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이후 미국의 대외인식 변화와 북한 핵문제: 선제 공격론에 대한 재인식

강규형 / 2004-12-14 / 조회: 5,136

9.11 테러는 세계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냉전체제해체 이후 탈냉전체제의 의미가 정확히 규정 지워지지 않은 채 흘러가고 있을 때 미국을 강타한 9.11 테러는 그 때까지는 희미하게 나타나고 있던 테러리즘 뒤에 도사리고 있던 거대한 실체를 우리 앞에 명백히 보여주었다.


예일대학교 사학과와 정치학과의 석좌교수인 존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는 하버드 대학에서 최근 출간한 “9.11의 충격과 미국의 거대전략”(자유기업원 국제관계 시리즈 3)에서 9.11 테러를 “우리 마음의 DNA를 변환”시킨 충격으로 표현하고 있다. 9.11사건으로 미국은 기존의 “무정책(無政策, non-policy)”이라고 표현할 만큼 낙관적인 세계관을 버리고 새로운 전략을 택해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테러리스트들은 국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전통적인 외교와 군사정책만 가지고는 테러리스트들을 억지(抑止)할 수 없다.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과 “실패한 국가(failed state)”의 양산이라는 요소들과 결합돼 테러리즘은 가공할만한 위력을 보이고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 출현한 부시 독트린은 “미국은 테러리스트들이 어디에 있건 그들을 지원하는 정권과 함께 그들을 찾아내서 박멸할 것”을 천명할 수밖에 없었다.

부시 대통령의 재선으로 향후 미국의 거대전략은 다시 한번 '부시 독트린’의 틀 내에서 결정될 것이다. 미국대선 전까지만 해도“부시가 패배하면...”이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남북한에 공히 많았지만 그런 생각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에 그치게 됐다. 사실상 존 케리가 당선됐어도 스타일 상의 변화는 있을지 몰라도 미국의 거대전략의 근본 틀은 큰 변화가 없었으리라 추측된다. 이제 세계는 좋건 싫건 부시와 그가 이끄는 행정부의 세계전략에 적응해야하는 순간을 맞고 있다.

고령이라 교체가 예상됐던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유임되기로 결정됐고, 온건파인 콜린 파월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부시 대통령과 “코드가 통하는” 콘돌리자 라이스가 오게 되고, 라이스의 후임으로 안보담당보좌관에는 라이스 밑에서 부보좌관을 했던 스티븐 해들리가 임명되는 등 부시 행정부 1기의 안보정책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오히려 더 강화된 측면을 보이기도 한다. 파월과 같은 온건파의 퇴조는 오히려 부시 행정부 2기의 팀웍을 강화시켜 국제문제 있어서 더 확고한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이들 세 사람은 비록 골수 네오콘(neocon)은 아니지만 힘의 우위에 기반한 강력한 외교정책을 편다는 점에서 네오콘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북한 핵 문제에 있어 부시 행정부의 선택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우리에게 초미의 관심사이다. 북한문제 전문가인 조엘 위트(Joel Wit)는 “북한인권문제는 중요한 쟁점이지만 현시점에서는 북핵문제가 최우선 현안”이라는 말로 북한 핵문제가 앞으로 미국외교의 최대관심사가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우리는 북한 문제를 분석하기에 앞서 9.11이후 달라진 미국의 세계전략을 이해해야만 한다. 개디스의 따르면 미국은 9.11의 도전에 따른 미국외교정책의 변화는 다시금 19세기의 일방주의, 선제공격, 헤게모니의 전통으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평한다. 그는 이러한 원칙이 단지 전지구적(全地球的) 규모로 확대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즉, 미국의 새로운 거대전략은 미국적 전통에 깊이 뿌리박힌 전략이며 그것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대응방식을 명료하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새로운 도전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9.11 이후에도 수그러들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위기를 타개하려했다.

그래서 우리는 19세기의 전통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살펴봐야만 부시 독트린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는 21세기의 일방주의, 선제공격, 헤게모니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의 실제 설계자이자 미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국무장관이었던 존 퀸시 애덤스(John Quincy Adams)는 1814년 영국군의 기습공격으로 국회의사당과 백악관이 불탄 사건의 여파로 일방주의와 선제공격, 그리고 “북미대륙에서의”헤게모니 추구라는 이후 1세기 이상 지속될 미국 거대전략의 기초를 닦았다. 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의 아들이자 훗날 단임의 6대 대통령이 됐던 그의 거대전략을 자세히 살펴보자면, 첫째, 약탈자나 강대국들이 미국 이웃 국가의 약점을 이용할 경우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것. 둘째, 미국은 안보를 위해 어떤 국가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일방주의의 선포. 셋째, 강대국 간의 세력균형보다는 북미의 지배적 국제체제가 미국의 힘의 우위를 반영한다는 북미대륙에 대한 헤게모니이다. 둘째, 셋째 원칙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면, 현재 세계적 규모의 헤게모니를 구축한 미국이 일방주의적 태도로 나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미국 내외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 자체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나 임마뉴엘 왈러스타인(I. Wallerstein)같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 조세프 나이(Joseph Nye), 존 개디스 같이 온건파에 속하는 학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미국은 이라크의 경험을 교훈삼아 앞으로 동의에 기반한 리더십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일 것이라 예상한다.
  
우리가 주목해 봐야할 부분은 선제공격의 논리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이 원칙을 무작위적이고 무제한적인 간섭과 공격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짙다. 애덤스는 스페인의 퇴조로 인한 권력공백이나 개척지의 취약한 방어능력을 여타 유럽국가나 원주민, 해적과 같은 비국가적 행위자가 이용하지 못하도록 선제공격의 논리를 발전시켰다. 현대에 있어서 실체가 모호하고 국가와는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움직이는 테러집단은“실패한 국가”들 속에서 배양되고 또 그들을 이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실패한 국가를 이용하거나 또는 실패한 국가가 테러리스트들과 연계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 대표적인 실패한 국가인 북한이 독자적으로 핵을 개발하고 핵무기를 포함한 전략무기를 수출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테러리스트와 그들을 돕는 집단을 용납하지 않는다”라는 미국의 기본 원칙 하에서는 용납되기가 힘든 것이다.


즉 이 원칙은 적대자들이나 실패한 국가가 미국에 위협이 될 때에만 적용되는 원칙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의 확산과 실패한 국가가 결합될 때 나타날 수 있는 무서운 결과를 미국이 용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테러국이었거나 테러행위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데다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나라이기에 특히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실패한 국가로서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고 많은 돈을 내고 이것을 살 의향이 농후한 테러집단에게 팔게 되면 북한이 테러리스트들을 위한 “수퍼마켓”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미국과 다른 국가들이 주목하고 있는 점을 알아야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한 핵문제는 핵문제 자체라거나 남북한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설마 북한이 핵을 우리에게 쓰랴.”또는“통일되면 어차피 우리 것이 될 것 아니냐”하는 식의 순진한 생각을 탈피하고 전세계적인 테러리즘의 문제로 인식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미국의 전 국방장관이자 북한 문제를 그동안 쭉 담당했던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가 “현재 북한이 추진 중인 핵 프로그램은 미국도시에서 폭발할 수 있는 화급한 위험이 되고 있다”고 언명한 것(Washington Post, July 15, 2003)은 이러한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테러집단에게 넘어간 핵무기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위협수단이 될 수도 있기에 이 문제는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과 리비아에 많은 힘을 쏟고 있고 다른 전쟁을 할 여력이 없는 것 같은 부시행정부는 공약대로 일단은 북한문제에 있어 미-북 양자회담보다는 중국이 주도하는 6자회담에 의지하며 관망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외교정책의 마지노선인 제3자(특히 테러리스트)로 전략무기를 확산하려 할 경우에는 무력사용카드를 다시 꺼낼 것은 확실하다.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미국의 "북한의 핵"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해체"(CVID)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는 당장 불가능하기에 당분간은 북한이 더 이상의 핵개발과 핵을 포함한 전략무기를 확산 하려는 시도를 막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즉 북한이 이러한 시도에 대항한다면 '신속결전(rapid decisive operation)’방식의 대응을 최후의 카드로 내세울 확률이 높다. 럼스펠드가 주도해서 세운 미국의 새로운 방위개념은 “신속성과 기동력을 확보하여, 필요시 적재적소에 첨단 군사력과 기동력을 갖춘 병력을 신속히 투입하는 신속결전”이고 또 현재 이라크에 투입되고 있는 것은 주로 지상군이기에, 북한에는 해·공군이 대응할 수도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얼마 전 미 행정부내 대표적 온건파이자 지한파인 미첼 리스 (Mitchell Reiss) 국무부 정책실장이 방한을 해 한국 대학생들과의 대화를 자청했다. 그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맡았었고, 교수 시절에도 지속적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연구했던 미 행정부 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한반도 전문가다. 그는 또한 파월장군이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일 때 그를 보좌했던 경험도 있다. 앞으로 그의 거취가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이나, 그날 대화에서 미첼 실장이 얘기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있은 이 대화의 서두에서 "오늘 들은 얘기를 파월 장관이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에게 그대로 전달하겠다. 여러분의 발언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허심탄회한 논의를 유도하면서 학생들의 질문에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언을 했는데 향후 미국의 정책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발언들이 많았다. 


“미국은 동맹국들에 거만하게 비치지 않도록 대단히 조심스럽게 행동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도 김정일 정권과 북한 주민은 확실히 구분하고 있다. 북한 정권에는 벌을 가하되, 주민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리스 실장은 “결론적으로 미국이 지난 6월 이후 북한이 협상테이블에 나올 것을 종용하고 있지만 5개월간 아무런 행동도 보여주고 있지 않다. 북한이 회담에 응하면 리비아 모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줄 것이다“라며 미국과 상호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상무협정을 체결하며 경제제제에서 자유롭게 돼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리비아의 예를 상세히 들었다. 미국은 리비아와 가다피의 평화적 예를 북한이 따라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한국 국회대표단과의 면담에서 해들리 안보담당 보좌관이 “북한은 이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택하든지, 아니면 계속 고립과 피폐한 경제를 떠안고 살아갈 것인지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확산을 시도한다면 이라크 식의 해법을 찾을 수도 있고 김정일 정권의 전복과 중국에게 호의적인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방조할 가능성조차 있다. 9.11 이후에 미국의 세계적 전략은 근본적인 수정을 했다. 이러한 변화에 남북한 공히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한다. 변화된 전략적 환경에서 결국 북한이 택해야하는 방식은 리비아식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이 돼 평화적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다.


강규형 / 명지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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