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 12.8%와 책임 50.1%: ‘누가 누구를 돕게 할 것 인가?’

김상현 / 2021-06-09 / 조회: 578

'모든 A는 B할 권리가 있다.’라는 형식의 문장에서 A와 B에 무엇을 대입하여도 타당한 듯 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위의 문장을 당위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도 보인다. “모든 아동은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라고 주장한 프랑스 혁명의 로베스 피에르가 정작 우유 값을 높인 것처럼, 4년 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주장으로 정권을 잡은 정부여당의 역선택이 만들어낸 사회적 비용은 국민 모두가 지불해오고 있다. 위 문장의 형식에서 지칭된 A와 B 자체가 잘못 설정된 원인도 있겠지만,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어떠한 종류의 책임이 따른다는 전제를 간과한 가능성도 크다.


이러한 권리와 책임이 동일한 사람에게 귀속되지 않는 문제는 지난 4년 동안 심화되었다. '국가로부터 내가 어떠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거나 '나에게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 요구되어야 한다'라는 '권리의 문제’가 다수에게는 중요한 주제였지만, 정작 이러한 권리를 가능케 하는 '책임의 문제’는 소수에게만 중요했다. 정치의 영역에서 이 소수의 표는 필요가 없었다.


지난 4년 동안 정부, 여당은 법인세법과 종합소득세법에서 모두 초과누진구간을 신설했고, 그에 맞게 최고세율을 높이는 세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모든 국민은 납세에 있어 평등할 권리가 있지만, 정작 책임을 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원칙이 적용 되지 않았다. 오히려 배제되었다. 종합소득세의 경우, 명목세율은 6%에서 45%까지 8단계에 걸쳐 차별적으로 구성되었고, 법인세율도 10%부터 25%까지 4단계로 그 누진성을 심화시켰다. 소득공제, 세액감면, 세액공제의 단계마다 개정된 조특법도 누진성을 강화하는데 한 몫 했다. 


그 결과, 국세통계에서 제공하는 2020년 귀속 종합소득세의 납부현황에 따르면, 총수입금액 상위 1%의 종합소득자가 전체 총수입금액의 12.8%의 소득을 벌어들이는데, 이들이 납부하는 결정세액은 50.1%로 전체 종합소득세 세원의 반 이상을 납부하게 되었다. 많이 벌었으니 많이 내는 것이 당연하다면, 각자 버는 만큼 납부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조세형평성을 수직적 평등과 수평적 평등을 분리해가면서 까지 고소득자에게 책임을 가중시키다보니 이 수치에 이르렀다. 소득 양극화가 사회적 재난수준이라고 주장하던 어떤 정치인의 말처럼 소득양극화를 줄이기 위해 누진성을 강화하다보니 극단적 조세의 양극화라는 문제를 허용했다. 양극화를 막기 위해 조세를 양극화시키자는 것이 작년 정치인들의 양심 수준이였다.


시장경제는 경제주체들이 생산하고 소비하여 각자의 효용과 구매력에 따라 경제활동을 반복하면서 균형을 만들어가는 의사결정 구조이다. 이는 인위적이거나 작위적이지 않고, 참여하는 누구나에게 n분의 1이라는 기회에 나에게 주어지는 프로세스로 작동된다. 어떠한 재화나 용역에 맞는 가격과 거래량으로 호흡하면서 시장경제는 가장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가장 공정한 의사결정시스템이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장경제체제에서는 자신의 경제행위에 대해 '구매한(판매한)A와 A에 해당하는 제한적 권리(의무)’를 가질 뿐, 정부나 제 3자가 규정하는 B라는 권리를 취득하지는 않는다. 


12%의 몫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50%의 책임을 강요한다면, 나머지 88%의 몫은 가져가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이 져야할 책임을 적게 지는 셈이다.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본소득을 이야기할 때는 굉장한 공동체주의자가 되지만, 자신의 납세에 대해서는 엄청난 자유주의자가 되어 자신의 소유권과 재산을 보호하려 한다. 공짜 점심은 없듯이, 자유에도 대가가 따른다. 시장경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유를 방임’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자유는 내적통제가 포함된 개념’이라는 칸트의 설명을 정작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위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4년 전, 광화문에서 양초에 불을 붙이며 들었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팻말에 빠진 전제도 이와 같다.


*종합소득세 납부현황자료는 TASIS 국세통계포털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TOP

NO. 수상 제 목 글쓴이 등록일자
41 최우수상 시장경제와 패션
김영민 / 2023-11-29
김영민 2023-11-29
40 최우수상 공평을 무기로 행사하는 불공평
김영휘 / 2023-11-29
김영휘 2023-11-29
39 최우수상 돈 안 받아도 돼요, 일하고 싶어요!
김한소리 / 2023-11-29
김한소리 2023-11-29
38 최우수상 지방, 이대로 괜찮은가?
최진송 / 2023-11-29
최진송 2023-11-29
37 최우수상 막걸리 시장에 시장경제가 유지됐으면 어땠을까?
이종명 / 2023-11-29
이종명 2023-11-29
36 최우수상 See far : 재산의 자유, 미래 발전을 위한 상속세 폐지
김지수 / 2023-11-29
김지수 2023-11-29
35 최우수상 기본으로 돌아가자 : 기업의 이윤 극대화 추구와 노란봉투법
이서진 / 2023-11-29
이서진 2023-11-29
34 우수상 인간의 심리과 경제의 교차 : 반려동물 장례식
정민식 / 2023-11-29
정민식 2023-11-29
33 우수상 공매도 금지, 과연 올바른 선택인가?
조민석 / 2023-11-29
조민석 2023-11-29
32 우수상 천연다이아몬드 사라질까?
김현수 / 2023-11-29
김현수 2023-11-29
31 우수상 우리 가족의 시장경제
김은철 / 2023-11-29
김은철 2023-11-29
30 우수상 대학교육 탈상품화에 대한 논의
정형준 / 2023-11-29
정형준 2023-11-29
29 우수상 노동의 시장가격과 최저임금제
조남현 / 2023-11-29
조남현 2023-11-29
28 우수상 코미디계의 흥망성쇠로 보는 시장경제
이득영 / 2023-11-29
이득영 2023-11-29
27 우수상 유튜브의 소비자 선택 알고리즘
정은서 / 2023-11-29
정은서 2023-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