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죄악이 아니다

최하영 / 2021-06-09 / 조회: 1,008

산업에는 흥망의 사이클이 있다고들 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직업, 업종이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시대의 변화는 단순한 시간개념이 아닌 소비자 선호의 변화이다. 즉, 사회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생활상이 변화하면서 소비자가 선택하는 재화, 서비스가 달라진다. 그에 따라 변화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해주는 기업은 혁신적 사업으로 주목받고 많은 선택을 받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이는 국가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일이기에 많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고 실제로 정부는 이런 혁신기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한 사양 산업은 자신들의 본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정부는 이에 반응하여 새로운 규제를 만들게 되고 혁신 기업들은 예기치 않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다시 말해, 정부는 혁신사업을 육성한다 하면서도 기존 산업의 영향력에 따라 규제를 만드는 엇박자를 낸다.


우선 혁신이란 무엇인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혁신 기업이란 무엇인가? 기존 산업의 묵은 관습, 방법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효용을 제공하는 기업 아닌가? 본래 시장의 원리대로라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은 도태되어 그 시장적 지위에서 물러나야 한다. 반면, 혁신 기업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생존하여 새로운 시장적 지위를 획득한다. 물론 적응하지 못했다 하여 바로 폐업시키는 형태는 사회적 효용을 높이지 못하는 방식이니 지양돼야 한다. 그러나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한 기업이 오히려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 혁신기업의 발전을 막는 주객전도의 상황은 과연 옳은 것인가? 정부는 그러한 영향력에 전도되어 혁신산업에 어떤 부작용을 줄지 따지지 않고 정치적 계산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기존 산업과 혁신 기업 간의 갈등에서 정부가 기존산업의 손을 들어준 예시로 '헤이딜러’ 사례가 있다. 헤이딜러는 중고자동차 온라인 경매업체로 기존 오프라인 방식에서 벗어나 온라인상에 중고차 사진들을 올리면 여러 딜러들이 입찰하여 최고가로 거래가 이뤄지는 형태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원래 중고차를 팔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직접 중고차 시장에 방문하여 딜러들과 가격협상을 해야 했다. 중고차의 가격은 순전히 딜러의 판단에 달렸고 적정가격보다 적은 금액이 제시돼도 사람들은 그 가격이 적당한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헤이딜러에서는 직접 방문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없고 중고차 가격의 평균 하한가와 상한가가 데이터로 제시되니 입찰 딜러들이 제시한 가격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판단할 수 있었다. 직접방문의 번거로움, 어려운 가격협상, 사기의 위험성 등 기존 중고차를 판매할 때의 곤란함을 헤이딜러가 중간에서 해결해주니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유망한 스타트업으로 각광받았다.


그런데 2015년 12월 28일, 자동차 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중고차 경매업을 하기 위해서는 3300제곱미터 이상의 주차장을 마련해야 하고 이를 어길 시 처벌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개정안의 취지는 '중고차 소비자를 보호하고 이를 위해 중고차 경매업의 필수요건을 정의’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경매업에 온라인 경매업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헤이딜러는 수도권에 3300제곱미터나 되는 큰 부지를 마련할 수 없었고 결국 폐업을 선언했다. 한편, 이 개정안이 중고자동차 시장이 크게 형성되어 있는 강서구 국회의원을 통해 발의되고 부작용에 대한 논의 없이 통과되었다는 점에서 중고차 시장의 정치적 영향력에 의한 졸속입법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종국에는 국토교통부의 중재 아래 헤이딜러는 '온라인 중고차 중개업’이라는 새로운 산업항목으로 분류되고 소비자 보호 규제를 적용받는 선에서 오프라인 중고차 과 합의를 하고 다시 사업을 재개했다.


대한민국은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다. 시장경제 속에서는 합법적인 선 안에서 자유롭게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받는다. 혁신 기업들은 합법적인 틀 안에서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고 새로운 형태로 소비자에게 다가가 선택을 받는다. 소비자 선택은 시장에서 생존하는 필수 조건이다. 소비자에게 외면 받는 산업은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변화해야만 한다. 그런데 오히려 경쟁이 아닌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관습이 나타난다면, 또 정부는 기존산업에 포획되어 진입장벽을 높이고 혁신산업의 생성을 어렵게 한다면 과연 시장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정부의 규제는 효력발생 즉시 수혜자와 비용부담자가 결정된다. 이는 시장 내의 소비자 선택이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새로운 권력과 특권층을 양산시키는 부자연스러운 작용이다. 기존의 입지는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장의 자유경쟁, 산업 규모 확장의 계기는 무너뜨리는 것이다.


혁신은 죄악이 아니다. 혁신기업은 기존 산업을 파괴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그런데 현 세태를 보면 혁신기업은 기존산업의 적대자이고 생태계를 망치는 교란종으로 분류되는 듯하다. 정부는 혁신기업을 진흥시켜야지 단죄를 해선 안 된다. 기존 산업은 살아남기 위해 자구책을 마련해 변화해야 하며 정부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기존산업이 변화하도록, 혁신기업은 더 발전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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