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의 합리화

김정호 / 2002-08-22 / 조회: 4,318

No.009

세무조사란?

세무조사란 과세관청이 조세의 부과 징수 세원 관리를 위해 납세자로부터 조세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를 말한다. 국민의 재산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 국가행위이기 때문에 권한의 남용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의 제도적 장치들이 필요하다. 억울한 조사를 받는다든가, 또는 탈세 방지 이외의 목적으로 이 제도가 사용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세무조사권은 여러 가지 방향으로 남용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동안 비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문제되면서 비로소 현행 세무조사 관행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본격적 논의가 시작되었다.

현행 세무조사제도의 기능과 역기능

국가는 공공재를 공급할 의무와 권한을 갖는다. 그러기 위해서 세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공재의 속성상 세금을 안 낸다고 해서 그것으로부터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세금 납부를 납세자의 자발적 의사에만 맡겨 둘 수는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능하면 세금을 작게 내거나 또는 안내고 싶어하는 것이다. 세금이 걷히지 않는다면 국가의 공공재 공급은 불가능해진다. 물론 적정한 조세총액의 규모가 얼마이고 누구에게 얼마를 부과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단 거두기로 결정된 세금이라면 강제로 징수될 수밖에 없다.

강제징수의 첫걸음은 내야할 세금이 얼마인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세금이 부과될 소득금액이나 거래금액, 재산의 가액이 얼마인지, 세율은 제대로 적용되었는지 등이 확인되지 않고는 납세자가 제대로 세금을 내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힘들다. 그런 일을 세무조사라고 부르며, 강제징수의 특성상 조세당국은 세무조사권을 가지게 된다. 세무조사를 통해서만 세무당국은 법대로 세금을 내지 않는 탈세자를 가려낼 수 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세무조사도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가능하면 밝은 면은 북돋우고 어두운 면은 줄이도록 견제하는 것이 합리적 정책이 택해야 할 바이다.

방금 설명했듯이 세무조사의 밝은 면은 탈세자를 색출하는 일이다. 어두운 면은 그 권한이 조세징수 이외의 목적으로 남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세무조사권의 남용은 대개 세 가지의 모습을 띌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는 권력자의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경우이다. 점차 나아지는 있는 중이긴 하겠지만, 털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는 탈세가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일단 조사를 하고 나면 누구에게나 탈세 사실이 발견되는 상황에서 조사의 대상자가 권력의 재량으로 선정된다면, 세무조사권한은 탈세자의 색출이라는 본래의 목적보다는 권력자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될 개연성을 충분히 가지게 된다. 실제로도 그런 목적으로 실시된 듯한 세무조사의 사례를 과거의 기록에서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세무조사권이 이런 식으로 사용된다면 국민들은 왜곡된 정보에 기초해서 대표자를 뽑을 수 밖에 없다.

둘째는 세금 징수액 확대를 위한 목적으로 세무조사가 사용되는 경우이다. 우리 헌법이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제59조)고 하여 조세법률주의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국민의 세부담을 국민의 대표가 직접 정하겠다는 취지이다. 따라서 과세대상 소득이나 재산의 크기가 같고 세율이 같다면 납세액도 같아야 하는 것이 조세법률주의의 정신에 합치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무당국의 재량권에 의해 세무조사의 강도를 조정함으로써 세금 징수액을 정부가 필요로 하는 예산액에 맞추는 식의 행위가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세무조사가 세출예산 부족을 메꾸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된다면, 재정의 경기자동조절기능은 약화되고 지나친 예산증액이 초래될 수 있다. 세수가 국민소득의 일정비율을 유지한다면 경기가 좋을 경우 세수규모가 커지고 불경기에는 세금부담이 작아져서 자동적인 경기조절 기능이 작동한다. 그러나 경기가 나쁠수록 예산에 대한 수요는 더 느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세수를 행정부의 자의로 조절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그 반대의 경향이 생겨날 수 있다. 행정부의 재량에 의한 세무조사는 그것을 위한 수단이 된다.

셋째는 세무조사가 탈세범 색출이 아니라 정부의 다른 정책의 집행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례를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부동산 투기 혐의자에 대한 세무조사,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도입과 관련된 세무조사,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병의원들에 대한 세무조사 등은 그런 것들 가운데 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이다. 정부정책에 순응하면 세무조사를 면제해주겠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사례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탈세자 색출이라는 정당한 명목을 갖추고 있더라도, 세무조사를 통해 개인이나 기업의 장부를 강제로 차출해서 조사하는 것은 재산권의 침해임이 명백하다. 그리고 우리 헌법 제23조는 국가가 국민의 재산권을 제한하려면 법률로써 해야 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정부가 정책을 펼 수 있고 또 그 정책에 순응하지 않는 자에 대해 벌을 가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법치주의 내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밝힌 선언이다. 법률의 근거도 분명히 않은 상태에서 세무조사를 다른 정책들의 집행보조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위의 헌법조문을 위배하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투기억제이든 의약분업이든 법률에 의해서 실시해야 하고, 또 그것을 어기는 사람에 대한 벌칙도 법률에 의해서 규정되어야 한다. 세무조사를 정책집행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행정부가 입법부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된다면 극단적인 경우에 국민의 권리를 제한함에 있어 행정부가 입법부의 견제를 받지 않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무슨 일을 하든 세무조사를 무기로 국민들에게 강요하면 되기 때문이다. 국가라 하더라도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재산을 침해하려면 법률을 통해서만 하게 한 것은 행정부가 가진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함이다. 탈세자 색출의 도구가 아니라 행정부가 추구하는 다른 정책목표의 달성을 위해 세무조사가 이용된다면 법치주의는 실종되고 여론정치와 다수의 폭정이 지배하는 사회가 초래될 수 있다.

세무조사권 남용으로 인한 더욱 중요한 폐해는 탈세행위에 대한 억제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누구나 세무조사를 무서워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의 납세자들이 세금을 충실히 낸다고 확언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현재의 세무조사 제도가 탈세행위 방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함에 대한 증거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세금을 성실히 내는 것보다는 뒷거래를 통해 권력자나 세무공무원에게 잘 보이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사실을 납세자들이 잘 알고 있으며, 그 방법대로 실천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세무조사의 재량권이 줄어든다면 탈세행위를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세무조사제도의 개선방안

세무조사권 남용의 세 가지 모습을 설명했다. 첫 번째 부류의 남용에 대해서는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그나마 자동적인 견제장치가 작동한다. 권력자의 사익을 위해서 세무조사가 남용되었다는 의심이 들면 여론이나 언론의 질타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의 두 가지 형태의 남용에 대해서는 그런 식의 비공식적 견제장치조차 없다. 또 불합리한 세무조사 관행에 대해 헌법소원 조차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할 때, 입법부가 입법을 통해서 견제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기존의 세무조사권 행사에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은 탈세자 색출 이외의 목적으로 이 제도가 이용된다는 것, 그리고 당국에 잘 보이는 한 납세자들이 세무조사를 피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개선책도 세무조사권이 본래의 목적인 탈세자 색출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탈세를 하는 것보다는 세금을 내는 것이 더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에 초점이 두어져야 한다.

탈세를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탈세 사실이 적발될 확률을 납세자가 조절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권력에 잘 보이거나 공무원에게 뇌물을 쓰면 세무조사 받을 확률이 낮아지는 제도 하에서는 자발적 세법 준수를 기약할 수 없다. 따라서 세무조사 대상자의 선정 단계에서부터 세무당국의 재량권에 대한 제약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전체 납세자 중에서 일정한 비율을 임의추출(random sampling)한 후, 선정된 납세자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를 하는 것이다. 임의추출의 원칙이 지켜지는 한, 납세자가 권력자나 공무원에게 뇌물을 쓸 이유가 없어진다. 그 보다는 세금을 잘 내는 것이 자신에게 더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반조사를 위해 이 방식이 일부 쓰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조사대상자 선정 과정에서의 재량권 축소를 위해서는 이 방식을 보조수단에서 주된 수단으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탈세를 한 것으로 밝혀진 자에 대한 처벌수준이다. 현재는 대부분의 탈세자들이 탈루액 만을 추징당하고 만다. 탈세자 중에서 일부만이 적발된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현재의 제도는 세금을 제대로 내는 것보다 탈세를 하는 것이 더 유리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일단 적발된 탈세자에 대해서는 탈루된 세액을 부과하는 것에 추가해서 더 큰 벌칙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전체 납세자 가운데 1/100을 임의추출해서 조사할 경우 탈세자가 적발된 확률은 1/100이 된다. 적발된 자에게 탈루액만을 추징한다면 납세자가 당면하는 탈세의 비용은 탈루액의 1/100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탈세를 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된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탈루액을 적발확률로 나눈 금액만큼을 벌칙을 부과해야 한다. 우리의 예에서는 탈루액의 10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물론 우리의 현행 법체계 내에서 탈루액의 수십배에 달하는 벌금은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한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안은 세무당국이 탈세자를 적발할 경우 탈루액을 추징할 뿐 아니라 예외 없이 형사소추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다. 현재는 탈세사실이 적발되어도 고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형사범이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므로 형사소추를 의무화하면 탈세의 매력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탈세사실이 밝혀진 자에게 세무조사의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세무조사는 탈세자 때문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비용을 전국민이 세금으로 부담해야 할 이유가 없다. 탈세자에게 세무조사 비용을 부담시킴으로써 탈세행위를 억제함과 동시에 정직한 국민의 세금부담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세무조사를 임의추출법에 의해서 해결할 수는 없다. 특히 탈세의 혐의가 짙은 납세자라면 개별적 조사의 필요성이 있다. 현 제도 하에서의 특별조사는 그런 필요에 의해서 수행된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의 현실 여건상 조사를 하면 누구든 탈세사실이 밝혀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무조사권이 어떤 목적으로든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수색영장제도가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다. 형사피의자의 혐의사실을 밝히기 위해 수색을 하려면 법원의 영장이 필요하다. 권력의 남용을 막아서 억울한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세무조사도 탈세혐의자의 사무실이나 집을 뒤진다는 점에서 형사 사건에서의 수색과 다름없다. 대한민국헌법 제 12조는 체포, 구금, 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3항). 탈세혐의가 있는 사람을 수색할 경우에도 수색영장을 발급받도록 하는 것이 헌법의 취지에도 맞는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탈세혐의가 현저하게 높은 납세자에 대해서만 수색 영장이 발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든 탈세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탈세혐의가 있는 모든 사람이 영장발부의 대상이 된다면 결국 재량권의 남용을 피하기 어렵다. 혐의가 작은 납세자에 대한 조사는 임의추출로 만족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 적발된 탈세자의 탈세 사실에 관한 정보가 공개되어야 한다. 물론 탈세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납세자로부터 수집한 자료는 그 사람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비밀유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탈세라는 범법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서까지 사생활을 보호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뒷거래만 조장될 뿐이다. 탈세자의 탈세 행위에 관한 정보는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무조사의 기준이나 절차 등은 법률로 규정하고 모든 규정이 인터넷 등에 공개되어야 한다. 1996년 OECD에 가입하면서 국세기본법에 세무조사에 관한 사항(제7장의 2)을 신설하기는 했으나 세무조사에 있어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것은 제대로 공개도 되지 않는 국세청의 훈령이다. 위에서 제안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조사대상자의 선정 기준 및 방법, 수색 영장발부의 요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의 처리 문제 등 세무조사제도의 중요한 골격은 입법부가 법률로 규정하고, 법률의 위임을 받아 만들어진 모든 행정부의 규정이나 명령들도 인터넷 등을 통해 납세자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구재이, 우리나라 세무조사제도의 적정성 확보방안,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연구자료 ECO 2002-07, 2002.

E. Enright, Probable Cause for Tax Seizure Warrants, 55 University of Chicago Review, 1988, pp210-.

작성자: 김정호(자유기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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