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은행빚을 탕감해 준다고?

문필섭 / 2021-06-09 / 조회: 1,033

1년 넘게 지속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협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로 다수가 모이는 회식이나 모임이 금지되면서 음식점과 같은 자영업자들이 상대적으로 큰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되었다. 금년 1월 통계청과 중소기업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대비 지난 해 자영업자의 수는 전국적으로 7만 5천여 명이 감소했다고 한다. 임대 기간이 남아 있어 폐업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폐업 상태나 다름없는 수까지 합하면 통계 수치보다 훨씬 커질 것이다. 정부는 어려움에 처한 자영업자들을 돕기 위해 추경예산 편성을 통한 정부 지원금을 수차례 집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상황은 쉽게 호전되지 않고 있어 앞으로도 정부는 자영업자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을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던 중 지난 4월말 국회에서는 이른 바 <은행빚 탕감법>이라 불리는 <은행법> 및 <금융소비자보호에관한법률> 개정안이 관련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에 상정되었다고 한다. 이 개정안은 재난으로 인해 영업 제한 또는 영업장 폐쇄 명령을 받거나 경제 여건 악화로 소득이 현격히 감소한 사업자 또는 그 사업자의 임대인은 대통령령에 따라 은행에 이자의 상환유예, 대출 원금 감면, 상환 기간 연장 등의 조치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부가 감면을 명령했을 때 은행이 이를 따르지 않으면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도 내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법률의 개정 취지는 코로나-19 상황 같은 재난 속에서 영업 제한 등의 조치로 소상공인의 경제난 악화가 사회문제로 확산할 것을 우려해 이자 상황 유예 등의 조치로 사회 안전망을 보완하자는 것이라고 한다. 자영업자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 확충이라는 좋은 취지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 같다. 그러나 법으로 개인의 빚을 없앤다는 발상을 납득하기 어렵다. 


“High risk, High return”, 자본 시장을 움직이는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 중의 하나이다. 자본 시장이 시장 원리에 따라 원활히 작동할 수 있기 위해 시장은 높은 위험을 부담하는 자에게 그 대가로 적절한 위험 프리미엄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투자자나 대주는 위험을 부담하는 대신 수익률로서 보상을 기대하며 자금을 공급한다. 자금을 조달받은 금융기관은 차주의 신용위험을 분석하여 상환 위험이 큰 차주에게 그에 상응하는 가산 금리를 부과하여 투자자와 대주의 요구수익률을 충족시키는 것이 시장의 메커니즘이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정부 개입은 시장실패 상황에서 정당화된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과도한 정부 개입은 늘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큰 정부는 항상 정부 개입을 선의로 포장한다. 그러나 일찍이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말했듯이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고 해도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선의였다(All bad precedents begin as justifiable measures)”. 선의의 정책이 바람직한 정책 효과를 항상 보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다.


<은행빚 탕감법>이 시행되었을 때 예상되는 결과 역시 어렵지 않게 가늠해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자영업자들부터 차입은 점점 어렵게 되고, 그 결과 폐업은 더 늘어날 것이다. 자칫하면 정부 명령에 의해 탕감해야만 하는 대출을 실행할 은행이 있을까? 자연히 대출은 신용이 좋은 차주에게 집중될 것이고 부의 양극화는 심화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사회 안전망이라는 애초의 좋은 취지는 실현되지 않는다.


국가의 시장 개입을 통해 의도하는 결과를 쉽게 달성할 수 있다는 이른 바, '경제설계주의’의 환상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 복잡성과 다차원성이 끊임없이 작동하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시장의 복잡계 속성을 간과하고 '경제설계주의’ 관점을 고수할수록 시장 개입의 결과는 본래 의도와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경제설계’를 통한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 경제의 기본 원리가 잘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고 개인의 정당한 노력을 통한 이익 추구 행위와 책임지는 태도가 존중받는 사회를 추구해 나갈 필요가 있다. 


역사를 통해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때때로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백 년 동안 시장 참여자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자정 능력을 보여 주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설계주의’를 탈피하여 다시 자유시장경제의 기본원리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조언을 기억하자. “All bad precedents begin as justifiable meas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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