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민주화를 위한 제안

박효종 / 2002-09-23 / 조회: 5,416
No.024

정당의 민주화를 위한 제안

정당은 임의단체다. 정치적 의사와 이념, 이익 혹은 정책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만든 단체다. 그러나 이 정당이 동호회나 이익단체는 물론, 시민단체와 다른 것은 헌법으로부터 특별한 보호를 받는 단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정당은 헌법의 보호를 받는 만큼, 일정 수준의 의무도 가지고 있다. 특권이 있다면 책임도 중하기 때문이다. 정당의 의무와 책임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민주화된 집단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낚시회나 바둑회와 같은 동호회, 혹은 의사단체나 약사단체 등, 이익단체가 민주적으로 운영되면 좋겠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또한 교회가 민주적으로 운영되면 바람직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민주성을 교회의 ‘정체성’으로 삼을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정당은 다르다. 정당이 민주사회에서 필요조건이라면, 민주사회가 되는데 민주정당은 필요조건이다. 민주사회에서의 비민주적 정당은 하나의 ‘악시모른(oxymoron)’일 정도로 민주성은 정당의 ‘정체성’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는 민주화가 된 지 꽤 되었지만, 아직도 정당의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제왕적 대통령’에 대해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처럼, 민주정당에서 ‘제왕적 당총재’도 모순이다. 그래도 ‘제왕적 당총재’는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는 ‘제왕적 당총재’의 폐지야말로 정당민주화 개혁의 가장 핵심적인 의제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당의 현실을 보면, 공천과 당론결정에서 당총재가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물론 각 당의 당규 당헌을 보면, 민주적인 당 운영이 모범 답안이다. 하지만 당규와 관행은 다르다. 그것은 우리 헌법에 의하면, ‘제왕적 대통령’이 나올 수 없는데 실제로는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권한과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이 정치적 관행인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 정당에서 총재와 당이 당권을 분점하고 중앙당과 지구당이 결정권을 분점하며, 또 지구당 위원장과 당원들이 결정권을 분점하는 일은 생각하기조차 어렵다.

이러한 특성은 서구 민주선진국의 정당과 한국 정당의 작동양식(modus operandi)이 크게 다른 점이다. 물론 서구의 정당이라고 해서 권력 집중현상이 없는 것은 아니며, 이 점은 특히 미첼스(R. Michels)의 이른바 ‘과두제의 철칙(iron law of oligarchy)’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즉 민주정당이라고 해도 소수 당직자에 의하여 움직인다는 주장이다. 그래도 이러한 비민주성에는 ‘묵시적’ 경향이 짙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당의 비민주성은 ‘노골적으로’ 그리고 ‘명시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 문제다. 당총재의 견해가 수정'가감없이 ‘당론’으로 채택되는 현상, 하향식 공천이나 보스공천은 이에 대한 전형적 사례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결책은 있는가. 세 가지 관점에서 정당민주화의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후보자 경선제의 제도화이며, 두 번째는 다수당원의 소액 정치헌금제의 제도화이고, 세 번째는 중앙당의 해체와 지구당의 활성화이다.

후보자 경선의 제도화

우리 정당의 비민주화 과정의 현저한 사례는 당론결정과 후보자 공천에서 나타난다. 당총재는 제왕적 위치에서 당내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당원들위에 군림한다. 정치적 쟁점이 된 사안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당총재에게 있다. 쟁점사안이나 정책문제에 대해 당원들이 시시비비를 가리고 상호간에 갑론을박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당화합을 저해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즉 ‘해당(害黨)행위’가 되는 것이다. 일단 ‘해당분자’로 낙인찍히면 공천과정에서 여지없이 탈락되기 때문에 일반 당원은 물론, 국회의원들조차 당총재의 의견에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자유로운 담론형성과 자유토론이라는 민주적 정치관행이 자리잡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공천앞에 장사없다”는 준칙아닌 준칙이 실감난다.

뿐만 아니라 당총재들은 대부분 대권주자다. 따라서 당론결정에 있어 대통령 당선에 도움이 되는 의견은 ‘타당한’ 의견이며 도움이 되지않는 의견은 ‘타당하지 않은’ 의견이라고 평가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독특한 ‘이모티비즘(emotivism)’으로 인하여 공공복리나 국익위주의 정치는 무력해지고 오로지 ‘권력에의 의지(will to power)’를 불사르는 마키아벨리적 정치가 자리잡게 되었다. 국민을 위한 공익정치는 사라지고 ‘제왕적 당총재’ 1인을 위한 정당정치가 정착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제왕적 총재’는 공천결정권과 당론결정권을 한 손에 쥐고 있어 한 정당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상향식 공천제와 후보자 경선제가 도입'정착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번 여당과 야당의 대선후보 선출과정에서 ‘국민과 함께 하는’ 국민경선제가 도입됨으로써 본의적 의미의 상향식 공천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특히 변형된 형태의 시민경선제가 도입되어 6'13지방선거때 서울시장 후보 등, 지방자치단체장 선거후보를 선정하는데 지배적인 메커니즘으로 작동한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 후보자 경선제가 아직 한국 정당내에서 안정된 제도로 정착된 것은 아니다. 8'8 재보선에서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필승을 목표로 내세우며 후보자 경선제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후보자 경선제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당민주화의 바로미터가 후보자 경선제라고 하는 사실은 후보자 공천이 밀실공천이나 총재 공천일 경우 일반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호와 괴리를 지닐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는 점에서 나타난다. 즉 정당에서 밀실공천이나 총재낙점을 통하여 대통령후보나 국회의원 후보 혹은 단체장 후보로 공천한 A, B, C라는 인물이 국민들이 평균적으로 선호하고 있는 인물 A', B', C'와 다를 가능성은 실제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당정치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정당의 선택으로 나타난 A, B, C이외에 다른 사람인 A', B', C'를 선택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즉 유권자들이 투표과정에서 아무리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을 하고 싶어도 후보자 세트가 적절하지 못하다면, 제1선호가 아닌, 제2선호, 제3선호의 후보자에게 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특정인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혹은 단체장으로 선출되기는 하겠지만, 법적으로 선출된 특정인 A는 진정 유권자의 마음 속에 있는, 인기 있는 정신적인 대표자와 다르게 된다. 특히 이 문제는 최소한의 논리적 조건이라고 센(A. K. Sen)이 규정한 ‘α 특성(α property)’을 어기게 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예를 들면 한국 권투선수 A가 세계권투 챔피언이라면 한국에서는 당연히 국내 챔피언이 되어야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이것은 전국적으로 혹은 특정 지역에서 지지도가 높은 사람이 특정 정당에서도 공직 후보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밀실공천이나 하향식 공천을 통하여 선발된 경우는 이와 같은 ‘α 특성’을 충족시킨다는 보장이 없었다. 즉 3학년 전교에서 1등 하는 학생이 정작 3학년 1반에서는 2등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물론 후보자 공천의 민주화가 반드시 일반 유권자를 참여시키는 국민경선일 필요는 없다. 때에 따라 당내 대의원 대회에서 경선하는 것도 민주적인 후보공천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총재나 소수집단의 낙점과 같은 형태는 그것이 사전에 아무리 정밀한 여론조사를 해서 그 결과를 토대로 하여 정한 것이라고 해도 하향식 공천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가상적 상황에서 사람들이 특정한 대안을 선택할 것으로 추정하고 그 특정한 대안을 강압적으로 밀어 부치는 경우와 다를 바 없다. 한 예로 제3자의 입장에서 B를 A의 이상적인 배우자로 단정하고 B를 A에게 배우자로 삼을 것을 강요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B가 아무리 이상적 배우자로 추정된다고 해도 A가 자유의지에 의해서 선택한 실제적 배우자와 다를 가능성은 엄존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후보자 공천이 상향식 공천이 될 때 비로소 ‘제왕적 당총재’의 권한은 약화되고 정당은 민주화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수의 거액당비납부제에서 다수의 소액당비납부제로

이번에는 정당 재정 지배구조의 민주화가 정당민주화의 필요조건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정당을 꾸려나가는데는 적지않은 돈이 든다. 그런데 우리 정당의 경우 당원수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 모두 이백만 이상이 되는 거대정당이지만, 정작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은 5%도 안 된다. 결국 90%이상의 당원이 ‘허수당원’인 셈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부족한 돈은 어떻게 메우는가. 당총재가 이에 대한 책임을 진다. 물론 그 다음으로 정당내 소수의 실력자들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마련하여 그것으로 당의 살림살이를 꾸려나간다. 따라서 ‘제왕적 당총재’의 존재이유 가운데 하나도 거대한 당비를 마련할 수 있는 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그러다 보니 은밀한 정경유착과 음성적인 정치자금의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였다.

당연히 당비를 내지 않거나 당비를 조금 내는 당원들의 ‘발언권’은 돈을 많이 내는 당 총재나 실세에 비하여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점은 당비를 내지 않은 당원들에게 ‘주인의식’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거액의 당비를 내느냐하는 문제가 당권(黨權)을 많이 갖느냐 적게 갖느냐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온 것이 우리정당의 관행인데, 이것은 시장과 회사에서 대주주와 소액주주 사이의 차이와 같은 것이다. 물론 우리는 시장이 아닌 정당에서 왜 ‘일원일표(one dollar, one vote)’의 원리처럼, 당비의 액수에 따라 ‘발언권’이 결정되는가 하는 점에 일련의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교회에서도 장로의 헌금은 일반신자의 헌금과 달리 거액이며, 은행에서도 소액예금주보다 거액 예금주에 대한 서비스가 다르다. 또한 비행기에서 1등석 승객과 3등석 승객의 서비스 차이는 크다.

이와 같은 것이 현실이라면, 정당에서 정치헌금 다과에 따라 발언권이 달라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나,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임을 많이 맡은 사람이 권한도 많은 법이다. 결국 정당에서 자유로운 발언이나 토론은 정당의 모든 당원들이 일정한 액수의 당비를 납부함으로써 ‘일인일표(one person, one vote)’와 유사한 평등한 권리를 행사할 때 가능하다고 보여진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일부 당직자들이 거액의 당비를 내는 제도를 불법화하고 모든 당원들이 똑같이 소액의 당비를 각출하는 제도 정착의 필요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수의 소액당비 제도가 정착될 때, 1등 당원과 3등 당원과의 차별도 없어지고 제왕적 당권도 사라질 것이며, 당원들사이에 동등한 발언권이 보장되는 민주정당이 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당의 폐지와 지구당의 활성화

마지막으로 한국 정당의 민주화에 커다란 걸림돌은 거대한 중앙당이다. 우리 정당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지구당은 쇠잔하고 중앙당만 큰 기형적 정당이다. 이 거대한 중앙당의 존재이유가 있는가.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을 보면 중앙당의 총재도, 사무총장도 없으며, 물론 당 3역도 없다. 다만 상원과 하원의 원내총무가 지도자 구실을 할 뿐이다. 주로 대통령 선거때만 후보를 중심으로 한 전국위원회가 가동된다. 따라서 주지사, 상원의원, 하원의원 및 시와 구의 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에서는 지구당이 매우 강력한 구심점 노릇을 한다. 물론 미국과 달리 중앙당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들도 있다. 영국이나 유럽이 그러하다. 영국의 중앙당은 지구당에서 선출한 후보가 부적격이라고 판단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후보선출은 지구당에서 이루어진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중앙당위주의 당운영과 지구당위주의 당운영이 각기 정당성의 논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역사적 경험과 현실적 결과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앙당이 있기 때문에 총재를 정점으로 한 위계질서가 구축되고 중앙집권적 권력을 행사한다. 중앙당은 봉급을 받는 유급당원들로 구성되어있어 관료조직과 같다. 이러한 비대한 중앙당은 결국 그 자체가 하나의 조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조직으로서의 편견과 폐쇄성을 가질 수밖에 없고 또한 위계적 구조, 즉 상명하복의 구조를 유지한다. 그래서 당명에 항거하는 사람에게 ‘조직의 쓴맛’을 보이기도 한다.

실상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비대한 중앙당 조직은 처음부터 정당 모델은 아니었다. 5'16 군사정변이후 민주공화당이 창당되면서 구축된 이원조직이 그 효시였고, 구태여 그 기원을 따진다면 유럽 형태의 정당이다. 유럽의 경우, 중앙당은 물론 민주적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고 정책 창안 등의 순기능을 하는 측면이 있으나, 우리의 경우 당 민주화에 있어 큰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그것은 나름대로의 조직문화, 혹은 제니스(I. Janis)가 말하는 ‘집단사고(group think)’를 가능케 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과거 민주화가 되기 전 강력한 야당은 강력한 정부'여당에 대항하기 위하여 중앙당조직을 거느린 ‘제왕적 당총재’가 나름대로 필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루어진 현시점에서 그러한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중앙당은 폐지되거나 축소되어야 하며, 오히려 국회의원 중심으로 당이 운영되는 체제가 바람직하다. 민주정치의 핵심은 기형적인 중앙당이 군림하는 정당정치가 아니라 의회정치가 아니겠는가.

결국 우리 정당의 비민주화의 원인과 요인은 명백하다. 당의 보스가 공천권을 장악함으로써 당론 결정권도 행사하고 또한 거대한 재정적 헌금으로 당을 꾸려 나감으로써 실질적인 주인행사를 하며, 중앙당을 그 하부조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왕적 당총재’는 위로는 ‘제왕적 대통령’으로 이어지고 또한 밑으로는 ‘제왕적 지구당위원장’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정당의 민주화와 정치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제왕적 당총재’의 폐지가 급선무다.

그동안 당총재가 행사하는 하향식 공천권은 신랄한 비판과 지탄의 대상이 되어 개선의 조짐이 현저하다. 물론 그렇다고 불확실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향식으로 정착될 가능성의 문도 열려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다수 당원의 소액당비 납부제는 아직까지 커다란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제왕적 당권과 관련된 거액당비납부의 병폐가 아직까지 널리 주지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중앙당의 폐해에 대해서는 더군다나 큰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도 정당 민주화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요소들이 하향식 공천제도와 더불어 제왕적 당총재를 가능케 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세 가지 영역에서 개혁이 이루어져 민주화된 정당의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램이다.

박효종(서울대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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