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보다 프랑스가 먼저 직조기 개발했지만 프랑스는 사용금지…영국선 자유롭게 사업화
1739년 프랑스 루이 15세의 궁정에서는 흥미로운 시연회가 열렸다. 자크 드 보캉송이라는 젊은 엔지니어가 만든 기계오리가 그 주인공이었다. 오리의 태엽을 감아 물에 띄웠더니 기계오리가 헤엄을 치고 꽥꽥 소리내 울며 날개를 퍼덕였다. 더구나 실제 오리처럼 물을 마시고 음식물을 소화해 배설까지 할 수 있었다. 물론 소화 과정은 속임수였으며 배설물의 정체는 푸르게 염색한 빵 부스러기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 당시 기계오리 시연회는 파리 전체에서 대단한 이야깃거리였다고 한다.
보캉송이 만든 기계들
보캉송은 기계오리를 선보이기 전에 이미 북과 피리를 연주하는 실물크기의 기계인형을 발명한 바 있었다. 기계오리처럼 기계인형도 태엽에 감아 작동하는 방식이었는데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손가락과 입술의 들숨과 날숨을 이용해 12곡이 연주됐다고 한다. 그는 이 인형으로 대중 인형극을 만들어 돈방석에 앉았다고 하니 발명솜씨만큼이나 사업수완도 꽤 좋았던 모양이다.
국왕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은 보캉송은 32세의 나이에 왕립 비단공장 관리인으로 승승장구한다.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인형을 자동화하는 실력을 살려 직조기를 개발하라는 것이었다. 이때 보캉송이 발명한 직조기는 산업혁명을 일으킨 영국의 직조기보다 무려 24년이나 빠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전성시대는 여기에서 끝나고 말았다.
보캉송에게 닥친 비극은 그의 직조기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 걸 걱정했던 수공업 기술자들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비단 길드는 보캉송의 직조기를 불태웠고 그가 기계를 계속 발명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일종의 프랑스판 러다이트 운동인데 시대를 앞서간 천재는 그때부터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 보캉송의 발명품은 그게 직조기든 기계오리든 프랑스 대혁명 때 모두 소실돼 오늘날엔 설계도조차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영국은 자유롭게 장사
프랑스는 보캉송의 직조기를 근거로 산업혁명의 원조는 자신들이라고 주장한다. 영국에 지기 싫어하는 프랑스인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프랑스가 자동 직조기의 원조라면 모를까 산업혁명의 원조라는 말은 억지다.
산업혁명은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됐다. 몇몇 이들은 그 이유를 과학기술에서 찾는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과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를 낳은 영국의 과학기술 수준을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 와트는 제대로 된 과학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스티븐슨은 더 심각해 아예 문맹에 가까웠다고 한다.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이 18세기 초 영국인이긴 하지만 그의 고전물리학은 산업혁명과는 별 관계가 없었다.동시대의 나폴레옹이 얕잡아보며 언급했듯이 당시 영국은 장사꾼의 나라였다. 영국 사회의 자유방임적인 분위기는 국민을 자유롭게 했고 그 결과 영국인은 장사꾼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영국은 장사꾼의 나라였기에 산업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 산업혁명이란 본질적으로 약간의 기술과 왕성한 돈벌이 욕구가 결합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돈을 벌려면 소비자에게 팔리는 물건을 내놔야 한다. 팔기 위해 싸고 질 좋은 물건을 내놓다보면 자연스럽게 산업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우리도 금속활자 최초로 만들었지만···
유럽이 산업혁명을 겪고 있을 시기 중국 황실에도 서양에서 구해온 각종 최신 기계나 물품들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예컨대 정교한 시계나 보캉송의 기계 장난감 같은 것들 말이다. 수집품 수준은 어지간한 서양의 일류 대학 연구실보다 나았다. 하지만 이들 최신 문물은 황실의 눈요깃거리였을 뿐 자금성의 높은 벽을 넘어 바깥 세상으로 확산되지 못했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있다. 우리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 기술을 보유한 바 있지만 그 기술은 결코 출판업자들과 연결되지 못했다. 근래 들어서는 세계 최초의 MP3플레이어가 우리 손으로 개발됐지만 애플의 아이팟이 세계적인 히트를 치는 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기술은 중요하지만 문명을 이루고 혁명을 성사시키는 건 언제나 장사꾼들의 몫이다.
■ 생각해봅시다
프랑스 보캉송은 영국보다 24년이나 일찍 직조기를 만들었으나 전통 수공업자들의 반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수공업자들은 직조지를 불태웠고 기계를 발명하면 보캉송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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