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 아닌 “영웅주도성장”

손경모 / 2020-09-03 / 조회: 645

세상에는 아무리 우겨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찻잔이 언제나 주전자 아래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찻잔이 숙여야 주전자도 숙일 수 있고, 차를 함께 나눠 마실 수 있다. 오래된 성서에서도 말하듯,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복잡하게 되어도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아마 옛날도 이런 혼란은 다르지 않았기에 친절하게 진리로써 명명하게 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임진왜란을 기억할 때 물에서 죽어나간 수병이 아니라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기억한다. 왜냐하면 수십만 명이 모여도 해내지 못할 일을 그가 혼자서 해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왜로부터 조선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군사적 지식이 적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먼저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다. 배는 몇 척이며 훈련된 정도는 어떤지, 무기는 어떻고, 군사와 관련된 모든 사항들을 정확히 알았다. 병사들의 사기나 민심과 같은 계산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도 잘 알았다. 반대로 적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알 수 있는 것은 철저하게 파악하고 알 수 없는 것은 함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전투가 이순신이 생각한대로 흘러갈 수 있었다. 이순신은 머릿속에서 먼저 적을 이기고 그 다음 전장으로 나갔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에서 이길 수 없는 전장이면 싸울 틈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순신은 전투를 하는 순간에도 이기고 있었고, 전투를 하지 않는 순간에도 이기고 있었다. 그런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전쟁은 ‘지지 않은 전쟁’으로 끝이 났다. 

 

사람들의 경제행위도 실은 이런 전투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매 순간 순간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 사는 사람이 깎고자 하는 가격과 파는 사람이 올려 받으려는 가격은 일종의 전투와 같다. 주식시장에서 상승장을 뜻하는 황소와 하락장을 뜻하는 곰은 이런 가격의 전투적인 면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물건을 팔거나 살 때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려는 물건의 가치보다 싸게 물건을 사거나, 팔려는 물건의 가치보다 비싸게 물건을 팔 때 돈을 번다. 만원의 가치를 가진 물건을 오원에 사면 당장 기대 이익이 오천 원 생긴다. 반대로 만원의 가치를 가진 물건을 만 오천 원에 팔면 현금이 오천 원이 더 생긴다. 이것은 시장에서 돈으로 교환여부의 문제일 뿐 돈이 생기는 것은 똑같다. 그렇다, 돈은 손에 쥔 현금이 아니라, 효용이나 가치다.

 

시장에서 이런 전투는 모든 공간에서 매 순간 벌어지고 있다. 수십 조가 오고가는 주식시장에서부터 시장에서 콩나물을 천 원에 사니 천오백 원에 사니 하는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급한 전쟁일수록, 이순신의 예와 마찬가지로 수십만의 병사들보다는 뛰어난 장군하나가 더 중요한 법이다. 거래행위가 일종의 전투라면 훌륭한 장군은 물건을 살 때도 항상 이길 것이고, 물건을 팔 때도 항상 이길 것이다. 그러면 물건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모인 돈이 고스란히 그 사람에게 모이고, 나아가 기업에 모이고, 더 나아가 국가에 모이게 된다. 병사들이 누구나 이기는 장군 밑에서 전투를 하고 싶어 하듯, 경제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시장에서도 이기는 경영자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한다. 시장에서 살 때도 이기고 팔 때도 이기는, 지략과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기업의 경영자가 되는 것이 순리다. 그런 사람 곁에는 따르는 물자도 따르고 사람도 따를 수 밖에 없다. 누구나 전투에서 승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흔히 욕하는 재벌들은 한국경제가 위기에 부딪혔을 때 이순신과 같이 그렇게 등장했다. 6.25 사변이 벌어졌을 때는 전쟁터 한가운데서 총알을 주워가며 기업을 일으켰고, 당장 굶어 죽어가는 국민들 살리기 위해서 어제의 원수에게 머리숙여가며 기업을 일으켰다. 한국 사회가 그런 전쟁 속에서도 이만큼 성장하고 세계 속에서 큰 소리 낼 수 있게 한데는 그만큼 기업의 역할이 컸다. 그것도 기업들 중에 아주 탁월한 몇몇 기업들이 이런 경제 전쟁을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현재 재벌이라고 부르는 그들이 바로 영웅이다. 단 열두 척의 배로 왜군을 막은 이순신처럼, 아무 자원 하나 없는 대한민국에서 훌륭하게 전쟁을 수행했고, 승리해왔다.

 

임진왜란으로 조선반도가 불타오를 때 조선을 구한 것은 죽창을 든 수십만의 병사들이었나? 아니면 단 열두 척의 배로 수백 척의 적선을 막아낸 이순신이었나? 정답은 누구나 알고 있듯 명확하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 역사를 배운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살펴보며 이순신을 믿지 못한 선조와 그를 시기한 조정 관료들을 비판한다. 하지만 현대 대한민국은 국민 주권국가다. 국민이 과거의 선조와 같은 왕이다. 매일 살벌한 경제 전쟁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데, 그 전쟁에서 너무 잘 이겼다는 이유로 영웅을 질책하고 징벌한다면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운 것인가?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은 선조와 과연 무엇이 다른가.

 

삶이 계속 되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오늘도 우리는 영웅을 핍박하면서 영웅을 기다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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