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제도의 개선

이영훈 / 2002-08-28 / 조회: 5,142

No.011

2002년 7월에 공정거래위원회는 KBO와 8개 구단에 신인지명제도와 다년간 연봉계약 금지 조항 등에 관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KBO조항에 자유계약제도, 선수보류제도, 에이전트 불인정제도 등에 불공정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며, 2001년 3월에 처음으로 내린 시정명령에 이어 프로야구산업에 내려진 두 번째 결정이다. 현대사회에서 스포츠산업의 규모가 날로 성장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스포츠의 프로화가 진행되어 왔다. 이중 프로야구리그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는데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린 일련의 조치는 프로야구산업에 정상적인 시장경제체제가 갖추어지도록 유도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현대사회에서 스포츠의 프로화가 다방면에서 진행되어 왔으며 우리나라의 팀스포츠 중에는 야구, 농구, 축구 등 3대 종목에 프로스포츠가 있다. 특히 야구는 1982년 프로야구를 시작하여 올해로 21번째 시즌을 맞고 있다. 경기장을 찾는 팬들은 경기라는 상품을 소비하려는 수요자이며, 프로야구 구단들은 프로야구 경기를 계속'반복적으로 제공하고, 그 반대급부로서 입장료 및 중계권료 등을 받으면서 다양한 경제적 활동을 하는 공급자에 해당한다. 결국 프로야구도 하나의 산업으로서의 구성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스포츠가 현대인의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이제는 프로스포츠를 단순히 체육계의 일로만 바라보기보다는 하나의 산업으로써 경제학적 시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의 변화와는 달리, 한국프로야구 제도는 야구산업의 장기적인 발전 및 시장참여자에게 공정한 룰을 정해주기 보다는 외국의 제도를 모아 짜집기한 창립초기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거시적인 시각에서 제도의 틀을 생각하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세부규정을 조금씩 수정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프로야구가 하나의 산업으로써 도약할 수 있도록 프로야구 관련 제도체계의 개선방향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프로야구산업의 경제적 특징과 바람직한 제도의 조건

바람직한 제도란 그 산업의 경제적 특성을 고려하면서, 기업간 공정경쟁을 유도하고, 산업 내 이해당사자 중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산업전체가 장기적으로 발전하는데 기초가 될 수 있어야 한다.

프로야구 산업이 다른 제조업이나 서비스업과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프로야구 구단은 그들이 생산하는 상품인 경기를 혼자서 생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상품 및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은 보이지 않는 경쟁을 통해서 경쟁기업에 비해 우수한 상품을 생산하여 보다 많은 수익을 올리려 노력한다. 그러나 프로야구에서는 구단이 혼자만 경쟁력이 있다고 질 좋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구단과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져야 경쟁력 있는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 경쟁력이 있는 상품이란 프로야구에선 '재미있는 경기'일 것이다. 경기가 관중들에게 흥분감을 주는 요소는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선수들이 일반인들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묘기를 선보이는 것이고 둘째는 경기하는 팀간에 전력이 엇비슷하여 경기가 끝날 때까지 어느 팀이 승리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는 것이다.

첫째 요소는 선수의 기량과 직결된 것으로 과학적인 훈련프로그램을 통해서 우수선수를 육성하거나 외국의 유명선수를 수입해오는 방법이 있다. 박빙의 승부라는 둘째 요소는 리그내의 팀간에 전력이 평준화되어 있어야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전력의 차가 심하면 일방적인 경기가 연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적절한 제도체제를 갖춤으로써 어느 정도 유도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스포츠경제학자들이 전력평준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Rotenberg(1956)의 ‘경기결과 불확실성의 가설(uncertainty hypothesis of game outcome)에 의하면 승패를 미리 짐작할 수 있는 경기는 상품의 가치가 없는 경기라고 한다. 승패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상대팀간에 전력이 엇비슷해야 그 경기가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의 가설이 현실에 적용되는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데, 한국축구대표팀이 인도나 베트남 같은 약팀과 대결할 때는 팬들의 관심이 적으나 전력이 엇비슷한 일본과 같은 팀과 경기를 할 때는 경기장이 가득 메워지는 것이 한 예이다. 따라서 모든 스포츠리그는 팀간 전력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다른 팀에 비해 지나치게 강하거나, 반대로 너무 약한 팀이 많으면 그 팀과의 경기는 상품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제도가 갖추어야할 조건 중 첫째가 전력평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야구산업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볼 수 있다. 경기라는 상품을 생산하는데 선수라는 생산요소의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력의 공급자인 선수와 수요자인 구단사이에는 항상 갈등을 빗어왔다. 1876년에 시작한 미국 메이저리그의 100년이 넘는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구단 위주로 짜여진 제도의 틀을 갖고 있던 1900년대 초기에는 선수들이 불만을 품고 지속적으로 제도를 바꾸려 노력하였다. 독점금지법을 구단이 위배했다며 연방법원까지 가는 법정싸움의 역사는 셀 수 없이 많았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 강력한 선수노조의 힘을 바탕으로 단체협상에서 구단의 양보를 조금씩 받아오다 1976년에 자유계약제도를 도입하면서 상황이 역전되었다. 지금은 구단이 불만을 품고 제도의 틀을 바꾸려 시도하고 있다. 2002년 8월 현재도 진행중인 단체협상에서 구단이 개선을 요구하자 선수노조가 파업을 결의하며 일전을 불사하고 있다.

선수'구단간 갈등은 한국프로야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에는 일방적으로 선수들이 밀려왔으나 2001년부터 선수협의회가 만들어지면서 선수들 입장에서의 제도개선 요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바람직한 제도는 선수들이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정확히 자신의 가치만큼만 연봉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시장가격이 그대로 연봉으로 결정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가하지 않는 제도, 즉 프로야구산업의 노동시장에서도 시장경제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정리하면 전력평준화와 시장원리의 정상적인 작동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제도의 틀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제도의 현실

한국프로야구의 제도는 이러한 두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한국프로야구의 창립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1982년에 처음 시작한 프로야구리그의 창립배경은 미국 및 일본 프로야구리그와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프로야구팀이 먼저 만들어져 활동을 하다가 자생적으로 프로팀들이 함께 모여서 리그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타의에 의해서 프로야구리그가 만들어졌다. 80년대 초 군사정권이 국민의 불만을 해소해 줄 도구로 스포츠를 이용한 것이다. 자연히 프로야구제도는 외국제도를 참고삼아 급조되었고, 억지로 팀을 만드는 대기업을 위해 구단 위주의 제도가 만들어졌다.

최근 선수들의 개선요구가 거세어 지면서 자유계약제도가 도입되는 등 제도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까지 한국프로야구 제도틀은 전력평준화와 시장경제 원리의 적용이라는 두가지 조건이 적절히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전력평준화와 시장메카니즘을 반영하는 제도개선

우선 프로야구리그의 축을 이루는 대표적인 두 가지 제도를 살펴보자. 먼저 선수들을 소속팀에 묶어놓는 보류조항은 전력평준화에는 도움이 되나 선수연봉을 시장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낮게 유도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즉 선수의 희생을 바탕으로 전력평준화를 도모하는 제도이다. 선수들이 소속팀과만 계약을 해야 하니 아무리 부자 팀이라도 소속팀의 허락이 없이는 우수선수를 스카우트해 갈 수 없다. 따라서 전력이 일부 팀에 지나치게 치우치는 것을 방지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소속팀에게 선수노동력에 대한 수요독점권(monopsony)을 보장하여 선수들에게 불리한 제도이다. 수요독점권을 갖고 있으면 시장가격보다 저렴하게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것처럼, 구단이 소속선수를 독점적으로 수요할 수 있는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으니 저렴한 임금만 주고도 선수들의 노동력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FA제도하에서는 선수들이 시장가치만큼 연봉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대신 전력의 불균형이 초래될 수 있다고 한다. 어느 팀과도 계약을 할 수 있으니 보류조항 하에서 구단이 갖던 수요독점력이 사라지게 되어 수요'공급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부자 팀들이 우수선수를 독식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므로 전력 격차가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와 같이 보류조항 및 자유계약제도는 한쪽에서는 장점이 있으나 다른 한쪽에서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적절히 조화를 통해 바람직한 제도의 틀을 구상하여야 한다. 지면의 한계상 두가지 제도개선을 제안한다.

첫째는 연봉조정제도를 정상화시키는 것이다. 연봉조정제도는 보류조항에 제한을 받아 선수들이 소속팀에 묶여 있지만 연봉만큼은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이다. 선수들이 구단이 제시하는 연봉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연봉조정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함으로 선수들이 자신의 시장가치에 준한 연봉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보류조항의 장점인 전력평준화의 효과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단점이었던 선수의 불이익을 해소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제도이다. 그래서 메이저리그에서 이 제도를 일찌감치 도입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선수경력 3년이 지나면 연봉조정신청 자격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의 효과는 연봉조정위원회가 얼마나 공정하게 운영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이러한 면에서 한국프로야구리그의 연봉조정위원회를 평가하면 실망 그 자체이다. 좋은 제도가 공정하지 못한 운영으로 전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였다. 84년 해태 타이거즈의 강만식투수가 처음으로 연봉조정신청을 한 이후 2001년까지 약 100여 차례 조정신청을 하였지만 선수가 이긴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선수협의회 창설이후 개선의 여지가 보이고 있다. 2002년 처음으로 유지현선수가 연봉조정판결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총재가 위원을 선임하는 방법을 바꾸어 독립적인 연봉조정위를 보장하는 제도적 개선을 해야한다.

두 번째는 현금트레이드의 폐지이다. 일반적인 현금트레이드의 양상은 가난한 팀이 우수선수를 부자팀에게 파는 것이다. 가난한 팀은 가뜩이나 전력이 약한데 선수까지 팔면 팀전력은 더 떨어질 것이고, 우수선수를 데려간 부자팀은 그 전력이 더욱 올라갈 것이다. 자연히 전력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이런 문제점을 인지한 메이저리그에서는 현금트레이드가 1976년 이후 사실상 사라졌다고 한다. 소도시에 연고를 둔 오클랜드 As팀이 1972-74년간 월드시리즈에 연속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중증가가 미진하였다고 한다. 팀성적이 좋으니 선수들은 당연히 몸값 인상을 요구하였는데 구단 수입은 늘지 않으니 구단주 입장에서는 차라리 스타선수들을 현금트레이드하는 것이 더 좋은 경영법이었다. 결국 6명의 스타선수들을 뉴욕 양키즈 등 대도시 구단에 현금트레이드 하였는데 커미셔너가 이를 무효화 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강팀인 뉴욕 양키즈 같은 팀들만 초강팀으로 만들어주고 소도시 팀들은 더욱 전력약화가 초래될 것이라는 논지이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에서는 현금트레이드가 난무하다. 대표적인 예가 지금은 사라진 쌍방울 레이더스인데, 모기업 경영난으로 팀운영이 어렵자, 팀내 스타급 선수인 박경환, 조규제, 김기태 및 김현욱을 팔았다. 심지어는 신인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명한 선수의 계약권 마저도 팔았다. 쓸만한 선수는 거의 다 판 것인데 대가로 총 38억원의 거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팀전력이 급전직하한 것은 자명한 것이며 관중도 급격히 감소하였다. 99년 쌍방울 홈구장에서 벌어진 총 66경기에서 관중 총수는 49,956명에 불과하니 경기당 평균 757명만이 경기장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KBO, 구단 모두 문제의 심각성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전력불균형이 심화되면 약팀인 쌍방울의 홈관중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리그 전체가 관중감소를 겪게 된다. 한때는 5백만명이 넘던 관중이 2000년에는 2백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는데도, 그 원인을 경기침체로만 돌리며 아무런 개혁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야구산업 구성원이 모두 불만이 없도록 시장원리가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전력평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제도변화를 도모할 때 프로야구산업도 침체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이영훈, 한국프로야구산업의 제도개선방안, 규제연구, 10(1), 2001.
Fort, R., Testimony on the current state of competitive balance in Major League Baseball, U.S. Senate, Subcommittee on Antitrust, Washington, D.C. 2000.

이영훈(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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