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軍의 ‘전략적 유연성’과 한국의 外交노선

홍관희 / 2006-01-23 / 조회: 4,289

1. 서 론


한ㆍ미 양국이 지난 19일 워싱턴에서 '제1차 양국 장관급 전략 대화’를 갖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에 원칙적으로 합의하는 공동 발표문을 채택했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비상사태 시 주한미군을 포함한 전 세계 주둔 미군을 특정 지역의 '붙박이 군대’가 아닌 기동성과 신속성을 갖춘 기동타격 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으로, 미국방부가 추진하는 글로벌 군사전략의 일환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그 개념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도 단순한 군사적 측면이 아닌, 국제정치ㆍ외교ㆍ이념 등의 보다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차원에서 정책방향이 설정되고, 그에 따라 군사적 전략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수년간 발생한 한ㆍ미 관계의 복잡하고 다양한 변화들을 먼저 검토ㆍ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이번 공동 발표문에서는 종래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방침에 대해 완강하게 반대해 온 노무현 정부가 이를 기본적으로 수용한 것이 특징적이다. 물론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의 구체화와 관련, 미군이 동북아 지역 갈등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대목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고찰할 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거나 반대를 관철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미군 내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주한미군이 한국의 국가안보를 지원해 준다는 의미에서 한ㆍ미 동맹의 수혜자(受惠者)이다. 미국이 자국의 결정에 따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활용하되, 한ㆍ미 안보 공약을 실천해 주기를 바랄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으로서는 한ㆍ미 동맹의 이념과 취지를 명분으로 제기하면서, 당면한 국가안보를 유지ㆍ확보해나가는 것이 최상의 전략인 것이다.


본고에서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김정일의 방중 등 최근의 한반도 정세 변화를 토대로, 향후 바람직한 한국 외교의 정책노선을 제시해 본다.


2.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과 배경

한반도에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제기된 것은 중국의 군사적 팽창 특히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 통일 위협이 가시화되면서부터이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한ㆍ미 양국의 시각차가 첨예화되면서 일어난 현상이기도 하다.


그럼으로, 동북아 타 지역 분쟁 시 주한미군을 자유롭게 활용하겠다는 전략적 유연성은 무엇보다도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 공격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가상적이긴 하지만 중국의 대만 공격에 대응할 미국의 군사력이 진정 부족하기 때문에 주한미군의 활용 문제가 일어난 것일까? 그것이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리라는 점에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이슈의 특징이 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한반도와 中東을 세계에서 군사 분쟁 가능성이 높은 2대 분쟁 지역으로 선정,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해왔다. 그리하여, 양대 지역에서 동시 승리한다는 '윈-윈’ 전략을 세워 대처해왔다. 어떠한 세계 분쟁의 경우에도 미국이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철수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만큼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중요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한반도 전략은 어디까지나 굳건한 한ㆍ미 동맹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2002년 말 노무현 정권이 남한에 등장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급격히 변화했다. 의정부 여중생 사망에 대한 反美 세력의 조직적인 시위 주도와 당국의 방치, 친북 언론의 대대적인 홍보로 한국민의 反美 정서는 날로 확산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이후 시시때때로 '자주국방’을 외쳤으며,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하여도 '협상용’ '자위용’이며, '실제로 핵무기가 존재한다는 확증이 없다’는 말로 사실상 핵 대처방안에 있어 미국과 견해를 달리했다. 심지어 '한반도 핵 위기는 미국의 강경정책 때문’이라는 주장이 여권 실세 중에서 공공연히 나올 정도로 대미 불신이 격화되어 온 상태이다. 얼마 전 북한의 달러 위조 등 '범죄행위’에 대한 미국 측 언급에 대응하여 친북성향의 여권 의원이 미국 대사의 소환을 주장하는가 하면, 국회의장이 나서서 미국에 유감을 표명했을 정도이다.


한반도에 있어서의 반미감정 확산, 한국 집권세력의 공공연한 친북ㆍ반미 견해 표명, 여기에 점증하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 등의 변화에 대처하여, 미국은 주한미군을 무의미하게 한반도 비무장 지대에 '붙박이’로 놓아 둘 수는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 대두의 근본적인 이유인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군사적 팽창이 계속되고, 중ㆍ북 관계가 유착되는 상황에서, 북한을 군사적 주적(主敵)으로 인정치 않고 대규모 지원을 통해 '화해ㆍ협력’ 정책을 계속하는 노무현 정부 하에서 주한미군을 현 상태로 마냥 둘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논쟁에는 중국의 팽창과 북한의 대남전략을 둘러싼 한ㆍ미 양국 간 깊은 인식 차이가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는 왜 그토록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반대해왔는가? 한마디로 중국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이 중국에 대항하여 활용되는 것을 두려워 한 것이다. 이른바 '동북아 균형자론,’ '다자안보론,’ '협력적 자주국방론’ 등 이론적 토대와 실천적 대안이 결여된 노무현 정권의 친중ㆍ친북 정책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초래했고, 또 노무현 정부가 이에 반대하게 된 배경으로 파악된다.


3. 변화하는 한반도 정세: 金正日 訪中의 함의

북핵 6자회담이 제5차 회담 이후 결렬 위기를 맞으며,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그동안 한반도 안보의 주요 이슈였던 북핵과 북인권 외에 의 달러 위조 '범죄행위’가 제3의 에이젠다(agenda)로 부상하였다는 점이다. 핵ㆍ인권 이슈와 달리, 달러 위조는 국내법에 저촉되고, 미국의 통화체제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중대 사안이란 점에서 미국 단독으로 김정일 정권을 응징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해 준다.


최근 김정일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 목적에 관해 많은 추측과 가설이 있지만, 가장 주요한 목적은 미국의 금융제재ㆍ압박에 대한 중국의 협조 요청이었고, 부수적으로 6자회담 대책과 중국의 개혁ㆍ개방 촉구 및 지원 보장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북한의 달러 위조 '범죄행위’에 대해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로부터의 압력이 증대되어 왔으며, 특히 미국으로부터의 대북 달러 유입 통제는 김정일 정권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도 효과적인 압박으로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김정일 정권은 독재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달러에 목말라 해 왔고, 상당 부분 중국과 한국의 지원으로 조달해왔다. 물론 북한의 달러 조달에 위폐 제조도 큰 몫을 했다. 이제 미국이 위폐 문제에 본격 대처함으로써, 김정일 체제는 전례 없는 위협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돈 줄을 죈다면 김정일 정권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가설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북한의 달러 위조와 미국의 엄격 대응, 그에 따른 대북 “돈 줄 조이기”는 상황에 따라서는 북한 김정일 체제의 명운(命運)을 결정할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한편 중국은 북한 체제를 유지ㆍ지탱시키기 위해 안간 힘을 다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심화되는 '북ㆍ중 밀착’이 한민족의 통일과 한반도 장래의 관점에서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중국으로부터의 대북 협조ㆍ지원 증대는 북한의 대중 의존도를 높이고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확대를 가져올 것이다. 결국 '북ㆍ중 유착’은 북한 유사시, 지역의 중국에의 예속화 가능성을 높이고, 이는 장차 대망(待望)의 한민족 자유민주 통일에 최대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4.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미ㆍ중 갈등


중국은 작년 가을 후진타오 평양 방문 시, 2006년~2010년에 이르는 동안 매년 15억 달러의 지원을 보장하면서, 북한의 개혁ㆍ개방을 촉구해왔다. 현 북한 체제가 지극히 불안정해짐에 따라, 어떻게든지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중국 지도부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중국의 대북정책은 김정일 체제를 존속시켜, 한ㆍ미 연합 세력의 북진을 막고, 전통적인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개념 하에 북한으로 하여금 '완충지대’ 역할을 지속시키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공산통일 이후 수십 년 간의 혼란과 정체 끝에 1978년 등소평의 개혁ㆍ개방 정책으로 가까스로 발전 도상에 들어섰으며, 지난 30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해왔다. 이런 연유로 중국의 대외정책은 자국의 '국가이익’과 '패권 확장’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반도도 그 예외는 아니다. 중국은 대만을 무력 정복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 핵과 인권 유린을 무자비하게 방치ㆍ방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기본 목표는 국제도의와 국제규범 보다는 동북아에서 미국의 세력을 가능한 한 축소하여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힘을 기른다"), 유소작위(有所作爲: “적극적 개입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화평굴기(和平堀起: “평화로운 발전을 강조”)와 같은 외교 슬로건, 「동북공정」과 같은 한()민족 역사 지우기 음모 같은 사례가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미ㆍ중 간 대립 원인을 미국 탓으로 보려는 시각도 존재하나, 그 논거는 빈약하다. 오히려 미ㆍ중 대립은 대만 문제, 북핵, 북인권 등 도덕적 측면이 포함된 이슈에 대하여 중국이 패권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야기되는 측면이 큰 것이다.


중국은 현재 북한 유사시에 대비하는 원려(遠慮) 차원에서, 북한 체제를 유지ㆍ지탱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면서 남한에 대하여도 친중ㆍ친북 분위기를 조성하여 남북한에 일종의 통일전선을 구축하려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5. 결론: 한국의 외교노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단순히 군대의 이동에 관한 전략ㆍ전술상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전반적인 동북아 및 한반도 외교정책 노선과 직결된 문제이다. 한ㆍ미 동맹을 국가안보의 중요한 토대로 삼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는 한국의 외교정책 노선의 방향 설정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함수관계를 갖는다. 이 문제는 한반도를 둘러 싼 4대 열강과의 관계 속에서 향후 한국이 어떤 외교 노선을 취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시사를 제공해 준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전통적인 한ㆍ미 동맹 하에서 중국 문제에 미국과 공동 대처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한반도의 궁극적인 자유민주 통일을 막고, 붕괴 위기에 처한 북한을 소생시켜 현재의 분단 상태를 현상유지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자유와 인권의 확산’과 중국의 '패권’ 저지, 북한의 핵ㆍ인권ㆍ범죄행위에 대한 엄격 대응 등 국제정치 현실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과 대응전략을 미국과 공유해야 한다. 지금처럼 집권세력이 국제정치 현실에 대해 전반적 인식이 부족하고, '친중ㆍ친북’ 사고와 같은 비현실적이고 편향적인 노선을 계속 추구해서는 곤란하다.


더욱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의 역량 밖의 문제이다. 이렇게 볼 때 노무현 정부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수용은 국제정치 현실의 불가피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곧 제1차 한ㆍ미 전략대화에서 채택된 '전략적 유연성 수용’ 공동합의는 일부 언론에서 표현 한 바와 같이 한국의 양보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사태의 귀결이다. 한마디로 한ㆍ미 동맹 강화와 '전략적 유연성’ 수용은 우리에게 있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결단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전통적인 한ㆍ미 동맹의 기초 위에 중국과의 선린ㆍ우호관계를 유지할 때, 비로소 국운(國運)이 융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동의하는 것은 물론, 이를 지지하고 중국의 위협에 한ㆍ미 양국이 공동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이라크 파병 문제와도 본질적으로 같다. 곧 동맹의 취지에 따라 공동의 '위협’ 및 '적’ 인식을 공유하면서,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뿐만 아니라, 한국도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할 때,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홍관희 / 정치학박사, 안보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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