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 창출하는 가치

김수지 / 2021-12-21 / 조회: 304

세상은 빠르게 변화한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듯,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나지만 그만큼 많은 직업들이 사라진다. 경영과 경제를 배우면서 모든 경제 활동의 목표는효용성 증대, 이윤 극대화같은 것들일 거라고 생각해왔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속도가 더딘 노년층도 이제는 이런 사회에 적응해내는 것만이 살아남는 법이라는 의견에도 어느정도 동조했다.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대학에 입학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된 셈이다. 일을 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의외로 의사소통이었다. 이미 대중들에게도 주문하기 어려운 프랜차이즈로 익히 알려져 있기도 했다. 샌드위치 하나를 만드는 데에 메뉴와 빵의 종류, 치즈의 종류, 야채의 구성과 소스까지도 고객이 모두 선택해야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고객도 번거롭지만 직원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이가 많은 손님들의 경우 매장에 처음 방문해본 탓에 무턱대고아무거나 달라니까!” 하며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고, 젊은 층의 경우에도 주문이 익숙하지 않아서, 혹은 프랜차이즈 특성인 엄격한 제조 규칙 때문에 서로 난감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서로 마스크를 끼고 대화를 하다 보니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이렇게 일하는 내내 손님과 말씨름을 하다 보니 모든 직원들의 염원은 자연스럽게 매장에 키오스크를 설치하는 것이 됐다. 그간의 경험을 비추어 본다면 직접 손님과 대화하며 주문을 받는 것보다 배달 주문으로 들어온 영수증을 보며 만드는 것이 훨씬 수월했기 때문에 매장에 키오스크를 설치한다면 모두에게 -윈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러 건의를 해보았지만 그럴 때마다 본사의 방침은소통이라며 거절당했다. 고객과 소통의 문제로 발생하는 컴플레인이 얼마나 많은데, 이들은 일의 능률, 효용성 증대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아닐까 하는 불만 섞인 의문도 들었었다. 그때까지의 나는 적어도 내가 일하고 있는 패스트푸드점 내에서는 소통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오후, 명의 손님이 매장으로 들어왔으나 곧바로 주문을 하지 않고 바로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했다. 순간 머릿속에가서 주문 방법을 알려주어야 하나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손님들이 몰려 그럴 틈이 없었다. 조금 줄지어 있던 손님들이 모두 매장을 빠져나가고 잠시 여유가 생겼다. 명의 손님이 그제서야 일어나 주문을 하러 왔다. 손님이 모두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어째서였을까?


손님 명은 수월하게 주문을 마쳤으나 다른 명은 약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주문 방법에 관련된 어려움이 아니라 언어의 문제인 같았다. 주문 내용을 되묻는 것이 혹여 실례가 될까 망설이고 있던 찰나에 함께 손님이 발음을 수정해주며 주문을 끝마치도록 도와주었다. 결제까지 모두 마친 후에 손님이 말했다. 자신이 장애인 활동 보조사이며 환자의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가끔 매장에 온다고 했다. 다른 식당이나 커피숍의 경우 메뉴를 고르기만 하면 대화가 끝나는 반면에 이곳은 샌드위치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최소 다섯 이상의 질문과 대답이 오가기 때문에 대화가 계속 이어지게끔 연습하기에 제격이라고 했다.


손님들이 다녀간 이후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코로나 이후 사람들을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고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언어발달기인 아동들의 언어능력이 심각하게 저하되고 있다는 기사를 봤었다. 시기에 그들에게는 음식점이 그저 의식주의 식을 충족시키기 위한 곳이 아니라 하나의 교육의 장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러한 기회를 제공할 있다면 속도가 조금 느리고, 효용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괜찮다고 있지 않을까? 이윤 극대화만을 최종적인 목표로 하는 전통적 의미의 경영, 경제 성공보다 가치 창출을 목표로 하는 현대적 의미의 성공을 좇는 것이 어떨까?


패스트푸드점의 계약직 직원일 뿐인 내가, 나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를 작은 변화를 위해 오늘도 손님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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