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개선방안

박효종 / 2002-08-30 / 조회: 5,953

No.012

헌법상으로 볼 때 우리 대통령은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과 함께 동렬의 지위에 있는 행정부의 수장에 불과하며 대외적으로만 나라를 대표할 뿐이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대통령은 모든 국사를 총괄하며 만백성을 다스리는 ‘나랏님’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또 단순한 인식상의 문제를 넘어서서 실천상의 관행으로 굳어졌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 검찰, 법원도 법대로 집행하면 될 것을 굳이 대통령의 결단을 기다린다. 또 국민들도 대통령이면 무엇이든 다할 수 있는 초인(超人)으로 믿고 있다. 그동안 맺힌 한도 풀어주고 까다로운 민원사항도 해결해주는 등, 이른바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에서조차 절대군주의 권한을 의미하는 ‘대권(大權)’을 대통령의 권력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한다. 또 남의 아내에 대한 일반적 경칭이 ‘영부인(令夫人)’인데, 이 말도 대통령의 아내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렸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

제왕이란 누구의 견제도 받지않고 누구에게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존재다. 제왕은 왕정시대에 백성을 다스리는 존재였다. 제왕과 같은 절대적 권력을 가진 존재의 필요성은 홉스가 ‘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 정당화시킨 바도 있으나, 민주국가의 시민이 제왕적 대통령을 반길 이유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명목상의 대통령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내각책임제보다 대통령책임제를 운영하고 있는 이유도 대통령에게 강한 리더십을 기대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민주사회의 대통령이라면, 세 가지 속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국가적 과제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이며, 그러면서도 권력분립이나 견제와 균형의 정신에 맞게 행동하는 존재다. 마지막으로 ‘정부실패’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다.

문제는 우리사회의 제왕적 대통령이 이 세 가지 영역에서 모두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대통령이 혼자서 권력을 움켜쥐고 아무와도 공유하지 않음으로 오히려 정치권력의 비효율이 발생하게 된다. 권력의 독점은 국가적 과제를 처리하는 관점에서 보면 매우 효율적으로 운용될 것 같지만, 실은 곧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어떤 일도 잘 할 수 없다”는 역설(逆說)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삼국지의 고사를 보면 유비가 죽은 후 국정의 대소사를 도맡아 처리하는 충정을 보이는 제갈공명에게 오히려 몸만 분주해지고 국정에도 비효율이 초래된다는 점을 들어 비위가 몸을 편히 쉬면서 아랫사람들에게 일을 맡길 것을 간곡히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대통령제는 권력의 독점으로 말미암아 국가 운영에 필요한 정치적 판단과 능력을 집중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둘째로 제왕적 대통령제는 삼권분립이나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위배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삼권분립은 국정의 비효율을 어느 정도 감수하려는 ‘불신의 제도화’다. 권력의 문제에서 권력소지자의 선의를 기대하며 권력의 집중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 민주주의정신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는 액튼(H. B. Acton)의 경구가 이 맥락에서 적절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서는 흔히 “너만 믿는다”고 하며 신뢰를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 신뢰를 배반한 사람에 대하여 뒤늦게 맹비난을 퍼붓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쉽게 신뢰를 받는 사람은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신뢰를 줄 때는 극도로 신중해야 하며 신뢰할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불신의 제도화’인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몽테스키외가 삼권분립을 제창한 이래 입법'행정'사법의 영역을 ‘두부자르듯이’ 정확하게 나눌 수는 없는 일이다. 또 어떤 나라도 중복되지 않게 완벽하게 권력분립을 실시하는 경우는 없다. 미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대통령이 의회에서 통과된 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하고 또 상원이 대통령이 임명한 공직자를 거부하기도 한다. 또 행정부가 입법권을 행사하는 행정입법은 권력분립에 맞지않는 단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행정부의 비대한 권한은 그 자체내의 통제메커니즘에 의해서 또 의회에 의하여 감시되고 통제되는 것이 민주적인 권력 행사방식이다. 입법'사법'행정의 주요 권력을 한 손에 거머쥐고 있는 우리의 제왕적 대통령은 그 권력을 견제할 방안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심각한 문제는 대통령이 제왕적으로 군림할 경우 자신의 판단과 결정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질 방법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두말할 나위없이 민주정치의 핵심은 ‘책임정치’다. 국정운영을 잘하면 계속해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물러나야 한다. 즉 정치권력을 소유하고 집행하는 사람이 자신의 정책적 판단이나 결정에 대하여 국민에게 책임을 질 수 있는 방법과 절차, 관행이 확실한 것이 민주정치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대통령이 ‘정부실패’에 관하여 책임을 질 수 있는 방법은 임기중 탄핵을 받거나 사임을 하는 극단적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필리핀이나 미국과는 달리 그러한 극단적 형태의 책임정치를 원하지 않는 것이 우리 국민이 가진 정서의 한 단면이기도 한데, 거기에는 정치적 안정에 우선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정치문화가 그 원인이다. 따라서 그러한 극단적 형태의 책임정치를 원하지 않는 한, 아무리 불만족스러운 정치적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임기말까지 대통령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오년(權不五年)”의 비애를 곱씹으며 권좌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정치안정을 볼모로 ‘벌거벗은 임금님’의 ‘무위(‘無爲) 정치’의 상황이 전개되는 셈이다.

헌법으로 돌아가자

그렇다면 권력행사의 비효율을 초래하고 ‘불신의 제도화’에 반하며 국정에 책임조차 질 수 없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어떻게 개선 혹은 개혁할 수 있는가. 이와 관련하여 내각책임제 개헌을 비롯하여 이원집정제 등 다양한 형태의 한국정치의 구조개혁안이 제시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행헌법에서 규정되고 있는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규정하면서 ‘분권적 대통령제’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식 대통령제는 미국이외의 지역에서는 예외없이 ‘절대적 대통령제’로 타락한다는 것이 그 배경설명이다. 과연 그러한가.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의 현행 대통령제는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국식 대통령제는 아니다. 미국 헌법에는 없는 국무총리와 국무회의 제도를 두고 있으며 국회에 국무총리 임명 동의권, 국무총리 해임 건의권, 국무위원 해임 건의권을 부여하고 있다. 국회는 행정부에 대한 국정감사권과 고위공무원에 대한 탄핵 소추권을 갖고 있으며, 정부에 대한 감독권과 국회출석 및 답변요구권 등을 가져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특히 우리 헌법 제86조는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87조에선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있다. 이러한 일련의 헌법조문을 뒷받침하는 입법정신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첫째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는 국무총리에게 국무위원 임명제청권을 부여함으로써 총리중심의 내각이 구성돼 효율적인 국정운영에 필요한 역할분담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행정부와 국회에 권력을 분산함으로써 대통령의 독단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결국 ‘불신의 제도화’의 정신이 배어있는 조항이라고 하겠다.

셋째 총리중심의 내각이 국정운영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국민과 국회에 진다는 것이다. 국정운영과정에서의 중대한 실책의 경우 또는 국민이나 국회의 신임을 잃었을 경우에는 총리를 비롯한 내각이 총사퇴함으로써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서부터 지금의 김대중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은 헌법정신을 위배하면서까지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을 가볍게 여기는 정치적 관행을 만들고 지켜온 것이다. 만일 독립적인 권력기반을 갖는 책임총리가 출현할 경우대통령의 권력에 심각하게 도전함으로써 국정의 파탄을 초래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물론 그런 대통령이 국정수행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시점에서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국무총리를 거느리는 막강한 권력의 대통령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는 곱씹어 보아야 할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강력한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관행보다는 헌법정신에 의하여 통치해야 한다는 것은 거스릴 수 없는 당위며 시대정신인 셈이다. 우리는 뒤늦게나마 헌법의 규정과 헌법의 정신으로 되돌아 갈 필요가 있다. 이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행사는 헌법보다 관행, 그것도 특히 정당화되기 어려운 권력독점의 관행에 의하여 이루어져왔기 때문이다.

헌법개정이 능사 아니다

대통령의 권한 행사와 관련하여 프랑스의 경우는 하나의 교훈이 된다. 권력구조에 관한 한, 우리는 미국보다는 프랑스에 가깝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른바 좌우 ‘동거정부’나 ‘분할정부(divided government)’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모델이다. 프랑스의 헌법에서는 ‘여소야대’의 국회인 경우 동거정부를 만들라는 규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대통령은 총선에서 패해 자신의 당이 국회의 소수당이 될 경우 다수당의 당수를 국무총리로 임명하고 있으며, 그것은 관행으로 굳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헌법정신에도 불구하고 관행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집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과 얼마나 현격한 대조를 이루는가. 김영삼 정부의 14대 총선에서는 여당이 다수를 차지했으나, 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국민들이 야당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그런데 ‘여소야대’의 김대중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야당의원들을 빼내 민의와는 다른 ‘여대야소’의 국회를 만들어 제왕적으로 군림했던 것이다.

결국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헌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관행이 정착되었다는 점에 있다. 견제도 받지않고 책임도 지지않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실감하고 있는 이 시점이야말로 헌법에 명시된 책임총리제를 실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번 16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대통령후보들은 당선될 경우 헌법에 명시된 대로 국무총리가 국무위원 임명제청권을 확실히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고 국민앞에 엄숙하게 공약할 의무가 있다.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 대통령이 된 사람의 일차적 의무가 아니던가. 그것은 또한 권력분립의 실현과 책임정치를 향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책임 총리제의 실현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병폐를 단번에 고칠 수 있는 만병통치약(deus ex machina)은 아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된 권한’보다 ‘대권’으로 생각하는 국민의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하지만 권력분립의 당사자들도 헌법에서 보장된 권한과 의무를 수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무총리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영의정처럼 일방적으로 대통령에 의하여 임면되는 하위자로 처신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는 다른 권력기반을 갖고 소신있게 행동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처신해야 한다. 국회도 자신에게 주어진 행정부 통제의 권한을 철저히 사용해야한다. 위헌'위법을 저지르는 공무원의 탄핵소추를 해야하며 문제가 있는 국무위원에 대해서는 해임을 건의해야 한다. 국무총리와 국회가 헌법정신에 따라 대통령을 견제할 때 대통령은 제왕적으로 군림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책임총리제의 제도화가 권력분산과 책임정치에 있어 ‘충분조건’은 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필요조건’은 된다.

물론 헌법을 고쳐 명실상부한 분권적 대통령제를 도입하는 방법도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헌정사를 보면 권력구조에 대한 헌법개정은 집권자의 ‘권력의지(Wille zur Macht)’와 연관되어 있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공감대를 얻기가 어렵다. 또 현행 헌법아래서 제왕적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이 있는데, 구태여 비싼 기회비용과 국력을 소모하면서까지 헌법개정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제도가 단순히 법규정에 의해서만 정착되는 것이 아니라 관행에 의해서 정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사 헌법개정이 소기의 효과를 발휘할는지도 의심스럽다. 결국 헌법개정은 만능이 아니다. 총리를 대통령에 종속된 ‘아랫사람’으로 보기보다 대등한 국정 파트너로 보는 책임총리제의 복원이야말로 제왕적 권력의 남용을 막는 효율적이며 실현가능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박효종(서울대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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