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자는 반자유주의자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김경훈 / 2020-10-29 / 조회: 176

필자는 자유주의자의 인간관계상의 딜레마가 기독교도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도의 입장에서 볼 때,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믿어야만 영혼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영원히 지옥에서 신과 단절되어 고통받을 것이다. 문제는 인구 대비 기독교도의 수가 3분의 1을 겨우 넘는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본다면 고작 4-5명중의 한 명만이 기독교를 믿는다. 그렇다면 한국 인구의 3분의 2 그리고 전세계 인구의 4분의 3은 지옥에 갈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물론 구원 여부는 궁극적으로 신이 판단하는 것이니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독교도는 필사적으로 전도와 포교에 나서야 한다. 특히 자기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면, 기독교도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지옥행을 막기 위헤서 더욱 더 그들이 교회에 나가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모든 기독교도가 교회에 나가기를 강권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표어로 기독교의 이미지가 상당히 악화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우리 주변의 기독교도 상당수는 불신자들과도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면 지옥에 갈 것임을 언제나 인지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 이유는 물론 인간관계의 현실적 어려움 때문이다. 시간과 때를 가리지 않고 기독교 교리를 포교한다면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멀리하고 떠나갈 것이다. 또 직장에서 그런 짓을 했다간 해고를 당하거나 징게를 받는 등 큰 곤란에 마주할 수도 있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기독교도는 불신자들과도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다.


자유주의는 종교가 아니라는 점에서 기독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결정적으로 자유주의자가 아니라는 지옥에 가거나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스-헤르만 호페의 논증윤리를 받아들인다면, 모든 사람이 자유주의자가 되어야 할 논리적 의무를 가진다고 말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자유주의 규범이 옳다고 믿는 사람은 노예제 혹은 타인에 대한 선제공격이 나쁘다고 믿으며 결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유주의 규범이 사회에 만연하여 올바른 재산권과 경제체제가 자리잡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는 왠만해선 다른 사람들도 자유주의자가 되기를 바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실의 난제는 자유주의자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비판하는 작업에 전념하기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다.


자유주의자(libertarian)은 "논리적인 모순 없이" 배분된 재산권 제도를 "일관성있게" 옹호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 명제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엄밀하게 말해서 두 가지 부류에 속한다. 첫째, (그가 자유주의자가 아님을 인정할 경우)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노예제를 옹호하는 사람이다. 둘째, (그가 자유주의자가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논리적인 모순을 범한" 사람이다. 두 부류 모두 자유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에는 동일하다.


올바르게 이해된 자유주의는 우리의 상식과 상당 부분 일치하면서도 엄청나게 많은 상식적 견해와 충돌한다. 심지어 자유시장과 사유재산에 찬성하는 보통 사람들도 동의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예컨대, 살인, 강간, 절도를 금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는 상식적이다. 그러나, 모든 정부간섭을 폐지하고, 더 나아가 정부의 존폐까지 논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는 비상식적이다. 관건은 원칙을 고수하는 일관성있는 자유주의자가 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이다. 우선 보통 사람들의 상식 그리고 주류 학계의 견해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학습과 지식을 필요로 한다. 우리 사고에 가장 근본적인 영역에 자리잡은 잘못된 생각들을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인간관계상의 어려움이 발생한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대체로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대체로 노예제를 부분적으로 옹호하고 타인에 대한 절도와 선제공격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다. 이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보통 사람들은 계몽과 교육의 대상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럴 수 있는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지식과 언변을 갖추어야 한다는 기본전제는 논외로 해도, 자유주의자로서 신념을 고수하며 모든 사람을 대우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갈등과 인간관계의 파탄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자유주의자가 아닌 사람과 인간관계를 끊고 살기를 모든 자유주의자에게 강권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또 그것이 반드시 자유주의자라면 지켜야 할 덕목이라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자유주의자가 비자유주의자와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자가, 반자유주의자, 즉 자유주의에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어떨까? 단순히 형식적인 관계라면 비자유주의자와의 관게와 마찬가지로 문제가 없음은 명확해보인다. 그러나 친밀한 교우관계를 맺는 경우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자유주의자는 상대방이 자유주의에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노예제와 타인에 대한 선제공격을 옹호하는 것을 인지하는 상황에서도 그와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조심스럽지만 필자는 제한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 반자유주의자가 자유주의에 실질적인 해를 끼치는 활동에 관여하는 상황이라면, 자유주의자는 그와 친밀한 교류를 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그가 자유주의자로서의 양심을 가지고 있으며 자유주의자로서의 정체성에 삶의 큰 부분을 할애한다면 말이다. (그에게 있어 자유주의가 부차적인 것이라면 애당초 그는 다른 ~주의자로 불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라면 그는 애초에 그런 반자유주의자와 인간적 유대를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 반자유주의자가 자유주의에 특별한 해를 끼치지 않거나, 이데올로기와 관련되지 않은 사안으로 자유주의자와 교류를 하게 되었다면, 이 경우는 이념적으로 연관된 사이는 아니라고 볼 수 있기에 관계를 맺는 것도 아주 결정적인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주의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 존중, 배려를 가지며 생산적인 관계를 맺는 동시에 그들이 자유주의자가 되기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필자가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주의자가 용납해서는 안되는 부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자유주의자가 아니면서 자유주의자임을 자칭하는 사이비 자유주의자들이다. 예컨대 정부간섭을 옹호하며 그것이 자유주의적이라고 주장하거나, 노예제 혹은 타인에 대한 선제공격이 자유주의 규범에 따라 정당화된다고 여기는 사람들 말이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사실 근본적으로 따진다면 이런 사이비 자유주의자들이나 반자유주의자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더 엄격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자유주의자로서의 양심 때문이다.


적어도 자기가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삶의 상당 부분을 자유주의에 할애한 사람이다. 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이므로 그의 양심과 가치판단의 기준은 자유주의 규범에 입각하게 된다. 그의 자아정체성의 중심에 자유주의가 놓이게 되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근본 원리를 왜곡하고 거짓을 설파하는 것은 자유주의자의 양심 더 나아가 그의 자아 자체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처사이다.


그리하여 자유주의자는 "노예제와 타인에 대한 선제공격 그리고 정부간섭이 자유주의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본능적으로 함께할 수 없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가 진정한 자유주의자로서 양심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자라면 "자유주의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상기한 사이비 자유주의자에게 더 크게 분노하고 반대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다시 기독교와의 비유를 통해 설명해보고자 한다.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불신자들 혹은 다른 종교(불교 등)를 가진 사람들과는 큰 충돌없이 원만한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 어떤 기독교인도 신천지 교인과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심지어 종교와 전혀 무관한 일로 만나게 되었어도 상대방이 신천지 교인임을 알게 되는 순간 그는 가능한 빨리 관계를 단절하고자 할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의 그의 정체성과 양심이 그것을 즉각적으로 요구한다. 만약 주저한다면 기독교에 대한 그의 신념을 의심해야 한다.


일부 자유주의자들은 사이비 자유주의자들과의 관계를 정당화하면서 "사이비 자유주의자들은 비자유주의 대중들보다 시장경제와 재산권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확실히 사이비 자유주의자들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들아 자유주의를 자칭하는 이상 어느정도 자유주의 규범을 포함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편파적이고, 부분적이고, 보다 근본적인 면모를 보지 못하는, 잘못된 시각이다. 이는 개신교 목사 혹은 천주교 신부가 되어서 "어지간한 신천지 교인이 일반 비신도 심지어 보통의 교인보다도 성경을 더 잘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마지막으로 강조하지만, 이 글에서 여러 종교적 비유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는 전혀 종교가 아니며 우리가 자유주의를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는 것은 감정 혹은 믿음이 아니라 논리와 합리에 기초한다. 그러면서도, 자유주의를 일단 받아들인다면 모든 가치판단과 양심의 기준이 자유주의로 재정립되므로 심리적으로 종교인의 마음가짐과 유사한 상태가 되리라 생각한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명시적으로 충돌하는 인물의 발언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철학자 파울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가 말했듯이 종교와 과학은 종이 한장의 차이도 없을 수 있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라면 이 글을 읽을 필요도 없다. 자유주의자로서의 그의 양심과 정체성이 그의 인간관계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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