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제도 자체에 대한 고민 필요하다

권혁철 / 2024-09-24 / 조회: 617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주요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보험료율 인상 및 세대별 차등 인상, 소득대체율 조정, 그리고 기금 수익률 제고가 그것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단계적으로 인상하되, 연령에 따라 인상 속도를 달리 적용한다; 소득대체율은 기존 40%에서 42%로 상향 조정된다; 마지막으로, 연금 기금의 장기 수익률을 현재 4.5%에서 5.5% 이상으로 높이고, 이를 위해 해외투자 비중 등을 확대한다.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법률에 명문화하겠다는 것도 있다. 이런 내용의 개혁안이 시행되면, 연금 기금 고갈 시점이 현재의 2056년에서 얼마간 더 늘어나게 된다고 한다.


국민연금 개혁은 누가, 어떤 식으로 개혁하더라도 정치적으로 표를 갉아먹게 되어 있다. 애초 처음 시작할 때 '조금만 내고 많이 받는’ 식으로 설계를 해서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제도로 만든 것이 원인이다. 그러다 보니, 연금 기금의 고갈을 막고 제도의 유지를 위해서는 내는 보험료율을 높이거나 받는 소득대체율을 낮추거나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높이지―혹은 세 가지를 혼합―않을 수 없다. 보험료율을 높이면 내는 측으로부터 불만이 나오고, 소득대체율을 낮추면 받는 측으로부터 불만이 나온다. 역대 정부들이 연금 개혁에 침묵하거나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연금 개혁이 정치적으로 표를 갉아먹는 사안이다 보니, 정치인들은 마지못해 개혁에 나서게 되고, 개혁을 한다고 해도 당장의 급한 불만 끄는 땜질식 개혁에 그치고 만다. 지난 정부들에서 있었던 개혁들이 연금 기금 고갈 시점을 10년 혹은 20년 뒤로 미루는 식으로만 이루어졌다. 이번 개혁안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연금 기금 고갈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얼마간 뒤로 미루어졌을 뿐이다. 일종의 '폭탄 돌리기’다. 그것도 기금 운용 수익률 상향 조정 등 매우 낙관적인 전망이 현실화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해외투자 및 대체 투자 비중을 확대할 경우 투자 리스크도 함께 늘어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이미 나오고 있다.


대부분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 문제가 저출산 고령화의 영향이 크다고 하는데, 이는 문제의 본질을 가린다. 물론, 저출산 고령화가 국민연금 기금 고갈 문제를 가속화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 기금 고갈 문제에는 정치인들이 만들어 구조적으로 고착화시킨 다른 근본적인 원인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연금 수급 연령의 문제이다. 


독일의 철혈재상이라 알려진 비스마르크가 19세기 말 노령연금을 도입할 당시 70세를 수급개시 연령으로 정했다. 이 수급개시 연령은 1916년에 65세로 낮춰진다. 그래서 65세가 소위 '비스마르크 연령’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2012년까지는 60세를 연금 수급 개시 연령으로 했다가 이후 단계적으로 높여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65세로 높인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비스마르크가 19세기 말 연금제도를 도입할 당시 독일인들의 평균수명이 49세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70세까지 혹은 65세까지 살아서 실제로 연금을 수령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었다. 1935년 미국이 사회보장법을 제정하고 연금을 지급할 때도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65세였던데 비해 평균수명은 63세였다.


선진국 대부분의 평균수명은 현재 80세 전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오래 산다. 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성 86세, 여성 90세를 넘기는 것으로 나온다. 평균수명이 49세일 때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70세 내지 65세였는데, 평균수명 80세, 90세가 된 지금 연급 수급 연령이 65세 내지 그보다도 낮다. 독일이 처음 도입할 당시의 연령에 비추어 단순 비례로 따져본다면,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100세 이상은 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 처음 도입할 당시와 비교해도, 80세 이상은 되어야 연금을 수령할 나이가 될 것이다. 연금이 지속 가능하려면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대폭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이런 불균형은 당연히 연금 재정에 큰 어려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금의 역사가 오래 된 나라의 연금 재정은 대부분 정부의 세금으로 연명하고 있다. 우리도 이대로 가면, 오래지 않아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게 될 것이다.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법률에 명문화하겠다”는 것이 결국 그 이야기 아닌가.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도 곧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인구 구조상 세금 부담이 점점 더 늘어나 젊은 세대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갈 것이기 때문이다. 연금 선진국에는 세대간 갈등이 이미 상당히 격화되어 있다. 우리는 이제 시작되고 있는 단계이다.


시기의 문제일 뿐, 국민연금 제도 자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현재 연금 수령액은 평균 60만 원 정도로 '용돈 연금’ 수준이다. 한편, 연금에 대한 기여도 없이 받는 기초노령연금의 수령액이 30만 원을 웃돈다. 또한, 전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한다는 취지의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른 지급액이 현재 1인 가구 기준 최대 70만 원이 넘는다. 현행 국민연금제도를 완전폐지하거나 가입 여부를 선택사항으로 하고, 기초노령연금이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보완하여 기본적인 노후 소득 보장 제도로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일이다.



권혁철 자유시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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