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홍콩영화는 상혼에 찌든 졸속 속편 양산 탓에 몰락했다?

이문원 / 2020-01-30 / 조회: 8,439

어느 시점엔가 툭 튀어나와 지금은 사실상 정설처럼 굳어져있는 믿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신문이건 TV건 절대다수 한국 미디어들이 '그 잘 나갔던’ 홍콩영화가 왜 삽시간에 몰락했는지에 대해 전부 이 점부터 들었다. 돈벌이에만 급급해 히트작 속편이나 아류영화들을 졸속으로 만들어 계속 내놓다보니 해외는 물론 자국 소비자들한테까지 외면 받고 결국 패망에 이르렀다는 해석. 물론 요즘도 마찬가지다.


“90년대 초반까지 홍콩영화는 시대를 풍미했다. 주윤발, 주성치, 장국영 등 대스타들의 이름은 지금 40대들에게 아직도 설레는 추억이다. 이후 도박과 느와르를 소재로 한 '양산형’ 영화들이 무분별하게 나오면서 홍콩영화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물론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각종 규제가 많아진 게 홍콩영화 몰락의 원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홍콩영화 산업이 바깥바람의 변화를 견뎌낼 만큼 견고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뉴시스 2018년 5월 9일자 기사 '유커가 돌아온다고?...들뜬 ’유통가'의 그림자’ 중)


“홍콩영화가 잘 되다보니 졸속 제작으로 자기 복제적인 영화가 많이 나왔다.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헤럴드경제 2018년 6월 29일자 기사 ''라디오쇼’ 스탠리가 설명하는 #케이퍼무비 #홍콩영화부진 #개봉작’ 중)


물론 이 같은 해석이 나올 수 있었던 몇몇 가지 원인들은 존재한다. 특히 한국 입장에서 낯설게 느껴졌던 이질적인 원인들. 그런데 전반적으로 그런 원인들을 '한국 미디어 입맛’에 맞도록, 나아가 당시 한국영화산업에 입김이 셌던 각종 영화세력들 입맛에 맞도록 이리저리 이지러뜨려 억지로 짜 맞췄단 인상이 강하다. 이를 하나씩 살펴보자.


속편 많다고 몰락하는 시장은 세상에 존재하질 않는다


일단 졸속, 속편 등 이른바 '자기복제’형 영화들 양산이 홍콩영화 몰락을 부추겼다는 부분부터 보자. 사실 그 자체로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다. 홍콩이건 어디건 속편에 제작비를 덜 투자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전편 팬 베이스를 기반으로 삼기에 전편 흥행기록을 참조(당연히 전편이 성공했기에 속편이 만들어지는 것이니 흥행수치는 높다)로 투자가 수월해져서다.


다만 전편보다 평가가 떨어져 '졸속’이란 평가를 받는 것뿐인데, 이것도 상당부분 '당연한’ 일에 속한다. 오리지널이 갖고 있던 아이디어나 설정의 신선함이 사라지고 나면 자연스럽게 평가도 낮아지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편은 계속 나오고, 관객도 몰린다. 전편에 대한 애착 탓에 그 주인공들 후일담을 보고 싶어 하는 기대가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식의 상혼(商魂)이 지나치면 결국 해당 영화산업은 패망하게 된다고? '지나치다’는 게 대체 어느 정도를 가리키는 의미인진 애매하지만, 전반적으로 그렇다고 보기엔 무리가 많다. 당장 세계 대중문화 메카, 미국 할리우드 영화산업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해 북미흥행 통산 10위권 내 속편만 6편이다. 차례로 '어벤져스: 엔드게임’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겨울왕국 2’ '토이 스토리 4’ '스파이더 맨: 파 프롬 홈’ '쥬만지: 넥스트 레벨’ 등이다. 나머지도 '라이언 킹’ '알라딘’ 등 애니메이션의 실사화 리메이크 아니면 '캡틴 마블’ '조커’ 등 히트 프랜차이즈 세계관 일부다. 이른바 '양산형’ 영화들이 맞다. 소재도 비슷비슷하다. 흥행 10위권 내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만 4편이다. 그런데도 할리우드는 매년 전 세계적으로 흥행수입을 경신하며 점점 더 성장하고 있다.


더 흥미로운 건, '홍콩영화 전성기’로서 일컬어지는 1980년대에도 저 '자기복제형 양산영화’ 대표인 속편들은 수없이 등장했었단 점이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대히트 프랜차이즈 '최가박당’은 1982, 1983, 1984, 1986, 1989년까지 무려 1980년대 동안에만 5편을 쏟아냈다. 한국서 가장 잘 알려진 '영웅본색’도 1986, 1987, 1989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3편까지 완료했다. 이밖에도 많다. '개심귀’도 1984년부터 1991년까지 5편이 나왔고, '오복성’도 2편 '복성고조’, 3편 '하일복성’까지 3편을 내놓았다. 장르불문하고 수없이 나왔다. 그런데도 홍콩영화는 몰락은커녕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한 마디로, '속편 많다고 망한 영화산업’은 세상에 존재하질 않는단 것이다. 그리고 한 시기 특정장르, 특정소재가 몰리는 상황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금의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열풍처럼 말이다. 홍콩느와르라 불리는 범죄액션영화들도 유행은 1986~1990년 정도였고, 도박영화 유행도 1989~1993년 정도였다. 모두 10년 이상 지속되는 슈퍼히어로 열풍보단 짧았다.


나아가 실제 '몰락’이 시작됐던 1991년 정도부터 홍콩에서는 또 다른 유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주성치라는 슈퍼스타를 내세운 각종 서민코미디와 '사랑이야기’ '신불료정’ 등 최루성 멜로영화 및 '금지옥엽’ 등 로맨틱코미디 열풍이 일었다. '열화전차’ '썬더볼트’ 등 레이싱영화 붐도 있었다. 이쯤 되면 딱히 자기복제 탓이라 볼 것도 아니라, 차라리 홍콩느와르나 도박영화 등의 자기복제를 '멈췄기에’ 몰락했단 해석이 더 그럴싸할 정도다. 한국 미디어의 홍콩영화 몰락 분석은 도무지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없다.


결국 한국영화 산업화 단계에 불만과 부적응 탓 등장한 '엉터리’ 비판논리


그럼 이 같은 '졸속 속편 등 자기복제 영화들 양산’ 탓에 홍콩영화가 몰락했단 논리는 대체 어떻게 비롯된 것일까. 사실 여기서부터가 진정 흥미로워지는 부분이다.


이 같은 해석이 처음 미디어에서 나돌기 시작한 건 대략 1997년경부터다. 당시 한국영화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랬다. 당시는 조폭영화 전성기가 막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초록물고기’ '넘버 3’ '깡패수업’ '비트’ '약속’ 등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2000년대 들어서도 '친구’ '조폭마누라’ '신라의 달밤’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 등으로 이어졌다. 이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홍콩영화도 그렇게 비슷비슷한 영화만 만들다 몰락했다’는 식의 엄포를 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좀 이상한 얘기다. 한국영화도 엄밀히 이런저런 '유행’을 타온 영화시장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엔 '매춘’ '애마부인’ '산딸기’ '빨간앵두’ 등 에로영화와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등 청춘영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 들어서도 '결혼이야기’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미스터 맘마’ 등을 필두로 로맨틱코미디 붐이 거세게 일었다. '유행’은 늘 존재했다. 그런데도 당시 미디어들은 모조리 홍콩영화 몰락에 '틀린 분석’까지 내밀며 엄포를 놓고 비판을 가했다.


왜 이런 무의미한 비판을 가했을까. 이는 상당부분 당시 영화산업의 '대변혁’과 관계가 깊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한국영화산업은 전에 없던 어마어마한 변화를 겪게 된다. 먼저 1995년 삼성물산의 영상 및 방송사업, 삼성전자의 음반사업 등을 통합한 삼성영상사업단의 출범이다. 대기업이 영화산업에 뛰어든 사상 첫 케이스다. 이를 통해 영화산업이 '제대로 된’ 산업화 단계를 걷자 미래창업투자, 일신창업투자 등 창투회사들이 하나둘 영화산업에 투자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그럼 이전까지 한국영화산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주간동아 2004년 5월 6일자 기사 ''삼성사업단’ 죽어 한국영화 꽃피웠네’ 설명을 보자.


“삼성 이전까지 영화와 극장업은 전근대적인 가업이었다. 영화의 완성도는 감독 한 사람에게 달려 있었고, 흥행을 예상하는 것은 점쟁이 수험생 당락 맞추기처럼 '감’에 의존했다. 흥행에 성공해도 누가 돈을 가져가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극장에서 입장객 수를 세는 '입회인’을 매수해 관객 수를 줄이는 행태는 거의 관행이었다. 제일기획이나 일신창투 같은 기업이 막 충무로에 진입했을 때도 매출금을 그냥 떼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기업은 투명한 회계와 감독, 배우, 예산에 따른 정교한 예상 관객 수를 요구했고, 사업단에서 이를 체득한 영화인들은 사업단 해체 뒤 충무로에서 이를 기획의 필요조건으로 만들어놓았다.”


이런 식으로 패러다임 자체가 대변혁할 시기니 기존 영화판, 이른바 '올드머니’ 측 불만은 쌓여갈 수밖에 없다. '게임의 규칙’이 바뀌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1997년 즈음이면 그런 불만이 기존 영화판에서 극도로 치솟아 올랐을 때다. 동시에 새로운 영화세력, '뉴머니’ 측이 위와 같은 데이터를 토대로 가성비 좋은 조폭영화 제작에 몰두할 시기이기도 했다. '뉴머니’ 측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 걸고 넘어갈 때다. 그리고 각 미디어 영화기자들은 새롭게 등장한 대기업 측과는 거리가 멀고, 기존 영화세력과 상대적으로 가까웠다. 미디어 흐름은 자연스럽게 '틀린 홍콩영화 몰락 이유’까지 들먹이며 '현재’를 비판하는 쪽으로 갔다.


또 있다. 대기업 주도 산업논리 자체에 부적응하던 예비인력들 문제다. 이전까진 인맥 등으로 다가가 '감’에 의존하는 제작사를 잘 설득하면 입봉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이젠 분위기가 바뀌었다. 산업 마인드를 구비하지 않은 인력에겐 기회가 안 돌아왔다. 이 같은 불만을 반영하는 기사가 주간동아 2001년 10월 25일자 기사 '돈풍년 충무로 웬 한숨소리’다.


“현장의 한 스태프는 현재 '돈 되는’ 영화가 아니면 시나리오 단계에서 무산되는 경우가 많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중략) 돈은 넘쳐나는데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게 대체 말이 되느냐고 의문을 갖겠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벤쳐캐피탈을 위시한 자본의 유입이 한국영화의 중흥을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임은 무시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영화’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당시엔 이런 불만도 충분히 문제시 됐다. 그리고 그 근거는 단순했다. “홍콩영화도 그러다 몰락했다.” 그러나 이 같은 비판도 2003년 정도를 끝으로 사실상 사라진다. 삼성영상사업단 해체 후 CJ와 롯데 등 대기업에서 영화산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부터다. 여기서부턴 사실상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됐다. 그리고 2020년 지금, 한국영화산업은 더 없이 확장된 상태다. 이러다 영화 질이 떨어져 패망한단 우려와 달리, 대기업 CJ엔터테인먼트에서 산업논리로 만들어낸 '기생충’은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상 작품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라있다.


홍콩영화 '실제’ 몰락 원인은 '홍콩반환’과 '한국영화 부흥’


끝으로, 그렇다면 실제로 홍콩영화를 몰락시킨 원인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문제가 남는다. 실체를 찬찬히 따지고 보면, 사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보단 안타깝단 심정만 들게 된다. 홍콩영화는 엄밀히 '홍콩반환’ 탓에 몰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1990년대 초반 들어, 언급했듯, 주성치 등이 출연하는 다분히 '로컬 지향’적인 코미디들이 주류가 된 점이 컸다. 본래 자국 외 관객들에게 가장 안 먹히는 장르가 코미디다. 자국민들 현실과 그에 따른 감성체계에 완전히 밀착돼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홍콩영화 전성기에도 단순 코미디는 해외로 뻗어나간 적이 없고, 대부분 쿵푸액션, '천녀유혼’ 등 호러로맨스, 그리고 홍콩느와르 등 일단 시각적 볼거리가 풍성한 장르영화들이 '아시아 할리우드’ 홍콩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왜 이 시기엔 그토록 단순 코미디에만 집중했을까.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1997년 홍콩반환이 코앞으로 다가온 1990년대가 개막됐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유민주주의 홍콩이 공산국가 중국으로 반환되는 상황이었기에 사회불안과 공포심리가 그득했다. 이런 상황이니 영화도 점차 홍콩느와르 같은 진지한 노선보단 가볍게 웃고 즐기며 현실로부터 도피시켜주는 코미디, 혹은 반대로 갑갑한 심정에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최루성 신파멜로들로 나아가야만 흥행이 유지됐다. 어느 쪽이건 해외진출은 어려운 장르들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퀄리티의 전반적 저하도 존재했다. 그 탓에 '이후 유행’들이 잘 안 먹힌 점도 크다. 그런데 그 역시도 '상혼에 눈이 멀어 돈만 벌려다’ 그렇게 됐다고 보긴 힘들다. 그 역시 근본적으론 홍콩반환 탓이라 보는 게 맞다. 1990년대 들어서자 반환 후 홍콩에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모조리 영화산업에서 빠져나갔다. 이어 오우삼, 임영동, 서극 등 유명감독들과 성룡, 이연걸, 주윤발 등 스타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이 이어졌다. 모두 생각은 같았다. 미래 홍콩에 불안을 느껴 사실상 '도피성 진출’에 목매단 것이다. 그렇게 홍콩영화계엔 산업을 이끌어갈 유망인력들 공백상태가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퀄리티도 낮아졌단 순서다.


한편 또 다른 관점도 존재한다. 홍콩영화 몰락이 과연 1990년대 초반에 이뤄진 게 맞느냐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서’ 유난히 그 시기 홍콩영화 입지가 좁아졌다고 보는 게 맞다. 대만이나 싱가포르, 태국 등 동남아시장에선 홍콩영화가 중국시장으로 완전히 흡수되던 2003~2005년 이전까지 홍콩영화가 '나름대로’ 선방했던 기록들이 존재한다.


홍콩영화가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서 찬밥신세가 된 '결정적 이유’는, 사실 한국영화가 그만큼 높은 퀄리티로 자국소비자들을 흡수해버렸기 때문이 가장 크다. 위 언급한 대기업 진출로 인해 훨씬 정교한 상업논리로 만들어진 한국영화들이 극장가를 휩쓸었다. 그러다 '쉬리’ '엽기적인 그녀’까지 가면, 이번엔 한국영화가 동남아시장에서 기존에 홍콩영화가 차지하던 '바로 그 파이’를 대체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홍콩영화 몰락의 원인 중 하나는 바로 '한국영화 부흥’이기도 하단 것이다.


그렇게 홍콩영화 몰락의 원인은 크게 둘로 나뉜다. '홍콩반환’과 '한국영화 부흥’. 모두 당시 홍콩영화산업으로선 어떻게 통제해볼 수가 없는 요인들이었다. 그래서 안타깝다. 그리고 한국서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까지, 달라지는 영화산업 질서에 적응하지 못해 '홍콩영화 몰락 이유’나 엉터리로 읊어대던 이들도, 어떤 의미에선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저런 사정 탓에 당시 급조됐던 엉터리논리를 아직까지도 되새김질하고 있는 언론이나 영화관계자들은 전혀 안타깝지 않고, 오히려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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