탈하는 개정사학법은 국가주의의 한 양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학에 대한 평가와 감시는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임을 고려할 때 개정사학법은 사학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


참여정부 교육정책의 결과


노무현 대통령의 자체평가에도 불구하고 교육정책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높지 않다. 행정개혁시민연합(공동대표 백완기, 김성남)이 교수, 연구원, 기업인, 문화예술인 등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육에 대한 평가는 낙제점이다. 교육 분야에 대한 평가는 41.2점(2005년) → 52.6점(2006년) → 42.3점(2007년)으로 2006년도에 ‘사학법 개정’ 등으로 인해 전년대비 11.4점 상승하였지만 2007년도에 다시 10.3점 하락하여 2005년도 평가 수준으로 회귀하였다. 100점 만점에 42.3을 받았으면 낙제라도 한참 낙제다. 왜 이런 평가가 나왔을까.


공식적인 표명과는 달리 참여정부의 교육 정책은 공교육 정상화를 표방한 사교육 억제, 평준화 정책 유지, 교육에 대한 통제 강화로 일관되었다. 공교육 정상화는 결국 부유층에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교육정책은 결코 실시하지 않겠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참여정부가 최후의 일각까지 지키려고 하는 3불 정책도 따지고 보면 경제적ㆍ사회적 상위 계층에게 유리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교육을 제로섬으로 보고 “우리가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좋은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유리한 지위에 있는 계층의 이익을 억제하기 위한 교육 정책은 결과적으로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죽음의 트라이앵글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누가 만들었는가. 이 말은 학생들이 만들었지만 이 현상을 만든 것은 교육부다. 공교육 정상화에 주문이 걸린 교육부는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획기적인 입시안을 대학에 제시하였다. 정부는 ▲내신 반영 비율 확대 ▲수능ㆍ논술 비중 축소를 목적으로 2008년 대학 입시제도를 개혁하여 대학에 강요하였다. 대학은 이에 대응하여 변별력이 없는 수능과 내신을 극복하기 위해 ▲논술 비중 확대 ▲통합논술 실시라는 입시안을 준비하였다. 그 결과가 바로 내신, 수능, 논술이 만든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다. 학생은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걸렸고, 학부모는 사교육비 증가로 허리가 휠 지경이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공교육 정상화라는 명분이 불러온 참화이다.


늘어나는 계층ㆍ지역ㆍ학교 간 학력 격차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있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경우를 지칭하는 말이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을 때 그 사회는 활력이 넘치고 어려운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다. 모든 부모는 자식이 더 좋은 교육을 받아 자기보다 더 좋은 직업을 갖고 더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한다. 자식만은 자신의 처지보다 더 낫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주변의 성공 사례는 이런 희망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이 일류 대학 총장이 되고, 대통령이 되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제 더는 아니다. 지역간 계층간, 학교간 학력 격차가 커지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상위 소득 계층과 하위 소득 계층 사이에 교육비 지출의 차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교육비 격차가 학생들의 학력에 영향을 미치고 학력 격차가 학생의 인생 능력에 영향을 미쳐 교육 격차가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비 양극화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소득과 학력의 대물림은 계층간 이동을 어렵게 하여 사회의 역동성을 해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가 교육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밤낮 외치고 있지만 왜 더욱더 심화되는지 안타깝다.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은 양극화 해소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려운 계층을 위한 예산을 늘리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모든 정책을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려운 학생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여 대학에 3불 정책을 강요하고, 지방 자치단체와 얼굴을 붉혀가면서까지 과학고, 자립형사립고, 외국어고 신설을 허용하지 않는 데도 왜 교육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는가.


아무리 3불 정책의 폐지를 주장하고, 특수 목적고 신설을 지지한다고 해도 교육양극화를 찬성하는 사람은 없다. 노무현 정부는 교육 정책의 목표를 잘못 잡았다. 정책의 올바른 목표는 양극화 해소가 아니라 어려운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정부는 어려운 학생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무조건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율적으로 강한 의지를 가지고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에 반대할 수는 없다. 양극화 해소가 아니라 빈곤층 자녀의 교육기회 확대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어느 사회나 잘 사는 사람들이 있고 못사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정부의 책무는 못사는 사람들을 잘살게 하는 것이지 잘사는 사람과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잘사는 사람들 때문에 못사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 때문에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부와 교육은 제로섬이 아니다. 이것들이 제로섬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믿음이 교육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양극화는 노무현 정부 교육 정책의 당연한 귀결이다.


늘어나는 사교육비와 조기 유학


참여정부가 일관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온 것은 사교육비 감소이다. 참여정부에서 교육 정책의 판단 기준은 그 정책이 얼마나 교육의 목적 실현에 기여할 것인가가 아니라 사교육비를 줄일 것인가 늘릴 것인가였다. 사교육비를 늘릴 가능성이 있는 정책은 나쁜 정책이고 그렇지 않은 정책은 좋은 정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는 꾸준히 증가하였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참여정부 이후 전체 교육비에서 사교육비 비중은 2003년 50.7%, 2004년 52.2%, 2005년 53.2%로 꾸준히 늘어났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입시ㆍ보습학원도 66.1%나 증가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기 해외유학에 따른 학부모의 교육 부담도 증대되었다.


유학을 위한 한국 탈출이 사회적 관심사가 된 것은 오래된 일이다. 간혹 인천공항에 나가보면 어린 학생들이 큰 가방을 끌고 해외로 떠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린 학생을 해외로 보내며 걱정으로 근심어린 표정을 참는 부모들도 볼 수 있다. 방학 때가 되면 공항은 해외에서 돌아오는 학생들로 붐빈다.


참여정부의 교육 정책과 조기 유학생의 증가 사이에 정확한 함수 관계를 따질 수는 없지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5년 3월부터 2006년 2월 말까지 유학을 위해 출국한 초ㆍ중ㆍ고등학교 학생은 2만4천 명으로 전년도보다 24%가 증가했다. 7년 전보다는 13배나 증가했다. 해외 조기 유학은 개인의 선택이니 무엇이라고 할 수는 없다. 부작용도 많지만 장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계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학력 저하와 학교 폭력의 증가


어느 대학에서 면접시험 때 아버지 이름을 한자로 써보라고 했더니 태반이 쓰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말의 많은 부분이 한자에서 왔다는 것을 상기하면 한자를 모른다는 것을 그냥 넘길 문제는 아니다. 그것도 대학생 후보가 아버지 이름도 한자로 쓰지 못한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한자만 문제가 아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중하위권 전국 사립대 자연계 학생들에게 고교 수학문제를 풀게 했더니 100점 만점에 평균 30점이 되지 않고, 중학문제에서도 60점 미만의 낙제 점수가 나왔다고 한다. 보통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능력이 대학 교육을 받을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중하위권 대학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세칭 명문대에서도 학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학에서 다시 기초 수학과 과학을 가르쳐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새로운 전문 지식을 따라 잡아도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기초 교육의 부실이 누구의 잘못 때문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정부가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학력만 저하된 것이 아니다. 학교 폭력이 늘어나고 있다. 학교 폭력은 나날이 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잔혹해지고 있다. 왜 그런가? 교육부가 현재와 같이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을 전면적으로 결정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은 교육부가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에 교육부가 시행하려고 하는 일련의 정책에 대해서는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할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교원평가제ㆍ검인정 교과서 확대ㆍ교장 초빙제ㆍ교육 자치제이다. 정부 주도의 정책 변화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만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교육 자율과 다양성을 향하여


3불 정책이 왜 문제인가


교육부는 자율을 표방하기는 하지만 실현할 의지는 없다. 교육부의 이러한 태도는 지난 2004년 12월 대학자율화 추진 계획의 발표에 잘 나타나 있다. 교육부가 대학을 자율화하려면 교육부가 대학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대학의 자율에 맡기면 된다. 교육부의 역할을 없애는 것이 곧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대학이 모든 사항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 대학의 자율이다. 그 당시 교육부는 ‘본고사,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를 도입할 수 없다’는 3불 정책은 폐지할 수 없다고 했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없다면 대학은 가장 중요한 자율권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에 자율적인 학생 선발권이 없다는 것은 곧 대학이 국가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가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통제하는 것이 모든 교육 문제의 진원지이다. 대학이 교육할 학생을 스스로 뽑아 교육하면 교육은 다양화되고 학생들의 선택도 넓어진다. 획일적인 입시 선발 제도 아래에서는 모든 학생을 한 줄로 세우기 때문에 무한경쟁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대학입시를 다양화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말만 그렇다. 획일화된 다양화, 교육부의 감독을 받는 다양화는 다양화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교육부는 교육부가 제시한 지침을 따르지 않는 대학에 대해서는 행정적ㆍ재정적 제재를 가하겠다고 겁을 주고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정부의 대학 규제를 잘 지적하였다.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지적한 3불정책, 대학 정원 규제, 학부생 감축ㆍ교수확보율 상향 조정 등 제한ㆍ등록금 규제ㆍ사학에 대한 규제를 철회하는 것이 우리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교육과정을 왜 국가가 결정하나


최근에 문제가 되었던 제7차 교육과정 개편만 해도 그렇다. 교육부총리는 교육과정 개편을 ‘교과 간 권력 투쟁’으로 묘사했다. 결국 교육부는 고교 예체능 과목 필수 지정을 백지화했다. 그러나 초ㆍ중등학교에 다닐 때 예체능 과목 교육은 강화되어야 한다. 특히 체육은 인생살이에서 필수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운동을 습관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왜 교육과정에서 권력 투쟁이 발생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권력 투쟁이 발생하는 원인은 국가가 그것을 하나로 통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초ㆍ중ㆍ고등학교 학생들이 배워야 할 어떤 종류의 교과목을 어떤 내용으로, 얼마나 가르칠 것인가를 결정한다. 물론 교육부가 결정하는 과정에서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다고 하지만 듣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설사 권력 투쟁이 없이 만장일치로 교육 과정이 채택되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거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교육과정에 800만의 학생이 모두 만족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교육과정의 선택을 개별 학교가 결정하도록 하면 학생의 만족은 높아진다. 학생에게 좋은 교육이 무엇인가를 정부가 결정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최소의 국가 공통 교육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최소화에 그쳐야 한다. 국가가 좋은 국민을 양성한다는 명분으로 학생들을 한 방향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교육과정을 정부가 선택할 것이 아니라 학교나 학생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과정과 관련된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이다.


그렇게 되면 학교의 교육과정 선택은 학생의 입장을 고려하게 된다. 교육과정의 결정 과정에는 다양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스며들게 되고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아져 교육의 효과가 증대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연구할 것이다. 지금과 같이 정부가 다 정해주는 상황에서는 학생이나 교사의 자발적 참여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교사와 학생의 관심과 노력을 반영하지 않은 교육과정은 죽은 교육과정일 수밖에 없다. 우리 교육이 활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학생은 학교 선택권을 가져야 하고, 학교는 학생 선발, 교육과정, 교육 방식에 대한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


교육부의 교육독점을 타파해야 한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조기 유학생이 생각하는 한국 학교의 나쁜 점은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 ▲너무 공부만 시킨다 ▲많은 학생 수로 인한 개인능력 무시 ▲교사 체벌 ▲학생들의 교사 무시 ▲깊이 있는 인간관계 불가능 ▲질서가 없다 ▲낙후한 학교시설이고, 미국 학교의 좋은 점은 ▲개인의 개성 존중 ▲하고 싶은 공부, 필요한 공부를 한다 ▲자유롭고 자율적인 분위기 ▲발표 및 대화 중심의 재미있는 수업 ▲ 원하는 과외활동 가능 ▲교사가 학생을 존중한다 ▲친구 사이의 유대 관계가 좋다 ▲ 학교폭력이 없다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 ▲교사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미국의 교육제도는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학교마다 차이도 많이 날 것이다. 미국에도 한국보다 못한 학교도 많다. 왜 형편없는 미국 학교로 몰려오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미국인들도 많다. 한국 학교의 좋은 점도 있을 것이고 미국 학교의 나쁜 점도 있을 것이다. 핵심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어느 나라 학교에 있는가가 아니라 나쁜 점을 없애고 좋은 점은 어떻게 도입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좋은 점을 도입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학생이나 학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자율성을 부여하면 다양한 교육이 가능할 것이고, 학생은 자신에게 좋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율성을 해치는 것은 정부의 통제다. 정부의 통제는 교육을 죽이는 치명적인 독약이다. 통제는 창의성과 다양성을 말살한다. 규제가 있는 곳에는 창의성과 다양성이 존재할 수 없고, 창의성과 다양성이 살아 숨쉬지 않는 곳에는 경쟁과 협력이 있을 수 없고 다만 독점만 있을 뿐이다. 교육에서 경쟁의 반대는 협력이 아니라 독점이다. 경쟁은 협동의 다른 차원일 뿐이다. 우리는 경쟁하면서 협동하고 협동하면서 경쟁한다. 우리가 교육에서 추방해야 할 것은 경쟁이 아니라 독점이다. 교육부에 의한 교육 독점을 타파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제1과제이다.


우리 교육이 직면한 문제들이 모두 노무현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교육도 복잡한 사회 현상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모든 현상은 여러 가지 원인이 결합하여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현재 우리 교육 문제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한다. 국가가 스스로 무한 책임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국가가 무한 책임에서 해방되는 길은 활짝 열려 있다. 교육에서 손을 떼고 학생, 학부모, 학교에 자율을 주고,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육은 더 이상 국가 책임이 아니다. 국가가 통제와 책임을 버리는 순간 우리 교육에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2006년 4월 1일 현재 우리 나라의 학교는 총 19,793개, 학생은 11,915,021명, 교원은 156,494명이다. 이들은 교육의 목적과 방식에 대해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신년사에서 교육의 목표를 ‘경쟁력 있는 사람, 창의적인 사람, 사람다운 사람, 훌륭한 공동체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미국의 어느 대학은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습득해야 할 능력으로 독창적ㆍ창조적 사고, 학구적 동기, 자기 규율, 자립심, 솔선, 자신감, 지적 능력, 아이디어의 표현력, 성장잠재력, 실패 극복 능력, 따뜻한 인간성, 타인에 대한 관심, 정서적 성숙 등을 포함시켰다.


이와 같은 능력을 키워주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설정할 수도 있다. 설사 우리가 추상적인 교육의 목적에 합의한다고 할지라도 구체적인 교육 정책에 합의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쟁점이 되어온 평준화, 3불 정책, 교원 평가, 대학의 자율, 특수 목적고 확대가 이러한 교육 목적을 실현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 합의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교육 정책을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때 갈등과 불만은 필연적이다.


남겨진 대안 가운데 하나는 하나의 정책을 모든 사람들이 따르게 하는 국가 통제의 교육 방식을 버리는 것이다. 일단 국가 통제를 줄이면 다양한 형태의 교육 대안들이 제시되고 실행될 것이다. 즉 교육 자율을 실현하는 것이다.


신중섭 / 강원대 사범대 윤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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