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나라

김수환 / 2021-06-09 / 조회: 1,976

558조원  


2021년 대한민국의 한 해 예산이다. 대한민국 1위 기업인 삼성전자의 매출액인 236조와(2020년) 비교해도 2.4배일 정도로 큰 금액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국가의 예산 집행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코로나로 인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서, 현금성 복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긴 했으나, 이는 전체 예산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국민은 공공조직이 어떻게 예산을 사용했고, 또 어떤 효과를 창출했는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반면 삼성전자 주식은 1주만 가지고 있어도 회사의 실적 그래프를 보며 웃고 또 운다. 그러면서도 정작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의 주주라는 것을 잊고 살아간다. 이 때문에 국가라는 “초 대기업”의 예산은 “밑 빠진 독 붓기” 식으로 세어나가고 있다. 관련하여 대학 시절 내가 경험한 사례와 현재 공조직에서 근무하며 느낀점을 들어 보고자 한다.


교육부에서 주관한 OO캠프에 팀장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소외된 지역학교 학생들에게 대학생들이 직접 기획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뜻깊은 봉사활동이었기에 만족도가 높았던 활동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예산과 관련된 부분이다. 2박3일 프로그램을 위해 팀마다 220만원이라는 금액이 주어졌고, 필자는 팀장으로서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팀원들과 매번 회의를 하였고, 팀원들도 조금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질 좋은 교육키트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도록 수차례 가격을 비교하였다. 그 결과, 우리 팀은 꽤 많은 예산을 아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무조건 잔액을 0원으로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금액을 반납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문제가 되었기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에 예산을 쓰게 되었다. 심지어 '사적으로 사용해도 되지 않을까?'는 유혹마저 들 정도였다. 그러나 담당자는 금액이 남게 되면 곤란하다는 입장을 고수할 뿐이었다.  


물론 국가는 사조직과는 다르다. 사회정의, 민주성, 형평 등 국가가 추구하는 가치는 경제적 논리로는 설명될 수 없고, 오히려 비효율성을 감수할 때에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요 없는 곳에 예산을 낭비하는 비효율까지 과연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쓰는 사람도 찝찝한 그런 예산은 없어져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었다.


예산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눈먼 자들의 나라”에 살아가고 있다. 수혜의 대상인 국민들은 대부분 예산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예산을 관리하고 집행하는 담당공무원들의 눈이 멀어가는 데 있다. 


연말이 되면 공무원 사회에는 소위 “예산을 털어버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분명 연초에는 예산이 없다고 허덕였는데, 연말만 되면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품을 구입하면서까지 잔액을 0으로 만들려고 한다. 예산을 반납하게 되면 내년에 편성될 예산이 줄어들 것이기에 모든 공조직이 동참하여 예산을 낭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명감에서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여 예산을 절약한 A와 대충 전임자가 한 대로 예산을 다 지출한 B 중 B가 더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반면 A는 일처리가 늦고 융통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은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 공무원 사회를 눈멀게 한다.  


생각건대, 예산의 비효율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의 요소를 부분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우선 국회에서 예산을 편성할 때 있어 사용부문의 특성을 고려하여 성과평가 논리를 반영, 과다예산이 배부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Top-Bottom이 아니라 Bottom-Up식 예산 편성을 도입해야 한다. 실무자들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은 채 추상적인 이념과 이해관계 아래 예산을 편성하다 보면, 예산은 사회 가치를 이륙하는 데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적극행정을 통해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예산절감 우수 공무원”에 대한 포상을 확대할 필요도 있다. 


실제로 공조직의 예산처리 방식은 내가 말한 방식을 일부 반영하여, 점차 합리적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공조직은 신념 있는 공무원들이 꿈을 펼치기에는 그릇이 작다. 사회에 기여해보겠다는 초심을 가진 나비들은 길을 개척하기 보다는 관행에 억눌려 쉬운 길만을 따라가고 있는 현실이다. 나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과연 나는 “눈먼 돈”의 눈을 뜨게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눈이 멀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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