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에 관한 진짜 문제

김영준 / 2020-01-17 / 조회: 13,906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즉, 공수처법이 1월 14일부로 제정되었다. 공수처법은 선거법 개정과 더불어 2019년 가장 논쟁적인 화두였다. 이번에 제정된 법의 골자를 검찰 권력 분산이라는 본래 취지에 주목하여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공수처장은 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2명 중 1명이 임명된다. 2) 수사처검사는 인사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임명된다. 3) 수사처검사는 법원, 검찰, 경찰의 고위공직자를 기소할 수 있다. 4) 공수처장은 수사처검사의 직무를 자신, 혹은 다른 수사처검사가 대신 처리하게 할 수 있다.


인사위원회와 수사처검사 등을 공수처장의 의지대로 임명·지휘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공수처장이 결정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공수처장을 대통령이 마음대로 임명할 수 없게 했다고 주장했고, 한국당은 공수처장을 대통령 마음대로 임명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맞섰다. 이 논쟁의 쟁점은 7명의 추천위원회 정원 중 의결정족수에 해당하는 6명을 대통령의 의중대로 구성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철저히 이 쟁점에서 양 측의 입장을 보면, 6명의 위원이 대통령 마음대로 결정되긴 어렵다는 민주당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고, 그럼에도 6명의 위원이 대통령 마음대로 결정될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있다는 한국당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는 추천위원회의 구성 방법에 있지 않다. 민주당의 주장처럼 2명의 야당 교섭단체 위원이 한국당의 의중대로 결정되는 현실적인 상황을 생각해보자. 나머지 5명의 위원은 대통령에게 유리한 후보 2명을 추천하려 한다. 한국당 측 위원 2명은 당연히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후보를 모색한다. 다시 5명의 위원은 대통령에 유리한 후보를 추천하려 하고, 한국당은 거기에 반대한다. 여기서 잠시 공수처법에 대한 찬성 여론이 현재 압도적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떠올려보자.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의 반대로 공수처장 추천이 계속 미뤄진다면, 한국당은 자신들의 비리를 숨기기 위해 공수처장의 결정을 끝까지 미루고 방해하는 적폐집단으로 몰릴 것이다. 실질적으로 한국당은 민주당과 대통령의 의중에 따르도록 법 외적인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져 민주당과 대통령의 의중대로 공수처장이 결정된다면, 공수처는 한국당 의원과 보수 성향의 고위공직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공직비리 수사를 벌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수사가 이뤄질 때, 한국당 의원들이 평균적으로 다른 당에 비해 얼마나 결백한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수사의 대상은 한국당 진영으로 사실상 좁혀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설령 공직비리를 저지른 의원이 한국당보다 민주당에 더 많다고 하더라도, 그들 의원은 그 당장에는 한국당을 우선 수사하려 할 공수처의 수사대상이 되지 않는다.


공수처가 사실상 정치적 정적제거에 이용되는 이런 상황이 찾아왔을 때, 여기에 외부적 견제장치로 작용해줄 수 있는 것이 국민들의 관심이다. 국민들이 공수처의 제도적 허점을 간파하고 특정 세력을 향한 표적수사에 악용될 수 있음을 알아챘을 때, 정말로 공수처를 그런 방식으로 악용하려 했던 여당과 대통령은 더 이상 공수처를 악용할 수 없게 된다. 그랬다가는 다음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정치계에 대한 혐오가 너무나도 만연해있다. 안타깝게도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은 건전한 의회정치의 존속보다는 부패한 고위공직자를 향한 ‘정의’의 집행에 있는 것 같다. 민주당이 한국당의 의원들을 하나 둘 척결해가는 모습은 하나의 국민적 스포츠처럼 소비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이 그랬듯 말이다. 또한 실제론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수사의 대상이 되면서 범죄자로 몰리는 상황도 충분히 가능하다.


공수처장을 누가 결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사실 진정한 문제가 아니었다. 공수처 구성의 방식을 떠나서, 공수처라는 기관 자체가 이미 정적제거에 악용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수처의 설치는 필연적으로 검찰 권력의 분산이 아닌 ‘검찰 업무의 분산’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권력의 개’라고 불렸던 검찰이 둘이 된 것일 뿐이다. 공수처를 설치한다고 해서 지금껏 청산되지 못했던 부패가 마법처럼 청산될 수 있을까? 오히려 정치적 경쟁자의 비리를 선택적으로 부각하면서 다른 쪽의 비리는 감쪽같이 여론의 분노에 묻어버리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이후로 이어져 온 보복의 정치가 더욱 심화될 것이고, 의회정치는 정상적인 기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공수처법은 이미 통과되었다. 올해 총선으로 새로이 국회가 구성될 것이고, 공수처법은 7월 15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적어도 내년까지는 공수처법을 개정하거나 무를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공수처의 허점을 간파하고 이를 악용하려는 세력을 매섭게 감시하는 국민들의 역할일 것이다.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면서 고위공직자들이 검찰에 불려가는 모습에 환호하는 데에 그친다면, 국회에는 더 이상 진정 국민 편에 서서 정치를 할 사람이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의 권리와 자유는 조금씩 사라져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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