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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의 확대

김정호 / 2002-06-03 / 조회: 4,968

No.007

1. 지방자치의 이상

지방자치란 지방주민들이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책임도 스스로 지게 하는 제도이다. 지방자치단체말고도 세상에는 수많은 자치조직들이 있다. 개인, 가정, 회사, 교회, 동창회 등의 조직들이 자치의 원칙에 의해서 작동하고 있다. 즉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의 의사에 의해서 결정하고 그 결과도 스스로 책임을 진다. 그들에게 자치권을 주는 이유는 각자가 스스로 원하는 바를 가장 잘 알 수 있고, 또 그것을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이 간섭하는 체제 하에서 보다 자치제 하에서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만약 이런 조직들의 자치권이 거부되고 타인의 의지가 강제된다고 해보자. 그 타인은 통치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통치권을 행사하려고 할 것이다. 만약 그 통치권이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서 행사된다면, 통치 대상인 각각의 소수 집단은 다수의 이익을 위해 희생당하게 될 것이다. 설령 통치집단이 통치대상의 행복을 진정으로 원한다고 하더라도 통치 대상이 원하는 바를 잘 알 수 없고, 또 그것을 달성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통치대상들의 행복을 실현시킬 수 없다. 그래서 스스로 원하는 바를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제도, 자치제는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치권이 무한정 인정될 수는 없다. 한 사람 혹은 한 조직의 자치권 행사가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자치권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여러 사람 혹은 여러 자치 조직간의 협력을 통해서만 서로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지만 자발적 협력은 기대하기 어려울 때(예를 들어 공공재의 공급), 각각의 개인이나 조직을 포괄하는 통치체가 그 문제의 해결을 대신 맡는 것이 좋다. 국가에 의한 불법행위법의 집행, 정부예산으로 공공재를 공급하고 그 비용은 세금으로 거두는 제도 같은 것은 각각의 경우에 대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방자치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다른 자치조직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지리적으로 連接한 거주지에 거주하는 주민들로 구성된 조직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들의 자치대상도 지리적 연접성과 관련해서 발생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 나머지의 일은 다른 자치조직들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이 자치의 이상에 맡는다. 그런데 여기서도 자치권의 제약은 필요하다. 타 자치단체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 여러 자치단체간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구조적으로 협력을 기대하기 힘든 사안 등에 대해서는 상급자치단체나 또는 중앙정부가 조정하거나 또는 직접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처럼 타 자치단체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사안, 또는 자치단체간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협력이 원천적으로 어려운 사안들을 제외한 나머지의 사안에 대해서는 지역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하게 하고, 결과도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것이 지방자치의 이상이라고 할 것이다.


2. 지방자치의 현실

우리의 지방자치 현실은 이상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대한민국 헌법 제117조 제1항은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라고 함으로써 지방자치의 이상을 선포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서조차 주민자치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강제가 지배적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몇 가지 대표적 예를 들어 보겠다.

토지의 이용에 관한 자치
지방자치단체는 지리적으로 연접한 주민끼리의 자치임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지방자치단체의 가장 중요한 자치대상은 지리적으로 연접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일 것이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토지 이용일 것이다. 어디를 주거지역으로 하고 어디를 상업지역으로 하며, 공원은 어디에 어느 정도로 둘 것인가, 개발의 밀도는 어떻게 할 것이며, 어디를 개발하지 않고 놔둘 것인가 등의 문제가 자치의 핵심이다. 토지문제는 가장 지역적인 문제여서 이런 문제마저 자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면 자치의 대상이 될만한 실질적인 대상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지방정부의 자치권은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다. 개발제한구역, 농지, 임야 등에 대한 대부분의 통제권은 중앙정부(건교부, 농림부, 산림청)가 가지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에게는 소규모의 개발에 대한 허가권만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허가의 기준마저 중앙정부가 결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의 사정에 맡는 도시개발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최근에 문제되었던 난개발이라는 것도 그렇다. 일반적 비난과 달리 난개발의 가장 큰 원인은 지방자치단체에 농지나 임야에 대한 계획권, 택지개발계획에 대한 계획권, 기반시설부담금 부과권이 없다는 사실이다. 다만 농지법이나 산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소규모 개발에 대한 허가권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이 정하는 요건에 맡는 개발허가 신청이 들어왔을 때, 허가를 거부할 명분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고, 그것이 난개발로 연결된다. 농지나 임야를 지역주민의 결정에 따라 도시계획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하고, 도시계획을 주민의 의사대로 결정할 수 있게 하고, 기반시설부담금을 스스로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이 개발허가권을 행사하는 지방자치단체에 주어지지 않는 한, 난개발의 문제는 해결되기 힘들 것이다.

지방공무원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은 이름은 지방공무원이지만, 임용, 승진, 보수, 해고, 정년, 정원에 관한 사항을 중앙정부(행정자치부)가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중앙공무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지방자치의 이상대로만 한다면 지방공무원을 고용하는 것은 지방주민들이기 때문에 몇 명의 공무원을 고용하든 그들에게 얼마의 보수를 주든, 어떤 기준에 의해서 채용을 하고 해고를 하든 그것은 자치단체의 조례로 결정할 사항이다. 일반 기업과 하등 달라야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지방공무원과 관련된 대부분의 중요한 사항은 중앙정부의 통치대상이다.

지방공무원의 월급도 주지 못하는 자치단체가 아직도 많다는 말은 지방자치를 선언하고 있는 국가에서 어불성설이다. 월급조차 주지 못하는 지방공무원을 주민들이 계속해서 고용하고 있을 이유도 힘도 없다. 지방공무원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지방정부에 넘기되, 중앙정부 차원에서 특정 공무원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지방정부에 돈을 주고 사정해볼 일이다. 지방공무원에 대한 결정권마저 없는 지방자치는 허울뿐이다.

지방세
자치제의 본질은 스스로 결정하되 책임도 스스로 지는 것이다.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 자치는 자치라기보다는 방종일 것이다. 책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임은 자신들의 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자신들이 돈으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사업도 할 수 없다는 원칙을 빼놓고는 자치를 논할 수 없다. 자치단체가 스스로 돈을 조달하는 방법은 지방세다. 자신들의 사업을 위한 돈을 지방세로 스스로 조달하도록 할 때에 비로소 주민들은 지방정부가 수행하는 사업에 대해서 제대로 감시하려는 인센티브도 생겨날 것이다. 꼭 필요한 사업이 아니라면 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방세 체계는 그렇지 못하다. 조세의 세율과 종목은 (중앙정부의) 법률로 정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가 자신들이 원하는 세금을 거두려면 중앙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이 제도는 조세법률주의라는 이론으로 정당화되어 왔다. 물론 납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조세법률주의는 꼭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그 법률이 중앙정부나 국회의 법률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조세법률주의의 핵심은 납세자의 동의를 구한다는 것이고, 지방세에 있어 납세자는 지방주민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조례를 통해서 지방주민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지방세에 있어서 정당한 조세법률주의이다. 세를 부담하는 사람이 부담할 용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3자인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물론 지방정부가 세원을 정함에 있어 무제한적 자치권을 인정받을 수는 없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조세수출이 우려되는 세원이다. 조세자치가 인정되려면 세금을 내는 사람이 당해 자치단체의 주민이어야 한다. 조세수출은 조세부담을 타 지역의 주민에게 떠넘기는 행위이다. 그런 세원은 지방세로서 적당하지 않다. 콘테이너세나 수자원세 같은 것은 세부담이 수출되는 대표적 세금이다. 역설적이게도 현재의 지방세법은 그런 세금들에 대해서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있다.

타지역으로의 수출 가능성이 가장 적은 세는 토지세이다. 토지에 매기는 세금은 그 지역에만 귀착된다. 따라서 토지보유에 대한 세율은 납세자인 주민들 스스로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즉 토지세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세율에 대해서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많은 돈이 필요한 단체는 세율을 높이고 그렇지 않은 단체는 자신들의 의사대로 세율을 낮추면 된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토지세는 종합토지세이고 세율의 결정권은 전적으로 중앙정부에 있다. 이런 상태에서 조세자치는 요원하다.

조세자치의 이상이 실현되려면 지방재정조정제도 또한 개편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지방재정조정제도 하에서는 설령 지방정부에 지방세의 세율결정권이 주어지더라도 그것을 행사해야할 이유가 없다. 중앙정부가 정한 기준에 의해서 소위 기준재정소요라는 것을 정한 후 그것과 실제의 지방세입간의 차이를 메꾸어 주는 것이 현재의 지방재정조정제도의 기본 원리이다. 그 결과 지방세를 조금 거둘수록 중앙정부로부터 더 많은 보조를 받을 수 있다. 지방세를 많이 거둘수록 주민들에게는 손해인 셈이다. 그래서 현재 탄력세율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준세율 이상의 세율을 적용하는 자치단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방재정조정제도의 구조가 바뀌어야 조세자치가 실현될 수 있다.

이밖에도, 환경행정, 교통행정, 경찰행정(특히 교통경찰 및 치안업무), 교육 행정 등 지극히 지방적인 사무에 있어서 지방정부의 자치권은 실질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의원을 지역주민들의 손으로 뽑는 것, 그 자체를 지방자치의 전부인 양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결정할 것이 없는 시도지사, 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구체적 행정 분야들에 있어서 중앙정부의 간섭이 배제되지 않는 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3. 지방자치법의 역할

지방자치의 보장에 관해서 헌법의 규정이 있고, 별도의 지방자치법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의 현실은 이상과 너무 거리가 멀다. 이들 규정에서 독소조항은 "법령의 범위 안에서" 또는 "다만 법률에 다른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지방자치법 제9조 2항 단서)" 같은 것들이다. 따라서 입법자인 국회나 중앙정부가 지방자치의 이상과 다른 법률을 만들더라도 막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권력이 커지길 원한다. 스스로 권력을 나누고자 하지 않는다. 헌법으로 삼권분립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그런 약점 때문이다. 국회의원이나 중앙정부의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다를 바 없다. 그들의 권력에 제한을 두지 않는 한, 스스로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의원들과 권력을 나누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중앙의 국회의원들과 중앙공무원들이 만들어 낸 현재의 지방자치법은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의 재량권을 제약하는 방향으로 되어 있다. 조례의 제정 및 개폐, 지방의회의 구성과 운영방법, 집행기관의 권한과 의회와의 관계 같은 것들을 중앙정부가 정한 지방자치법으로 구속할 필요가 없다. 국회가 국회와 행정부간의 관계를 스스로 규정할 수 있듯이 지방의회는 의회의 운영에 관한 규칙, 집행기관과의 관계 같은 것들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중앙정부가 규율할 것이 있다면 한 자치단체의 행동이 타 자치단체에 피해를 주거나 또는 협력이 필요하지만 자발적 협력을 기대하기 힘든 문제에 대해서이다. 현재의 지방자치법에서 행정협의회나 자치단체조합에 관한 규정 정도가 여기에 해당된다.

현재의 법체계는 전면적으로 개편되는 것이 옳다. 중요한 것은 국회나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의 일에 대해서 관여할 때, 지방정부가 법적 장치를 통해 저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헌법의 지방자치 조항을 개정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제117조 1항)>라는 규정을 <지방자치는 보장된다. 국가는 지방자치단체의 합당한 자치권 행사를 막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로 개정하고, 그것을 어기는 법령에 대해서 지방자치단체가 저항할 수 있는 헌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김정호(자유기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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