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운동의 상시화방안

박효종 / 2002-09-02 / 조회: 4,733

No.015

대의민주주의 정치에서 국민은 직접 국가의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대신에 선거를 통해서 대표자들을 선출하고 정책결정을 위임하게 된다. 즉 선거는 민주정치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정책결정을 위임하고자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제도다. 물론 선거는 대표자를 선출하는 기능 외에도 선거과정에서 경합하는 정당이나 후보자들의 정강?정책에 대해서 평가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따라서 선거는 대의민주주의 정치에서 국민주권을 구현하기 위해 안출된 가장 유력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선거는 입후보자의 입장에서 보면 공직을 담당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헌법 제25조에서 규정하는 것처럼 공무담임권의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모든 후보자에게 균등한 기회가 공여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선거의 기능으로부터 선거운동의 의미와 역할을 평가할 수 있겠는데, 우리의 관심은 선거운동의 자유가 어느 정도로 보장되어야 하는가하는 점이다. 선거가 대표자를 선출하고 정당과 후보자의 정강?정책에 대한 평가라는 기능 외에 후보자에게는 공무담임을 위한 시험장이라는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선거운동의 자유가 최대한 허용되지 않으면 안된다. 선거운동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됨으로써 후보자와 정당은 자신들의 정견과 소신을 충분히 유권자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되며, 유권자는 어느 후보자와 정당이 자신과 입장을 같이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충실하게 자신의 정치적 선호를 대변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행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을 살펴보면 선거운동에 관한 다양한 유형의 규제와 금지조항이 도처에 산재하고 있다. 선거운동수단에 대한 규제도 있고 선거운동기간에 관한 규제도 있다. 또 허용된 선거운동방법이라고 해도 선거운동 기간전에 이루어지면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된다.

선거법상의 선거운동

우리 선거법을 검토해보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와 금지가 많은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선거운동기간에 관한 규제이다. 현행 선거법상 선거운동은 해당 후보자들의 등록이 끝난 후부터 선거일전까지만 할 수 있으므로(선거법 제59조) 선거운동기간이 아닌 때 하는 선거운동은 모두 금지되어 있다. 선거운동이란 자기나 다른 사람을 당선시키기 위한 모든 행위와 다른 사람을 떨어뜨리기 위한 모든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서 선거운동기간이 아닌 때에 하는 선거운동은 모두 위법한 선거운동으로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선거법 제58조도 이를 명시하여 “선거운동이라 함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누구든지 사전선거운동을 하였다면 그 행위의 종료와 더불어 동시에 죄는 성립되고 그 후의 입후보 여부와는 관련이 없다. 따라서 사전 선거운동을 하다가 적발된 사람은 나중에 후보등록을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사전선거운동을 한 죄로 처벌받을 수밖에 없다.
사전 선거운동 금지에는 물론 상당한 이유가 있다. 상시선거운동을 허용하게 되면 공직 선거에 출마하려는 입후보 예정자들간에 과열경쟁을 불러와 그들의 노력과 경비가 과다하게 소요될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과열경쟁은 결국 선거에 동원할 수 있는 경제력의 정도에 따라 선거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후보자간의 공정하고 균등한 기회보장에 반하게 된다. 경쟁자들간의 경제력에 의한 불평등으로 인해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선거운동의 개시 시기를 특정 후보자간의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고 불공정 경쟁을 막기 위한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인정할 만하다. 헌법재판소도 이와 관련하여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59조에서 정한 선거운동의 기간제한은 그 입법목적, 제한의 내용, 우리나라에서의 선거의 양태, 현실적 필요성을 고려할 때 선거운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하고 규정하고 있다. 그이유로 “우리나라는…수많은 선거를 치러 왔으면서도 아직껏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선거풍토를 이루지 못하고 금권, 관권, 및 폭력에 의한 선거, 과열선거가 항상 문제되어 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권자의 입장과 선거운동

하지만 우리선거문화를 감안할 때 규제가 필요한 현실임을 인정한다고 해도, 합리적 판단기준에 반하는 ‘과도한 규제’까지 정당화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호별방문이나 선거일후 답례, 축의?부의금품의 제공행위 등은 규제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겠으나, 명함을 돌리는 행위까지 규제하는 것은 과잉규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선거운동기간을 법적 규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과잉규제이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기간의 제한은 후보예정자의 사상이나 정견을 주권자에게 알리고 선전하는 기회를 부정하는 것이 되며, 또한 유권자의 입장에서도 후보자를 알 권리와 기회를 박탈하는 셈이 된다. 우선 그것은 입후보자들간의 공정한 경쟁에 위배된다. 특히 정치신인은 자신의 존재를 알릴 기회가 극도로 제한받게 됨으로 기존 정치인과 신진 정치인간의 불평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에 못지않게 유권자의 주권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문제다. 선거운동은 후보자의 입장에서만 조망할 것이 아니라 주권자로서 선거권을 행사하는 유권자의 입장에서도 조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선거란 이미 지적한 것처럼 대표자를 선택하고 정당과 후보자에 대하여 평가를 내리는 등, 다양한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선거를 통하여 대표자를 교체할 수 있어 행정부와 입법부의 쇄신을 기할 수 있음은 물론, 민의(民意)에 의한 정치를 가능케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투표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실현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이 중요하다. 만일 후보자의 도덕성이나 후보자가 내거는 정책에 대하여 정확한 정보없이 선택이나 평가가 이루어질 때 민주선거는 부실한 선거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선거가 유권자의 주권행사와 긴밀하게 연결되려면, 단순히 자유투표나 비밀투표, 혹은 직접투표가 이루어지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유권자의 판단과 심의, 의견이 반영된 ‘합리적 선택’이 필수적이다. 그것은 마치 시장에서 소비자가 ‘소비자 주권(consumer sovereignty)’에 의하여 상품을 구매하려고 할 때 상품을 자유롭게 원하는 만큼 원하는 가격에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문제의 상품에 대한 정보, 즉 상품의 질이나 가격에 대하여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완전정보(perfect information)’를 반드시 확보해야한다는 점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도 ‘완전정보’의 획득은 결코 쉽지않다. 완전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기 때문인데, 아무리 합리적인 ‘호모?에코노미쿠스’라고 해도 두부를 사기 위하여 서울시내 모든 슈퍼마켓을 돌아다니며 가격을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합리적인’ 정보획득이 관건인데, 선거에서도 이 문제는 발생한다.
그러나 특히 선거에서의 정보획득의 문제가 심각한 것은 시장에서의 상품구매와는 달리 선거에서의 후보자선택은 ‘공공재 문제(public goods problem)’의 속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공공재 문제란 내가 기여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기여하면 산출될 수 있는 재화로서, 선거에서 내가 ‘책임있게’ 한 표를 행사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책임있는’ 한 표를 행사한다면, 선거는 유의미한 선거가 되게 마련이다. 문제의 핵심은 선거에서 공공재 상황에서 발생하는 무임승차적 사고에 함몰됨으로써 유권자들이 정보를 얻기 위한 비용지출을 꺼린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원천적으로 부실한 선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민주선거를 제도에 의해서 개선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가 관건이다.
선거운동기간의 제한은 이 점에 있어서, 즉 정보획득의 문제에 있어서 매우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생각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선거운동기간이 매우 짧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면 2002년 12월 19일로 예정되어있는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선거기간은 23일간이며 2004년 4월15일로 예정되어있는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선거기간은 17일간이다. 또 지난 6?1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치단체장의 경우 선거기간은 17일간이었고 지방의회의원의 경우 14일간이었다. 문제는 이처럼 극도로 제한된 기간이 유권자가 다수의 후보자에 대하여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지를 판별하기 위하여 비교적 의미있는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합리적’ 기간인가 하는 점이다. 이 기간이 정보를 수집?분석하는데 턱없이 짧은 기간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보획득의 문제는 특히 정치신인의 경우에 치명적이다. 현역 정치인과 달리 인지도가 낮은 정치신인의 경우, 유권자의 입장에서 그 짧은 기간동안 도덕적 자질이나 공직에 적합한 능력을 나름대로 검증하기란 불가능하다. 선거운동기간이라고 해서 유권자들이 생업에 종사하는 삶의 방식을 정지하는 것은 아니다. 후보자들은 자신을 알리기 위하여 전력투구하겠지만, 유권자로서는 생업에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는 정치생활, 즉 공직자를 선별하고 선택하는 활동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더구나 전국 동시지방선거의 경우처럼 유권자가 한꺼번에 선택해야하는 후보자가 여럿일 경우, 유권자의 정보취득능력이나 정보소화능력은 한계에 달하기 마련이다. 유권자는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지난 지방동시선거에서 후보자 모두에 대하여 정통한 정보를 갖고 투표에 임한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가. 동시선거의 경우 유권자들은 이른바 ‘투표자 피로(voter fatigue)’를 느끼게 마련이다.
그런가하면 선거운동의 상시화를 뒷받침할만한 유력한 근거는 또 있다. 선거법상의 선거운동과 그렇지 않은 정치활동의 구분이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선거법에서도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의 개진이나 의사의 표시, 입후보와 선거운동을 위한 준비행위, 통상적인 정당활동은 선거운동으로 보지 않는다”고 명시하였으며, 2000년 2월 법 개정시에도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대한 단순한 지지반대의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도 선거운동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자의 경우에 선거법이 규정하는 선거운동과 그렇지 않은 통상적 의미의 정치활동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이 문제는 통상적인 정치활동의 일부로 선거운동을 간주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하기 때문에 심각하다. 다시 말해서 정치인들이나 정치지망생은 통상적 의미의 정치활동을 하다가 출마를 결심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않다.
이 경우 양자를 어떻게 질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하는 점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마치 두 연인이 처음에는 친구로 만나 취미를 나누다가 차츰 사랑을 느끼게 되어 결혼을 결심하고 본격적인 데이트를 할 경우, 자유로운 친구사이의 만남과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의 경계선이 모호해지는 상황과 비슷하다. 이 경우 자유로운 친구사이의 만남은 무한정 허용하고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은 일정한 기간으로 한정한다면, 지극히 자의적인 구분이 아닐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통상적인 ‘정치활동’과 특별한 ‘선거활동’의 구분을 전제로 선거운동의 기간에 대하여 규제를 두는 것은 합리적이 아니다.

최소한의 합리적 규제를

분명 선거법에서의 선거운동에 대한 과다규제는 선거의 공정성 향상에 기여하고 고비용선거구조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문제의 규제는 후보자의 공무담임권을 제한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며 후보자와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함으로써 선거에 있어서 ‘합리적 선택’을 저해하고 궁극적으로 선거를 통해서 ‘유권자 주권(voter sovereignty)’이 구현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선거운동에 관한 많은 규제를 폐지하는 것이 실질적인 유권자 주권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물론 우리는 플라톤적 ‘이데아’나 원칙만이 통용되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의 정도는 현 시점에서 한국의 정치풍토, 선거문화, 국민들의 준법정신 등, 기존의 여건을 면밀히 검토해서 복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선거운동에 대한 각종의 제한?금지규정에 대해서 대부분 합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입장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을 감안하더라도 현행법에서 각종 선거운동수단과 기간에 대한 규제는 ‘최소주의(minimalism)’가 아니라 ‘최대주의(maximalism)’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선거운동기간의 규제는 지명도가 낮은 정치신인들을 알고 평가해야하는 유권자들에게는 커다란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선거운동기간을 확대하여 선거일전 120일 정도로 허용할 것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명함을 돌릴 수 있게 하고 인터넷 홈페이지, 전화 등 통신수단을 이용한 자기소개, 선거사무소 간판 게시 등을 허용해야 한다. 즉 상시적 선거운동의 허용만이 그 대안이다. 명백한 부정행위가 되기 때문에 금지?제한될 수밖에 없는 선거운동은 물론 규제의 대상이 되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중립적인 정보제공이나 표현행위에 관한 한, 유권자들의 건전한 판단과 정치시장원리에 맡기는 편이 온당하다고 생각된다.

박효종(서울대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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