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프라이스제,제조업자의 가격표시는 자율에 맡겨야

정기화 / 2010-07-22 / 조회: 6,188

정책 배경: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도입


open price 제도란 제조업자가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상품에 대하여 권장소비자가격, 희망소비자가격 등과 같은 가격표시를 할 수 없는 제도를 말한다. 실제 소비자가격은 소매점이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할 때 정해지지만, 그동안 제조업자들은 관행적으로 권장소비자가격을 제품에 표시하여 왔다. open price 제도가 시행되면 제조업자는 상품에 가격을 표시할 수 없으며, 소비자는 소매점이 표시 또는 제시한 가격을 고려하여 구매하게 된다.


이 제도는 「소비자 기본법」제12조 제2항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고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업자의 부당한 행위는 금지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소비자정책심의위원회는 특정 품목에 대하여 권장소비자 가격 등의 표시행위를 사업자의 부당한 행위로 지정 고시하고 있다. 권장소비자 가격이 실제 거래가격보다 높게 설정되어 대폭 할인된 것처럼 소비자를 호도하고 있으며 제조업자가 소매점의 가격결정에 개입할 여지가 있어서 소매점 간의 가격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는 여기기 때문이다. 


권장소비자 가격의 금지는 1999년 처음 도입되어 일부 품목을 중심으로 시행되었는데, 2009년 7월 8일 「가격표시제 실시요령」이 개정되면서 247개 품목이 추가되어 2010년 7월 1일부터 전면 시행되고 있다.


자가 상품에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는 것은 업계의 오래된 관행이었다. 미국의 경우 연방 대법원이 1911년 제조업자가 소매점의 판매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행위 즉 재판매가격 유지(resale price maintenance)는 경쟁을 제한하는 것으로 판결하였는데, 그 후 제조업자들은 강제력이 없는 권장가격(manufacturer‘s suggested retail price)을 제품에 표시하여 왔다. 


일본도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는 것이 오래된 관행이었는데, 1970년대 공정거래위원회가 일부 전자제품의 소매점이 권장 소비자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할인판매하자, 권장소비자가격의 표시가 부실표시(misrepresentation)에 해당한다고 판정하였다. 그 후 유통구조의 변화 등 경제여건의 변화를 반영하여 1990년대에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open price제도를 적극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6년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당시 소비자보호 또는 공정한 거래를 위하여 필요할 경우 제조업자에게 가격을 표시할 것을 명할 수 있었다. 또한 1982년 「소비자보호법」이 제정될 당시에도 제조업자에게 소비자가 알아야할 기본적 사항을 표시하도록 하였는데 1986년 법이 개정되면서 이러한 사항에 성능, 규격, 성분, 용도 등과 함께 가격도 이에 포함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제조업자들은 관행적으로 희망소비자 가격 또는 권장소비자 가격을 제품에 표시하여 왔다.


결국 open price 제도는 그동안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용인되어 오던 사업자의 관행을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저해하고, 소매점의 가격결정에 영향을 주어 경쟁을 제한하는 것으로 여겨 금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사업자간의 경쟁촉진과 가격인하를 유도하고 재판매가격의 유지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권장소비자 가격의 표시가 재판매가격의 유지를 초래하더라도 그것이 소비자에게 손실을 초래하는지 불확실하다. 또한 비록 권장소비자 가격이 거래가격보다 크게 높더라도 그것이 소비자의 비합리적 구매유도를 초래하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법적 강제보다 선진국의 여러 나라처럼 사업자의 자율적 선택에 맡겨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책내용: 권장소비자 가격 표시의 금지


 


소비자 심의위원회에서 의결(1999.3.5)한 「권장소비지 가격 등의 표시금지를 위한 사업자의 ‘부당행위‘ 지정기준」 제3조(부당한 행위의 유형)에 따르면 다음의 3가지 경우를 부당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첫째, 대리점체제의 유통구조가 일반적인 품목으로서 사업자가 표시한 권장소비자가격 등의 표시가 가격경쟁을 제한할 가능성이 높아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는 행위, 둘째, 사업자가 의도적으로 권장소비자가격 등을 높게 표시하여 소비자들로 하여금 높은 할인율을 적용받는 것처럼 인식시켜 구매를 유도하는 행위, 셋째, 기타 산업자원부장관이 권장소비자가격 등의 표시행위로 소비자피해가 우려된다고 인정하는 행위이다.


첫 번째 기준은 사업자가 권장소비자가격의 표시를 통하여 대리점의 가격경쟁을 제한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것은 재판매가격의 유지를 우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기준은 권장소비자가격을 높게 표시하여 높은 할인율을 적용받는 것처럼 하여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것은 부실표시(misrepresentation)를 우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격의 표시가 사업자의 부당한 행위로 인정될 때에는 주문장관은 이를 권장소비자가격 등의 표시가 금지되는 품목으로 선정하여 고시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소비자보호원 등 전문기관의 실태조사를 통하여 선정하되, 사업자 대표와 소비자 대표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고 있다. 


1999년 당시 소비자보호원이 30개 품목 3,000여개 상품에 대해 실태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권장소비자가격과 실제 거래가격과의 차이가 평균 23.2%였으며, 할인점 일반시장 백화점순서로 차이가 컸다. 이에 따라 평균보다 차이가 큰 품목에 대하여 권장소비자가격의 표시를 금지하도록 제안하였다.


1999년부터 일부 품목이 고시되기 시작하여 올해부터 279종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는데 시기별로 고시된 품목은 아래와 같다.

<권장소비자가격 표시금지 품목>

연도
(품목)

가전제품

의류

가공식품

기타

1999 (12종)

* (5종) TV, VTR, 유선전화기, 오디오, 세탁기

* (4종)신사정장, 숙녀정장, 아동복, 운동복

 

* (3종)운동화, 러닝머신, 롤러블레이드

2000
(22종)

* (6종추가)냉장고, 에어컨, 전자수첩, 카세트, 캠코더, 전기면도기

 

 

* (4종추가) 손목시계, 카메라, 가스레인지, 침대


 

2004
(32종)

* (3종추가)청소기, 전기밥솥, 전자레인지


 


 

 

 

* (7종추가)컴퓨터 데스크탑, 컴퓨터 모니터,노트북 컴퓨터, 장롱, 책상, 소파, 장식장

2009
(279종)

기존 유지

* (247종, 전 품목)


남자외의(8종),여자외의(41종), 스웨터?셔츠(14종), 유아복(16종),내의(38종),파운데이션(36종),양말(32종),잠옷(10종), 모자(38종), 장갑(14종)

* (4종신설)


라면, 과자,


빙과류,


아이스크림류

기존 유지



정책평가: 제조업자의 가격표시는 자율에 맡겨야


가격은 소비자에게 대단히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 유통시장의 발달이 미약한 시절에 소비자는 상품에 대해 신뢰할만한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그때에 권장소비자가격은 제조업자가 소비자에게 상품의 가치를 알리는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졌다. 이것은 소비자에게도 구매를 결정할 때 참조할 수 있는 기준가격의 역할도 하였다. 물론 제조업자는 이를 고려하여 권장소비자가격의 결정을 마케팅의 한 수단으로 여기는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경제 환경의 변화는 권장소비자가격의 정보제공기능을 크게 약화시켰다. 대형 할인점의 등장과 정보 통신수단의 발달로 소비자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제품의 가격을 비교할 수 있다. 그리고 구매를 결정할 때 권장소비자가격보다 소매점이 표시한 가격을 더욱 신뢰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소비자에게 권장소비자 가격은 정보제공 기능을 상실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권장소비자가격의 표시를 금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첫째, 권장소비자 가격과 실거래가격과의 차이는 경쟁의 제한이나 소비자의 구매유인과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권장소비자가격의 표시금지 품목을 선정할 때 대부분 실제 거래가격과 권장소비자가격과의 차이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소비자의 기호가 다양해지고, 기술진보가 신속히 일어나면 제품의 수명은 짧아진다. 이에 따라 신상품이 출하하면 예전에 출하된 상품의 실제가격은 크게 하락한다. 권장소비자가격과의 차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의 가격 차이는 합리적인 것이다. 제조업자가 이전 상품의 권장소비자가격을 빨리 조정하면 되겠지만, 이를 조정하는데 큰 비용이 든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것이 경쟁제한 또는 소비자의 손해를 초래하지 않는다. 


둘째, 권장소비자가격이 소비자의 잘못된 구매를 유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제조업자가 높은 소비자권장가격을 정하여 소비자의 구매를 유인하는 것은 거의 효과도 없을 뿐 아니라 있다하더라도 단기에 그친다. 실 거래가격이 권장소비자가격과 차이가 클수록 소비자들은 권장소비자가격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으며 이를 기준으로 구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권장소비자 가격의 신뢰도가 낮을수록 소비자가 잘못 유인될 가능성이 낮다. 


셋째, 권장소비자 가격의 표시가 재판매가격의 유지를 초래하더라도 항상 소비자에게 손해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권장소비자가격은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소매점의 판매가격을 설정할 수 없다. 나아가 재판매가격을 설정하더라도 그것이 소비자에게 이익일 수 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2007년 Leegin 사건의 판결을 통하여 재판매가격에 유지행위가 소비자의 이익을 증대시킬 수도 있다고 판결하였다.


지리적 독점을 누리는 일부 소매점은 독점가격을 설정하고자하는 유인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권장가격은 이들에게 사실상 최고가격으로 작동하여 왔다. 제조업자는 이들 소매점이 설정하고자 하는 독점가격보다 낮게 소비자권장가격으로 정함으로써 매출을 증가시킬 수 있는데, 이것은 소비자에게 이익이다. 이런 경우 권장소비자가격의 표시를 금지하면 지리적 독점을 누리는 일부 소매점은 가격을 인상할 것이다. 경쟁업체가 상대적으로 적은 주택가나 대중 교통시설 주변, 관광지 등에서 소매점들이 예전의 권장소비자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설정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권장소비자가격의 표시 금지는 소비자에게 이익을 주는지 불분명하고 일부이지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강제적으로 권장소비자 가격의 표시를 금지하기보다 제조업자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합리적 이유 없이 실제거래가격과 권장소비자 가격이 지나치게 큰 괴리를 보일 경우 공정거래법의 부실표시(misrepresentation)로 규제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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