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세상`은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가

김성준 / 2020-12-08 / 조회: 923

두어 달 전쯤 친구가 결혼하던 날 있었던 일이다. 코로나로 세상이 참 어수선하니 친한 지인 몇몇만 모이는 작은 결혼식을 올렸는데, 나는 다행히 '친한 몇몇’에 속해 초대받을 수 있었다.


결혼식 전에 당연히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다듬었다. 다 끝나고 계산을 할 때 미용실 사장이 대놓고 현금으로 결제해줄 것을 요구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줄 것도 아닌 듯했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니 “코로나 때문에…….”라고 말을 흐리며 쑥스러워 했다.


자영업자가 현금 결제를 유도하고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주지 않으면 국세청의 소득 파악을 방해하는 행위이므로 거부금액의 5%를 가산세로 납부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재차 위반하면 20%를 납부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 동네 미용실 사장님은 간 크게도 영수증은 딱 빼먹고 현금 운운을 하는 게 아닌가. 코로나 때문이라고 하는데, 요새 아무리 코로나가 만능열쇠처럼 선택적으로 강제력의 근거까지 된다 해도 이건 너무 하는 게 아닌가.


뭐든 코로나 핑계를 대는 게 괘심해서 카드를 내밀고 나오는데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그리 상쾌하지 않았다. 너저분한 머리카락을 다듬고 쿨샴푸로 머리까지 감았는데도 뭔가 찝찝한 느낌을 안은 채 미용실을 나와야 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비슷한 일은 결혼식이 끝난 후 친구들끼리 뒤풀이를 할 때 또 벌어졌다. 1차로 가볍게 맥주를 마시고, 2차로 삼겹살집을 갔는데 두 가게 모두 계산할 때 현금 결제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물론 강제로 요구할 수는 없으니 “현금으로 결제해주시면 천 원 단위는 받지 않겠습니다.”라고 흥정까지 하는 게 아닌가.


아무리 세금을 제대로 내는 게 아깝게 느껴져도 천 원 단위까지 안 받는다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순진한 것이었다.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건전하게 행동하면 뒤통수를 맞나 보다.


알고 보니 요즘 어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관련 긴급지원금을 기대하고 저런다는 것이다. 즉 매출이 실제 발생했어도 현금 결제 유도를 통해 집계에 포함되지 않으면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 돼 망하기 직전”이라고 읍소한다는 것이다. 장사는 손님을 상대로 하는 것인데 코로나 타령이 워낙 횡행하다보니 어떤 자영업자는 손님보다 정부를 상대로 긴급지원금을 흥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부정직과 거짓은 정직하게 장사하는 소공인의 근로의욕을 꺾고, 스스로의 자립심을 깎아내려서 정부에 대한 의존도만 키우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 번 어딘가에 기대보면, 그래서 공짜 돈맛을 보면 그 달콤함을 잊을 수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라는 전무후무한 이벤트가 끝난 뒤에 또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지 않았던가.


이런 세태를 보면 지금 우리의 진짜 위기가 코로나 때문인지, 코로나를 핑계로 판을 치는 부정직 때문인지 명확해진다. 어떤 위기든 결국 극복돼 왔고 코로나 역시 조만간 이겨낼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물러간 자리에 저런 의존하는 행태, 비자립적 읍소, 자조하는 정신의 실종, 공짜를 맛본 경험 등이 남는다면 우리 시장 경제는 그때부터 진짜 위기를 맞게 될까 걱정이다.


정말로 기가 막힌 것은 저런 그릇된 세태를 나쁘다고 표현할 수도 없는 분위기다. 언제부턴가 이른바 '아름다운 oo’, '착한 oo’ 등의 슬로건이 유행했고, 그 '착한 oo’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처럼 몰리고 있다. 착한 것이 무엇인지는 특정집단이 정하고, 그 '착한’ 행동이 아니면 모조리 나쁜 것이 된다. 즉 '착함’이라는 가치를 정하는 독재적 판단과 '착함’이 아니면 다 악하다는 흑백논리가 우리 의식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그 예로 동대문 두타타워 입점 상인들이 “코로나로 매출이 급감했다”라며 두타몰을 상대로 월세 인하를 요구하는 걸 들 수 있다. 하지만 두타몰 측은 “지난 2월부터 임대료를 10~30% 할인해 주고 있기 때문에 감액 청구권 대상이 될 수 없고 추가 인하도 어렵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이 사례를 보면 마치 임대업자는 가만히 앉아서 아무런 비용 지출 없이 임대수익만 올리는 줄 알겠다. 그래서 세입자가 깎아달라고 해서 응하면 '착한 임대인’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임대인’이 되는 모양새다. 이미 '착한 임대인 세액공제’ 제도가 있기에 '세 인하=착한 임대인’이라는 이상한 등식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정된 상법의 지원사격을 받는다 하더라도 저런 식의 요구는 시장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황소개구리 심보나 다름이 없다. 코로나로 입점 상인이 힘들다면 두타몰 역시 손님 급감으로 경영이 악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막무가내로 월세를 깎아달라고 한다면 이제 누가 임대업을 할 수 있겠는가. 누가 막대한 자본과 위험부담을 떠안으며 건물을 올리고 유지하고 상권을 형성할 것인가.


잠깐만 생각해봐도 '착한 oo’은 현실 속에서, 특히 시장에서 나쁘게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가 경험한 소상공인 긴급지원금이 딱 그런 경우가 아닌가.


코로나는 결국 지나간다. 그러나 코로나가 물러간 후 그 상처가 어떻게 아물지, 우리에게 남은 것이 무엇일지, 그래서 우리 앞에 다가올 더 큰 위기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걱정이다. 지금 분위기를 보면 그 걱정이 괜한 것만은 아닌 듯싶다.

       

▲ TOP

NO. 수상 제 목 글쓴이 등록일자
41 최우수상 시장경제와 패션
김영민 / 2023-11-29
김영민 2023-11-29
40 최우수상 공평을 무기로 행사하는 불공평
김영휘 / 2023-11-29
김영휘 2023-11-29
39 최우수상 돈 안 받아도 돼요, 일하고 싶어요!
김한소리 / 2023-11-29
김한소리 2023-11-29
38 최우수상 지방, 이대로 괜찮은가?
최진송 / 2023-11-29
최진송 2023-11-29
37 최우수상 막걸리 시장에 시장경제가 유지됐으면 어땠을까?
이종명 / 2023-11-29
이종명 2023-11-29
36 최우수상 See far : 재산의 자유, 미래 발전을 위한 상속세 폐지
김지수 / 2023-11-29
김지수 2023-11-29
35 최우수상 기본으로 돌아가자 : 기업의 이윤 극대화 추구와 노란봉투법
이서진 / 2023-11-29
이서진 2023-11-29
34 우수상 인간의 심리과 경제의 교차 : 반려동물 장례식
정민식 / 2023-11-29
정민식 2023-11-29
33 우수상 공매도 금지, 과연 올바른 선택인가?
조민석 / 2023-11-29
조민석 2023-11-29
32 우수상 천연다이아몬드 사라질까?
김현수 / 2023-11-29
김현수 2023-11-29
31 우수상 우리 가족의 시장경제
김은철 / 2023-11-29
김은철 2023-11-29
30 우수상 대학교육 탈상품화에 대한 논의
정형준 / 2023-11-29
정형준 2023-11-29
29 우수상 노동의 시장가격과 최저임금제
조남현 / 2023-11-29
조남현 2023-11-29
28 우수상 코미디계의 흥망성쇠로 보는 시장경제
이득영 / 2023-11-29
이득영 2023-11-29
27 우수상 유튜브의 소비자 선택 알고리즘
정은서 / 2023-11-29
정은서 2023-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