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권 자율화를 통해 지방 분권을 활성화해야

윤상호 / 2021-08-23 / 조회: 1,458

1991년에 부활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는 지난 30년 간 지속한 발전을 거듭해 왔다. 7차례의 지방선거를 통해 지역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자치제도인 풀뿌리 민주주의가 기반이 확립되었으며 지방자치단체는 수많은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정책의 주요 주체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정부가 수립하고 실행하는 수많은 정책 중 지방자치단체의 참여가 배제되어 있는 정책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방자치제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지방분권의 실제적인 모습은 매우 부끄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다. 특히 지방분권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생각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분권 현황을 살펴볼 시 더욱 그러하다. 세입과 세출로 구분해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현황을 살펴보면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희소하며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중앙정부이 결정하는 정책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수입과 지출이 중앙정부의 정책에 따라 대부분 결정된다는 사실은 지방분권이 아직 나아가야 할 길이 매우 멀다는 것을 시사한다.


본고는 지방분권의 활성화를 위해 차기 정부가 추진해야 할 재정분권 과제를 선제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재정분권을 포함한 지방분권의 활성화는 지역주민에게 지역 내 정책의 결정권, 즉 자치권을 부여하는 지방자치제도의 정착을 위한 필수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또한 중앙정부에 집중되어진 권한을 분산시켜 중앙과 지역 간의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는 정치적인 개혁 과제로도 평가받을 수 있다. 특히 지방분권의 활성화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재정립을 통해 지역주민 맞춤형 공공서비스를 적시적소에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점을 감안할 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재정분권의 필요성


지방분권은 국가가 통상적으로 행사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행정권의 일부를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여 지역주민의 의사에 따라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도록 주민자치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지방분권은 정치, 경제, 복지 등 모든 사회적 현상을 포괄하는 함의를 내재하고 있으며 지방분권의 활성화 또한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반면 재정분권은 주민자치권의 행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는 지방자치단체의 수입과 지출에 대한 자율적 행사를 의미해 지방분권을 바라보는 시각을 불문하고 지방분권의 활성화를 추진하며 항시 논의가 수반되어야 하는 필수적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재정분권을 위해 우리나라에서 모색된 제도적 개혁방안은 주로 국세의 이양을 통한 지방세의 확충으로 추진되어왔다. 지방세는 지방자치단체에 부과와 징수의 권한, 즉 과세권이 귀속된 재원으로 세외수입을 제외할 시 지방자치단체의 유일한 자주재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에 이양된 행정권의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행사를 위한 자주재원의 기반을 수립하는 방안으로서 지방세의 확충은 진정한 자치분권을 위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따라서 지방세의 확충으로 설정된 그동안의 재정분권 개혁방안은 최소한 방향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다만 재정분권을 위한 국세의 지방세 이양은 국세인 부가가치세의 세수 일부를 지방세인 지방소비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 방안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부과, 징수와 같은 부가가치세의 과세권을 종전과 동일하게 중앙정부에 귀속된 현행 과세 체계를 유지한 상태에서 부가가치세의 일부 세수가 지방소비세로 명칭되는 회계 상의 변화를 의미한다. 즉 국세의 일부가 지방세로 전환되어 우리나라의 전체 세수에서 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분명히 증가하나 지방자치단체의 과세자율권 측면에서 개선되는 부분이 거의 전무하게 된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적인 행정권 행사를 위한 자주재원의 확보가 재정분권의 핵심요소라는 점을 감안할 시 부가가치세의 일부 이양을 통한 지방소비세의 확충은 매우 미완적인 재정분권 방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지자체에 자율적인 재정권을 부여해야


새로운 정부의 재정분권은 세수 측면에서 지방세의 양적 확충만을 고려하는 단순한 방식에서 벗어나 지방자치단체에게 실질적인 과세권과 함께 세출 자율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즉 지방자치단체의 과세권 확충과 함께 지방교부세와 같은 지방재정조정제도와 국고보조금 제도의 개선이 조화롭게 추진될 시 지방분권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재정분권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지방분권의 활성화를 위해 차기 정부가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재정분권의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방자치단체에게 지방세의 세율과 감면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과세자율권을 부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조세체계는 국세와 지방세로 이원화된 체계로 구성되어 있으나 지방세의 세율과 감면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여전히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중앙정부에 귀속되어 있다. 조세법률주의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으로 흔히 치부되나 조세법률주의는 정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른 국민의 불필요한 조세 부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제도적 장치이다. 지방분권의 활성화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에게 자율적인 과세권을 부여하는 방안은 조세법률주의에 반하지 않으며 오히려 중앙정부에 집중되어진 권한을 주민자치권을 통해 견제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조세법률주의의 본래 목적과 일치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둘째, 지방교부세는 모든 국민에서 최소한의 동질적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재원을 지방자치단체에게 제공한다는 본래 목적에 충실한 제도로 개편되어야 한다. 현행 지방교부세 제도는 본래의 취지와 달리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을 수평적으로 조정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으며 소방, 부동산과 관련된 정책적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 반면 지방교부세의 재원보장 기능은 점차 악화되고 있으며 배분안의 결정방식은 점차 복잡해지고 있다. 지방교부세의 수평적 조정과 같은 다른 정책적 기능을 분리해 본래의 목적인 재원보장 기능에 충실할 수 있는 단순화된 제도로 개편되어야 한다.


셋째, 지방자치단체의 수평적 재정 형평화 기능을 수행하는 일원화된 도구의 설치가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된 지방교부세를 포함해 지방재정의 형평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지방소비세의 세수배분, 국고보조금 차등보조율, 지역상생발전기금 등이 도입되었다. 반면 수평적 재정 형평화라는 한 개의 목적을 위해 다수의 제도가 운용되고 있어 각각의 제도에 따른 수평적 형평화 정도를 가늠하기 어려우며 제도적 복잡성만 가중되고 있다. 수평적 형평화를 위한 별도 기금의 설치 등 제도의 일원화를 통해 단순화를 추진해야 한다.


넷째, 국고보조금 제도의 개편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의 세출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국고보조금 제도가 포괄보조 방식으로 전환되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중앙정부가 결정한 국고보조사업에 지방재정이 자동으로 투입되는 징발적 모습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방재정이 가장 많이 투입되는 정책사업이 지방자치단체의 자체사업이 아닌 중앙정부가 결정한 사업이라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유지되고 있다. 징발형 보조사업에 대한 총량제를 도입해 지방자치단체의 세출 자율성을 보장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재정부담에 대한 책임과 권한이 명확한 국고보조금 제도로 개편해야 한다. 


지방분권을 위한 정부의 역할


지방분권의 활성화는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를 자신의 일부정책을 수행하는 하부조직으로 인식하는 순간 소원한 과제로 남게 된다.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의 다양한 지역적 요구를 수행하고 지역적 대표성을 표방하는 독립적인 단체이며 수평적 파트너십을 통해 정책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중앙정부와 함께 책임지는 동반자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정부는 지방분권의 활성화를 위해 우선 지방재정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재정분권을 추진해 지역주민에게 맞춤형 공공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전지전능한 정부는 어느 세상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의 다양한 지역적 요구를 반영하는 지방자치단체들 간의 발전적 경쟁이 가능하도록 자신의 권한을 축소하고 지방분권의 활성화를 모색하는 새로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상호 /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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