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앙의 퍼포먼스
상앙이란 사람이 있다. 한비자와 더불어서 법가의 상징 같은 인물로서 통일제국 진의 아버지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본래 위(衛)나라 사람이었지만 고국에서도, 기회를 엿본 다른 나라 위(魏) 나라에서도 자리를 얻지 못하자 그는 서쪽으로 향했다. 인재를 널리 구하는 진의 효공(孝公)에 의해 발탁되어 재상이 되었는데 변법을 통해 부국강병을 일구었고 법치로써 진의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다.
상앙은 변법을 시행하기 전에 걱정이 있었다. 새로운 개혁안과 법안들을 시행할 것인데 과연 전 백성들이 믿고 따라줄지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묘책을 생각해냈다. 남쪽 성문에 3丈(장, 약 9m)이나 되는 긴 장대를 세운 뒤 북쪽 성문으로 옮기면 황금 10냥을 준다고 한 것이다. 처음에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상금을 50냥으로 올렸더니 밑져야 본전이라며 한 정신 나간 사람이 달려들어 옮겨 놓았다. 상앙이 즉시 이 사람을 불러 약속대로 거금을 주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조정의 법령은 어느 누구도 어기는 사람이 없었고 나라는 크게 부강해졌다.
이목지신(移木之信)이라는 유명한 고사다. 사목지신(徙木之信)이라고도 한다. 상앙이 본격적으로 변법을 단행하기 전에 한 일이다. 국가의 령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키고 나서 법을 고쳐 부국강병을 밀어붙인 것인데 사실 상앙 이전에 오기가 했던 퍼포먼스이다.
둘 다 이런 퍼포먼스를 왜 기획했을까?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뢰가 있어야만 개혁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인데 그들은 개혁주의자였기 때문에 신뢰를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바꾸려고 한다. 틀을 고치고, 고치다 못해 부수고, 새로운 틀로 국가를 재구성하려고 하는데 그런 개혁에 신뢰란 것이 필수적 요소임을 알았던 것이다.
신뢰, 개혁의 절대적 조건
모든 사회구성원들을 만족시키는 정책이란 있을 수 없다. 새로운 정책과 법은 반드시 손해를 보고 고통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강력한 부국강병책과 개혁의 강행일수록 그런 그림자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해와 고통의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저수지 하나만 만들어도 당장 혜택을 보는 사람, 조금 혜택을 보는 사람, 살던 땅이 수몰되어서 피눈물 흘리고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야하는 사람으로 갈린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에서 강도 높게 개혁을 단행할수록 더욱 편차와 차이가 크게 벌어지고 큰 불만을 가진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개혁을 시도할 수 있을까, 또 시도에 착수한다고 해도 성공할 수 있을까?
개혁이 단행되면 반드시 고통을 겪어야하고 손해를 봐야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당장은 힘들겠지만 나에게도 혜택이 오겠지. 손해를 본 부분은 국가가 메꿔 주겠지. 고통을 겪지만 이 개혁을 통해 강하고 살기 좋은 나라 만들어지면 미래에 내가 혹은 내 자식이 그 덕을 보겠지. 이런 믿음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소에 국가의 령에 거짓이 없었다, 정치지도자들이 식언을 하지 않았으며 정책을 조삼모사처럼 바꾸지 않아 백성들에게 믿음이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부국강병을 위한 강력한 개혁드라이브에 국민들 대다수가 따라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소 위정자들이 식언을 많이 했고 기준도 없이 정책을 자주 바꾸고 공익보단 사익을 추구해왔다. 그래서 믿음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개혁은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도 고통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고 정부를 믿지 못해 반발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신뢰 없이 개혁이란 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
더 넓게 이야기해보자면 개혁의 3가지 조건 내지 개혁의 3가지 문제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계속 언급한 신뢰의 문제, 그리고 사회적 완충장치의 문제, 정책결정의 단계의 문제. 우선은 신뢰가 반드시 있어야하고 그 다음으로 완충장치가 있어야한다고 한다. 완충장치를 통해 개혁으로 인해 나가떨어진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케어해줄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사회적 안전망이라고나 할까.
한국은 이 안전망이 약한 실정인데 저신뢰 사회라는 문제만이 아니라 그 완충장치의 문제가 있기에 개혁이 더욱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리고 개혁을 위해서는 정책결정의 단계는 단순하고 짧을수록 좋다고 한다. 독재사회가 가지는 장점이자 민주주의 사회가 가진 단점이라 할 수 있겠는데 민주화가 많이 진행되었고 중산층들과 상위 10% 힘이 기형적으로 강한 나라이기에 정책결정을 단순화 시키는 것은 매우 힘든 상황이다. 이러나저러나 한국은 개혁이 힘들 수밖에 없는 나라이다.
작금의 한국사회, 여러 가지 개혁을 완수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동개혁, 공공개혁, 연금개혁 등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줘야하고, 연공급식 임금구조를 바꿔야하고, 방만한 공공부분 군살을 빼야하고 공무원, 군인, 사학연금을 국민연금과 통합해야하며 출산율까지 생각해서 연금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로선 모든 개혁이 매우 힘든 실정이다. 지난 정권이 어설프게 시도하다가 강한 저항을 맞이해 사실상 좌초되었고 이번 정권은 시도조차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미래세대를 위해서 산업경쟁력을 위해서 사회적 자원의 공정한 분배와 건강한 인센티브 체계 마련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현재 개혁의 당위성만을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개혁이 필요하니 개혁을 해야한다와 같이 동어반복적 주장만이 넘쳐서는 곤란하다. 과연 한국사회에 신뢰라는 게 형성이 되어 있느냐? 그리고 사회적 완충장치가 충분한가? 이런 질문들을 해야 하며 신뢰가 부족하다면 어떻게 장·단기적으로 강화할 것인지 신뢰가 부족한 만큼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할 것인지 질문하고 고민해야한다. 무엇보다 약한 사회적 안전망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도 구체적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고민해야한다.
신뢰, 부국을 위한 조건
마지막으로 한비자는 신뢰를 단순히 개혁의 측면에서만 국한시켜 논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그는 신뢰라는 것을 부국을 위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신뢰가 형성이 되어야 거래가 활성화되고 그러면서 나라가 체급이 작아도 경제력이 커진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법가들을 보면 경제학적 통찰이 눈에 띄는데 그간 한비자와 군주론의 마키아벨리를 많이 비교해왔던 게 사실이지만 사실 애덤스미스와 닮은 부분이 더욱 많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나라 한(韓)이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부유해지기 위해서라도 신뢰가 필요하다고 보았는데 우리 한국사회도 경제를 생각해서라도 이제 큰 신뢰를 세워야지 않을까.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원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야 해야 한다. 이제 고신뢰 사회로 가자. 신뢰라는 자원이 풍족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한비자가 말했다. 소신성 대신립(小信成 大信立)이라고. 이 말이 당분간 우리의 모토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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