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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기’ 안에 숨은 시장경제의 원리

배승주 / 2022-05-16 / 조회: 301

어릴 적부터 엄마와 사이가 좋아 자연스럽게 장을 보러 동행하는 일이 잦았다. 장을 보러 가는 일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푸는 일종의 놀이이자 행사였다. 집 근처 작은 슈퍼도 가고는 했지만 대부분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가는 일이 잦았다. 마트에 들어서면 마치 오락실에 입장하는 것처럼 100원짜리 동전을 준비해서 카트에 insert coin을 해야 본격적인 장보기 게임이 시작된다.


마트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과일과 채소 코너이다. 다 비슷해 보이지만 과일 하나하나를 이리 보고 저리 봐서 빛깔 좋고 상처가 덜 나 있는 과일들을 골라서 비닐봉지에 하나씩 차곡차곡 담는다. 그러다 문득 얼마인지 보지도 않고 담았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눈을 들어 판매가가 얼마인지 찾아보는데 보통 두 가지 가격이 적혀있다. 첫 번째는 개당 얼마인지 두 번째는 묶음당 얼마인지 표시돼 있다. 묶음당 가격이 개당 가격보다 동일 개수 대비 더 저렴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얼마나 과일을 담았는지 세어보고 할인이 들어가는 개수에 맞추어 한 두 개쯤 더 넣는다. 어떤 때는 열심히 담았는데 옆에 박스에 들어있는 과일이 더 맛있어 보이고 향기가 달콤한 경우가 있다. 이 땐 비록 개당 가격이 더 비싸더라도 정성스럽게 담은 과일을 새로운 주인을 위해 놓아주고 박스 채 담기도 한다. 과일 코너를 빠져나와 식재료 코너로 간다. 고기와 생선은 시간을 잘 맞춰오면 마감 세일 시간대여서 기존 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기분 좋은 소비를 할 수도 있다. 보통 이럴 때는 제품의 신선도나 품질은 조금 떨어질 수 있지만 그래도 가격 대비 훌륭한 거래라고 할 수 있다. 어릴 적에 엄마와의 이런 나들이는 단순히 즐거운 장보기 게임이었지만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이건 비유적인 의미의 게임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Real game” 이었음을 알게 됐다.


일반적으로 대형마트는 규모의 경제로 인해 주변 다른 소형 슈퍼보다 가격 경쟁력이 생긴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은 대형마트를 찾게 되고 수요가 늘면 제품의 회전율이 높아져 더욱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다시 거리 때문에 망설이던 수요자까지 끌어 모으는 인센티브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형마트는 그 지역에서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갖게 된다. 독점적 지위를 갖추었다고 하지만 가격을 무작정 높게 설정할 수는 없다. 대신 이윤 극대화를 위해 고민한 기업들은 ‘가격 차별’이라는 메커니즘을 고안한다. 이론적으로 가격 차별은 1급, 2급, 그리고 3급으로 나뉜다. 1급 가격 차별은 수요자 개개인의 수요 패턴을 완벽히 알아야 하므로 효용 대비 비용이 너무 커서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수량별로 구별하는 제 2급 가격 차별이나 소비자를 그룹별로 구별하는 제 3급 가격 차별 방법이 사용된다. 제 2급 가격 차별은 앞서 과일의 두 가지 가격 즉, 개당 가격과 묶음당 가격이 그 사례이며 제 3급 가격 차별은 타임세일로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각종 가격 차별은 대기업에게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얻게 해줌으로써 그들은 지역 상권을 쥐락펴락 할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레 중소기업이나 개인 사업자에게 큰 타격을 입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격 차별로 인해 비단 생산자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효용극대화를 달성하게 해주고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사회 후생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해준다. 


먼저 생산자 입장에서 보면, 대형마트는 소비자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저렴하게 팔아야 하고 저렴하게 팔기 위해서는 대량 생산으로 원가를 낮추고 싶어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어느 정도로 생산해야 하느냐?’ 이다. 특히, 식재료처럼 보관이 어렵고 보관 비용이 많이 드는 상품인 경우 이윤을 극대화 하기 위해 재고를 쌓거나 폐기하지 않으면서 제품들을 그때그때 팔고 싶어한다. 그렇다고 부족해서 못 팔게 되는 그런 비효율적인 상황은 맞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기업은 시장경제를 십분 활용해 고객층을 나누는 전략을 사용한다. 비록 모든 소비자 개개인에 대해서 구별할 수는 없지만 역으로 특정 기준을 세워 놓고 소비자들이 그 분류로 들어가도록 시스템을 구축시킨 것이다. 예를 들어 대량 구매 시 개당 가격을 낮춤으로 박리다매를 목표로 하거나 깜짝 마감 세일로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은 상품들을 폐기 대신 ‘떨이’로 처분하는 것이다. 이는 고객들의 성향을 일일이 조사할 필요 없이 소비자들 스스로 본인들을 구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업들은 데이터가 쌓이면 그 정보를 기반으로 최소한의 오차 범위 안에서 생산량과 재고량을 추정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고객들의 만족도도 높이면서 기업들의 이익 또한 증가시킬 수 있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가격 차별은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무수히 많은 소비자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제각기 다양한 배경과 취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들에게는 가지고 있는 자원 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 경제적 자유가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가지 공통된 것은 각자의 효용을 극대화시키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도와주는 것이 바로 가격 차별이다. 예를 들어 어떤 소비자는 소비 자체뿐만 아니라 쇼핑을 하는 행위에서도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소비자에게는 대량으로 구매해서 식재료를 쌓아두기 보다는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반대로 한 번에 대량으로 장을 봐 거래 비용을 줄이는 것을 선호하는 소비자는 다량의 물품을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효용을 높인다. 또 다른 예로는 자신이 중요시 하는 것이 품질인지 가격인지 즉, 품질이 조금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한 것을 사기를 원하는 소비자가 있는 반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신선하고 품질이 뛰어난 것을 원하는 소비자가 있다. 이처럼 모든 경제 주체들은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끊임없이 서로 시그널을 주고 받으며 각자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Game을 하고 있다.


이처럼 평범한 장보기 이면에서 시장경제원리가 적용돼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있다. 가격 차별이라는 전략을 이용해 판매자는 다양한 소비자 계층을 확보하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함으로써 평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반면, 소비자는 여러 옵션 중에서 자신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소비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효용을 높이고 기존 단일 가격일 땐 소비할 수 없던 소비자도 추가로 소비함으로써 효용을 얻게 돼 사중손실은 최소화 되고 결과적으로 사회 후생을 증가할 수 있게 된다. 팬데믹 시대에서 엔데믹 시대로 변모해 가는 이 시기 가족과 함께 추억도 쌓고 시장경제도 직접 체험해보러 이번 주말 근처 마트에 가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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