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동맹(NATO)의 확장과 미국의 大戰略

이춘근 / 2004-04-07 / 조회: 5,929

1. 들어가는 말


2004년 3월의 마지막 그리고 4월의 첫 번째 주가 되는 일주일 동안, 국제정치 역사상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큰 이슈로 인식되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NATO 확장 계획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결실을 맺은 것이다.


3월 29일 냉전 당시 동구 공산국이었던 4나라(불가리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와 아예 소련 영토의 일부였던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7개국이 NATO 에 가입 했고 그 결과 NATO 회원국의 숫자는 총 26개국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새로 NATO 회원국이 된 7개국의 수상들은 3월 29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재무부(Department of Treasury) 청사 캐시 룸(Cash Room)에서 열린 행사에서 NATO 설립조약에 동의한다는 가입 문서(instrument of accession)를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에게 제출 했고 파월 장관은 북대서양 조약의 수탁국(受託國, Depositary Nation)인 미국을 대표하여 이들을 접수 했다. 3월 29일 오후, 7개국 수상들은 부시 대통령이 베푼 특별 환영 기념식에 참석하여 융숭한 환영을 받았다. 4월 2일 NATO 사령부가 있는 부뤼셀(Brussels)에서 7개국의 국기 게양식이 거행되었다. 국기 게양식이 있은 후 7개국의 외무장관들은 NATO 회의에 최초로 참석, 정식 회원국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꼭 55년 전인 1949년 4월 4일, 미국 및 서부 유럽 12개국으로 구성 되었던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는 이제 유럽 대륙의 서쪽 끝인 포르투갈로부터 구 러시아의 상징 이었던 세인트 피터스부르그(구 레닌그라드)의 턱 밑인 에스토니아에 이르는 전 유럽을 포괄하는 거대 동맹으로 확장 되었다. 지리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동맹은 더 이상 '북대서양’(North Atlantic) 동맹이 아니다. 중부유럽은 물론, 동부유럽, 더 나아가 구소련에 속했던 나라들까지 포함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NATO의 확장은 NATO 회원국의 초청으로 이루어지며 워싱턴 조약 10조는 “이 조약의 원칙을 증진 시킨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북 대서양 지역의 안전에 기여하려는 의도가 있는 어떤 유럽 국가”도 가입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7개국의 회원 가입이 NATO 확장의 끝은 아니다. NATO에는 회원국이 되기 원하는 국가들이 NATO 회원국으로서의 자격을 갖추는 것을 도와주기 위한 조직인 NATO 회원국 행동 계획(NATO Membership Action Plan) 이 있다. 현재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그리고 마케도니아 등 3개국이 이 계획에 들어와 있으며 이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NATO 에 가입할 것으로 예상 되고 있다.


NATO 는 냉전이 끝난 이후 계속 東進하는 확장의 과정을 거쳐 왔지만 이번에 7개국이 동시에 새로운 회원국이 되었다는 사실은 특히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9.11 이후 새로이 형성된 국제체제 속에서 테러전쟁 및 그 이후를 생각하고 있는 미국의 세계 대전략 구상이 본격적으로 보여 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 국제이슈해설은 지난주에 있었던 NATO의 확장을 미국의 세계 전략이라는 맥락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2. NATO 팽창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


NATO 조약 문구 중 어디에도 가상적국의 이름이 거론 되어 있지는 않지만 NATO 가 구 소련 을 상대하기 위한 군사동맹이었다는 사실에 의문의 여지는 없다. 소련은 NATO 의형성에 대항하기 위한 조치로, 특히 1955년 5월 5일 독일이 NATO의 공식 회원국으로 가입한 직후, 바르샤바 동맹(Warsaw Pact)을 결성 했다(1955년 5월 14일). 유고슬로비아를 제외한 동부 유럽 공산국 전부를 회원국으로 하던 바르샤바 동맹은 동구권 공산국의 체제전환 및 소련의 붕괴로 말미암아 스스로 와해되었다. 1991년 3월 31일 바르샤바 동맹 조약은 종식 되었고 같은 해 7월 1일 프라하에서 열린 회의는 바르샤바 동맹의 종식을 공식적으로 선언 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혁신적 新 思考가 국가 안보의 고전적 원칙까지도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었다. 국가 안보란 사상과 이념이 다른 나라들 사이에서는 물론이지만 사상과 이념이 같은 나라들 사이에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지리적으로 인접한 곳에 자신보다 국력이 강한 나라가 존재하는 한 어느 나라라도 국가안보에 대해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재 인간이 이루어 놓은 국제사회의 수준인 것이다.


NATO는 이미 4차례에 걸친 확장이 있었지만 1999년 3월 12일 체코공화국, 헝가리, 폴란드 등 과거 바르샤바 동맹국이었던 3국이 새로이 NATO 회원국으로 가입 했다는 사실은 러시아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당면했던 이 충격은 1999년 3월 이후 NATO 회원국 19개국과 러시아가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지향하자는 소위 19+1 이라는 구도 하에 완화 될 수 있었다. 물론 러시아는 서부유럽 및 동유럽 국가들을 심각하게 위협할 능력과 의도를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이었고 더욱이 미국과 라이벌 관계를 유지할 수 는 없는 상황이었다. 국력에서 미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의 NATO 회원국 확장은 러시아에게 있어 1999년과는 다른 종류의 충격이었다. 러시아는 NATO의 동진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소연방의 공화국이었던 - 즉 한때 소련의 영토였던- 나라들마저 NATO 에 가입하는 것을 말없이 방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이미 지난 2월 7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NATO 안보회의 연설에서 “폴란드와 발트해 연안 국가들에 테러 위협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NATO가 새 기지들을 설치하는 목적은 무엇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어 NATO에 신규 가입함으로써 NATO와 러시아의 협력 관계에 새로운 변수를 초래할 수 있는 나라들에 대해 러시아가 감독관을 파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바노프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NATO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폴란드 및 발트해 연안국들과 러시아가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지역에 군 병력을 대거 투입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 이었다.


블라디미르 퓨틴 러시아 대통령도 역시 4월 2일 NATO 의 동진(東進) 확대가 "국제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러시아는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군사 정책을 재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 전문가들이 러시아 국경 쪽으로 향하는 NATO의 군사 시설 접근을 면밀히 연구하고 있으며 여기서 나오는 결론에 따라 군사적 입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려는 전통적이고 지정학적인 안보 우려임에 틀림없다. 퓨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려한 대로 NATO는, 사실상 미국은, 러시아 국경에 보다 가까운 곳에 자신의 군대를 주둔 시킬 수 있는 합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미군이 우리 국경에 주둔한다는 사실이 러시아에 일종의 노이로제를 일으켰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하원은 3월 31일 NATO 확대 반대 결의안을 가결했다.


3. 새로운 회원국들의 NATO 가입 논리


러시아는 NATO의 동진이 러시아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군사적 대응 조치까지 강구하고 있는 마당인데 왜 과거 러시아(소련)의 지배 하에 있었던 7개 나라들은 NATO에 가입한 것일까? 이들이 NATO에 가입하는 논리 역시 러시아의 반대 논리와 마찬가지로 '국가안보’에 기초를 두고 있다. 구소련 연방국 이었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국가안보가 불안했기 때문에 NATO에 가입한 것이다.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구 소련 위성국, 그리고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 소련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나라들 역시 모두 국가안보가 불안하다는 이유에서 NATO의 새 회원국이 된 것이다.


결국 냉엄한 현실주의적 인식은 아직도 국제정치의 기본적인 작동 원칙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된 것이다. 동유럽 7개국의 NATO 가입은 러시아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러시아는 그들이 NATO에 '포섭’ 되었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NATO 신규 가입국들이 느꼈던 국가안보에 대한 불안의 원천은 바로 러시아 그 자체였던 것이다. 신규 회원들인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는 지난 3월 간첩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했고, NATO는 3월 29일부터 리투아니아에 기지를 둔 F-16 전투기들로 발트 3국 영공을 초계 비행하기 시작했다.


NATO에 파견된 에스토니아 대사 하리 티도(Harri Tiido)는 “에스토니아에게 있어서 NATO가 가지는 첫 번째, 그리고 최고의 의의는 국가안보 이슈이다. 우리는 지난 세기 동안 다른 방법으로 국가안보를 보장 받으려 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실패였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모든 안전보장 장치를 추구하고자 한다. NATO는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하고 궁극적인 안전보장 장치인 것이다”고 언급하고 있다.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의 대사들도 모두 국가안보가 자신들을 NATO 에 가입토록 한 계기였다고 말하고 있다.


약간 특이한 이유를 말하고 있는 NATO 파견 불가리아 대사 에밀 발레프(Emil Valev) 씨는 “불가리아의 NATO 가입은 전략적으로 볼 때 발칸 서부 지방의 불안정을 해소할 것이다. 불가리아는 발칸 지역에 대한 NATO의 작전에 큰 재정적 도움이 될 것이다.... 불가리아의 가입은 유럽 이외의 지역의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며...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전 지구적 노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언급함으로서 이번의 NATO 확대가 가지는 地戰略的(Geostrategic) 의의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4. NATO의 東進 팽창과 미국의 대전략


1949년 4월 4일 NATO의 창설은 유럽 국가들에 대한 소련의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 창설은 미국의 제의와 미국의 주도아래 이루어 진 것이었다. 2차대전의 혹심한 피해복구도 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영국이나 프랑스가 방어적 군사동맹의 형성을 주도할 처지도 아니었다. 독일은 아예 NATO의 회원국으로 고려되지도 못했다. 말 그대로 NATO는 미국의, 미국에 의한 군사동맹 조직이었다. 미국은 NATO 조약 제 5조에서 '동맹국 누구에 대한 공격도 NATO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 한다’는 내용을 명기함으로서 NATO의 집단 방어 및 즉각 대응의 성격을 강조했다.


냉전 체제 해체의 본질적 이유인 소련 및 동부유럽의 해체는 사실상 NATO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었고 탈냉전 상황 하에서 NATO의 존재 목적은 애매한 것이 되었지만 NATO는 탈냉전 이후 오히려 더욱 강화된, 그러나 변화된 모습으로 새로이 나타나고 있다. NATO의 변신 역시 미국의, 미국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작금 NATO의 변화는 '미국을 위한’ 것이라는 성격을 보다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NATO는 창립이후 냉전이 끝나는 1990년까지 한번도 실질적으로 작동(operate)된 적이 없었다. 냉전 기간동안 NATO 회원국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공격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군사동맹인 NATO의 군사력은 한번도 실질적인 전투를 해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붕괴된 이후, NATO의 동맹군은 합동 군사작전을 전개할 기회를 가졌으며, 유명한 NATO 조약 제 5 조, 즉 '동맹국 일국에 대한 침략은 동맹국 모두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한다’도 처음으로 발동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NATO는 냉전이 끝난 후, 특히 9.11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유지에 필요 불가결한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NATO가 동맹으로 군사작전을 벌인 사상 최초의 사례는 코소보에 대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이는 침략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성격의 군사작전 이었다. 독재자 밀로셰비치에 의해 학살당하는 코소보 인들을 구하기 위한 폭격 작전 이었다. 이 작전은 미국과 유럽 동맹국의 군사력 격차를 다시 한번 절실히 느끼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 공군이 폭격작전의 주역이 되었음은 물론 유럽의 NATO 동맹국 전투기가 공격해야할 표적의 대부분을 선정 해 준 것도 미국군이었다. 미국군과 유럽의 NATO 동맹군이 같은 수준으로 전쟁을 수행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계기였다.


더욱 놀라운 사례는 2001년 9월 12일 발생 했다. 미국이 테러공격을 당한 다음날인 이날 NATO는 사상 처음으로 NATO 조약 제 5 조를 발동(invoke) 시켰던 것이다. NATO 회원국 1개국(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은 NATO 동맹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된 것 이었다. 소련이 어느 한 유럽 국가를 공격하는 경우 미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NATO 조약 5조는 '미국이 공격받은 것은 NATO 회원국 전체가 공격 받은 것’ 이라는 거꾸로 된 상황에서 사상 최초로 발동 된 것이다.


역설적인 현상이지만 NATO는 21세기적 국제정치 상황에 오히려 더욱 유용하게 작동하는 조직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대 테러 전쟁을 수행하는데 NATO의 전통적 동맹국 독일과 프랑스는 오히려 부정적인 요인이었다. 프랑스가 NATO 내의 부랑아였음은 오래된 일이었지만 독일조차 미국의 테러전쟁 수행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이미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독일, 프랑스를 구 유럽(Old Europe) 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지칭했지만 미국은 새로운 유럽인 동유럽과 더욱 강한 연계를 가짐으로서 기왕의 NATO 동맹을 재편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전후하여 NATO동맹국인 독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대 했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가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적극 반대하고 훼방한데 대한 미국의 서운했던 감정은 이번 동유럽 7개국의 NATO 가입에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가 평화로울 수 있는 진정한 이유는 미군이 독일에 주둔한다는 사실이다. 7개국의 나토 가입은 미국으로 하여금 독일과 프랑스를 동시에 처벌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물론 미국에 의한 NATO의 동진 확대가 러시아, 프랑스, 독일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NATO의 확대로 말미암아 러시아는 더욱 더 미국에게 국가안보를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이라크 전쟁을 치르기 위해 독일주둔 미군이 빠져 나간 후 독일의 여러 市長들이 미국을 방문, 미군을 다시 독일기지에 재배치 해 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독일 경제는 침체 일로에 있다. 미군이 정말 독일에서 모두 빠져 나가면 독일은 스스로 무장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 경우 프랑스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 미국은 이제 미군을 환영하고 필요로 하는 훨씬 양호한 기지(base)들을 대량 확보 했다. 이번 NATO에 가입한 7개국은 지리적으로 모두 러시아에 가까울 뿐 아니라 중동에도 가깝다. 불가리아, 루마니아는 중동에 가까운 기지로서, 이라크 전쟁당시 쿠르드 족 문제 등등으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터키를 대체할 수도 있는 새로운 기지이며 특히 석유의 마지막 보고인 카스피해 연안에 근접한 지역이다.


이미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을 대 테러 전쟁의 동맹국으로 만들었고 키르기스탄, 카자크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 육군의 기지를 건설한 미국은 중동은 물론, 러시아, 중국을 겨냥하는데, 그리고 프랑스, 독일의 지원 없이도 대테러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에 유리한 전략적 지역들을 착착 확보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의 국제정치가 20세기적 관점에서 그다지 크게 일탈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준 것이 NATO 창설 55주년이 되는 바로 이 에 지구 저편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춘근 / 政博, 자유기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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