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집중 억제책의 폐지

김정호 / 2002-11-23 / 조회: 8,215
No.041

1. 수도권 집중억제책의 내용

지구상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수도권집중억제정책을 택하고 있는 나라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 과거 수도권집중억제책을 시행하던 나라들도 세계화의 진전으로 인한 자본 이동성의 증가라는 현상을 맞아 대폭 완화내지는 폐기했다.

수도권집중억제의 이념은 지역균형개발정책이나 조세정책, 기타 수많은 정책들 속에 녹아들어가 있지만, 직접적으로 수도권집중억제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수도권정비계획법과 공업배치및공장설립에관한법률에 의한 규제이다. 법적으로 수도권이란 서울과 인천, 경기도를 통틀어서 일컫는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수도권을 과밀억제권역, 성장관리권역, 자연보전권역으로 3분한 후, 각각의 지역별로 인구집중유발시설 및 대규모의 토지개발을 규제하고 있다. 과밀억제권역이란 주로 서울과 인천지역이며, 자연보전권역은 팔당상수원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도 동부지역, 성장관리권역은 그 나머지의 지역을 말한다. 규제의 내용은 주로 대학 및 대규모 공장, 공공청사의 신증설에 대한 제한, 택지개발, 관광지개발, 산업단지개발 등 대규모 토지개발 사업의 제한 등이다. 과밀억제권역에서는 대규모의 건물 신축에 대해서 과밀부담금이 부과된다. 또 공장총량제라는 것이 있어 모든 지역의 공장설립허가는 사전에 정해진 총량을 초과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공업배치및공장설립에관한법률은 각 권역별로 설립가능한 공장의 업종과 규모를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결국 수도권집중억제책은 수도권에서의 토지개발행위에 대해서 광범위한 제한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2. 수도권 문제에 대한 오해들

수도권집중억제책은 지역격차가 심하다든가, 수도권이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등의 문제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인식의 대부분은 오해일 경우가 많다.

가. 지역격차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무엇을 기준으로 지역격차를 논하느냐가 중요하다. 1인당 소득을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나라의 지역격차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며 선진국에 비해서도 크지 않다. 물론 지역별 인구의 규모나 산업의 규모를 기준으로 본다면 격차가 늘어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역 정치인들의 입장에서는 중요할 지 모르지만 개별 국민의 삶의 질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국민각자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1인당 소득 수준이며 그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격차는 줄고 있다.

나. 수도권은 이미 지나치게 비대하다?
제한된 면적에 전인구의 몇%가 모여 산다는 사실만으로는 ‘지나치게’ 비대한 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전 인구가 수도권에 모여 산다 하더라도 평균적으로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지나치게 비대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따져 보아야 할 것은 인구와 산업의 집중으로 인한 비용과 편익이다. 인구와 산업의 집중으로 인해 편익이 발생하는 것은 인구와 산업이 한 도시에 집중될수록 노동과 자본의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같은 효과를 집적의 경제라고 부른다. 국토연구원의 연구결과는 우리나라에도 집적의 경제 효과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에서의 집적 효과만큼 소비의 집적 효과도 중요하다. 인구의 집적은 더 다양한 소비, 그리고 더 낮은 가격의 소비를 가능하게 한다. 소비에서도 집적의 경제가 있다.

물론 인구와 산업의 집중에는 교통혼잡과 환경오염 같은 부작용도 있다. 이같은 문제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은 집적의 경제는 살리면서 교통혼잡과 환경오염 같은 부작용은 개별적인 수단으로 치유하는 것이다. 혼잡통행료나 통행세의 부과, 개별적 오염 규제 등은 대표적 수단이다. 교통혼잡이나 환경오염 등을 막기 위해 인구나 산업의 입지 자체를 막는다면 집적의 경제까지 없애는 우를 범하게 된다.

게다가 현재의 수도권 정책은 오히려 이 지역 내의 교통혼잡과 환경오염을 가중시키는 효과까지 갖고 있다. 교통혼잡이 가중된 것은 수도권 정책으로 인해 직장인 공장의 입지가 고착되어 버렸고, 그 결과 주거와 직장간의 통근거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환경오염이 늘어난 것은 상대적으로 환경친화적인 대기업의 입지를 규제한 반면 중소기업의 입지는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다. 수도권 정책의 완화는 수도권의 환경 문제를 악화시킨다?
수도권 규제의 주된 대상은 대기업이다. 그런데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환경친화적이 된다. 첫째는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단위 생산물당 오염 처리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이고, 둘째는 오염 행위가 적발되었을 경우의 손해가 대기업일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의 완화는 수도권에서의 기업의 평균 규모를 크게 할 것이고 그 결과 오염은 줄어들 수 있다.

라. 수도권 규제는 지방경제의 활성화를 가져올 것이고, 국가경쟁력을 높인다?
수도권 정책이 국가경쟁력의 향상으로 이어질지는 수도권에 입지하지 못하는 제조업 자본이 지방으로 갈 것인가, 그리고 지방으로 간 자본의 생산성이 높을 것인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수도권에의 입지가 억제되는 자본의 일부는 분명 지방으로 갈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일부는 아예 투자를 포기하거나 또는 해외로 나가게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어느 정도의 비율이 각각의 범주에 속하는지 확실히 알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개방이 가속화될수록, 그리고 자본유치를 둘러싼 국가간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해외로 나가거나 또는 투자를 포기하는 경우가 늘 것이라는 사실이다.

또 지방으로 간 자본의 생산성도 문제이다. 수도권 정책으로 인한 반사이익을 가장 많이 본 지역은 대전과 충남북이다. 수도권에 입지하지 못한 기업들이 동남권이나 호남권으로 입지하지 않고 충남북 지방에 입지한 것은 그 지역이 수도권에 가장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 수도권의 경제권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이 지역은 지리적 위치는 수도권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수도권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산업의 경쟁력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왕에 수도권 경제권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는 기업들이라면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는 것이 최소의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내용적으로는 수도권에 있으면서 충청도까지의 운송비용을 부담한다는 것은 낭비이고, 그 만큼 우리 산업의 경쟁력은 약해지는 것이다.

수도권 집중에 의해 초래되는 국가경제의 비효율로 주택난, 교통체증, 환경오염, 재정자립도의 격차 등의 현상이 지적된다. 교통체증과 환경오염은 오히려 수도권 정책에 의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음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주택난의 경우도 그리 다르지 않다. 인구가 늘더라도 주택 공급이 원활하다면 주택난은 최소한의 수준에, 그리고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주택난은 지나치게 엄격한 토지이용규제로 인한 토지공급의 경직성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수도권에서의 대규모 토지공급을 제한하는 수도권 규제가 있다.

자치단체 재정자립도의 경우 수도권 집중과는 그리 관련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수도권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의 지방 이전이 많을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인해 지방세수가 늘어날 이유도 없다. 설령 기업의 지방입지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지방세수를 늘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기업으로부터 나오는 세수의 대부분은 법인세나 소득세일텐데 이것은 모두 국세이다. 지방세 중에서는 주민세 소득할이 약간 늘 것이고, 지방 토지가격의 상승으로 종합토지세가 약간 늘 가능성이 있지만 미미한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

마.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느는 등 사회에 부담이 된다?
수도권에의 SOC 투자가 비효율적인지는 투자에 따른 비용과 편익을 동시에 고려해서 판단할 문제다. 투자의 비용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용자가 많기 때문에 수도권 지역에의 SOC투자는 편익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해 크다. 다른 나라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일반적으로 대도시 지역의 SOC에 투자하는 것이 지방에 투자하는 것보다 효율적임이 밝혀져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고려사항은 SOC의 사용료가 징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용료가 0으로 유지되는 한 인구의 규모가 얼마이든간에 SOC의 부족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혼잡통행료 등을 징수함으로서 이들 시설에 대한 수요도 줄이고 재원도 충당하는 방법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바. 수도권 정책의 후퇴는 수도권 자체의 경쟁력 상실로 직결된다?
수도권 집중이 교통혼잡이나 환경오염 등을 악화시켜 수도권 스스로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수도권의 자치단체들이 스스로의 경쟁력 하락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단체장이나 자치의회의원들은 민선이다. 자기 지역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재선되기가 힘들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 지역의 경쟁력과 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허용하는 것이다. 수도권 정책은 이 지역 자치단체의 장이나 의원들로부터 그 수단을 앗아갔다.

예를들어 현재도 수도권의 지방정부는 환경오염을 배출하고 교통혼잡을 야기하는 기업들보다는 오염부하가 작고, 기반시설 등을 스스로 설치하고 들어오는 기업들을 원한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관할인 수도권 정책에서는 오염부하가 높은 중소기업들의 입지는 수도권 지역에 허용하고 오염부하도 작고 기반시설의 상당부분을 스스로 해결하는 대기업들은 여전히 묶어두고 있다. 수도권 지역의 경쟁력을 해치는 정책이다. 이는 중앙정부보다는 지방정부가 더 자기 지역의 경쟁력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함을 보여준다. 수도권 자체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수도권 정책을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3. 수도권집중억제책의 폐지

수도권 정책은 폐지하는 것이 좋다. 수도권의 혼잡문제는 토지공급의 확대와 혼잡에 대한 직접적인 치유가 대안이다. 수도권 규제를 폐지하면 지방정부가 자신들의 필요에 적합한 정책을 택하게 될 것이다.

수도권 정책을 폐지함과 동시에 광역행정체제를 갖추어야 하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수도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부산, 대구, 울산 등 광역시들은 대개 그것을 둘러싼 도나 다른 기초자치단체와 문제를 안고 있다. 중심도시만을 빼내서 별도의 결정권을 주는 광역시 방식은 행정구역의 설정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공간적 외부성의 해결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간과하고 있다. 따라서 사안에 따라 광역행정체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수도권집중억제책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가와는 무관한 이슈로서 다른 모든 지방들도 같이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수도권에 대한 규제가 정 필요하다면 규제보다는 세금이 더 왜곡효과가 더 작다. 물리적 규제를 폐지하는 대신 대학 증원, 공장 설치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과밀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김정호(자유기업원 부원장, kch@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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