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4차산업혁명 열풍이 불고 있는 나라다. 4차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토론회가 홍수를 이루고 있고, 서점에서는 4차산업혁명에 대한 책들이 별도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출범했을 정도로 범정부 차원의 관심도 높다. 한동안 '저출산’이라는 단어가 정부예산안에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간 것처럼, 4차산업혁명을 대비하겠다는 정부 예산도 손쉽게 볼 수 있다.
정작 혁신의 대명사인 실리콘밸리에서도 듣기 힘든 단어인 '4차산업혁명’은 그야말로 한국에서 대히트친 용어이기도 하다. 4차산업혁명의 최대 수혜자가 다보스 포럼에서 4차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명명한 클라우드 슈밥이라는 말이 농담만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과도할 정도인 대한민국의 4차산업혁명은 어떤 수준이고,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토인비는 1884년 출판된 '18세기 영국 산업혁명 강의’에서 산업혁명을 '격렬한 사건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축적되어온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기술혁신 과정’으로 정의했다. 산업혁명은 놀라운 발명품 하나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산업혁명을 불러온 직조기를 영국보다 먼저 개발한 것은 프랑스였다.
자크 드 보캉송(Jacques de Vaucanson)은 영국보다 26년이나 앞서 직조기를 개발했지만,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프랑스 비단길드들의 위협에 결국 상용화되지 못했다. 반면,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재산권이 보장되고 경쟁과 이윤추구가 가능한 자유시장, 자유기업의 제도적 기반이 확립되면서 기업가 정신이 싹트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세계 100대 스타트업 중 57개 업체의 사업모델은 한국에서는 각종 규제 때문에 사업 시작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높은 의료 수준과 IT강국이라는 조건을 가지고도 정작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원격진료가 10년째 '시범사업’중이다. 국내 기업들은 앞 다투어 '그랩’ 등 다른 나라의 차량공유 업체에 투자를 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아직도 차량공유 비즈니스 모델은 불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은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뒤흔들고 있다. 과거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해 동남아등에 대규모 공장시설을 지었다면 지금은 AI를 활용해 소비자 수요를 예측해 시장 주변에 적절한 규모의 자동화 공장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스마트 팩토리 등을 활용해 생산성 저하문제를 제조업 혁신을 통해 해결해 가고 있다. 차량과 오피스를 넘어서는 다양한 형태의 공유경제의 등장, 그 끝을 모르고 달려가고 있는 바이오 기술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이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처럼,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정작 자동차 산업은 발전하지 못했다. 1865년 만들어진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은 자동차 앞에서 붉은 깃발을 든 기수가 사람들에게 자동차가 다가오는 것을 알리도록 했다. 자동차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마차 시대의 마부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인 것이다. 이익집단에 휘둘려 법이 새로운 산업의 태동을 막았던 것이다.
4차산업혁명은 필연적으로 '창조적 파괴’를 동반하면서, 기존산업이 순식간에 와해될 가능성을 높인다. 사회의 총 후생은 증가하지만, 법과 제도로 보호받는 특정 직역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이익집단의 반발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남과 다른 눈으로 새로운 산업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기업자 정신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지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김영훈 / 경제지식네트워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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