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자(libertarian)가 공무원이 될 수 있는가?

김경훈 / 2020-09-28 / 조회: 269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의 뉘른베르크에서 나치 독일 전범들의 전쟁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국제군사재판이 거행되었다. 현행 국가주의-반자유주의 체제가 진정한 자유주의 체제로 전환된 이후에, 이러한 "전범재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학자가 있다. 바로 머레이 라스바드의 동료이자 오늘날 미제스 전통 오스트리아학파를 대표하는 이론가인 월터 블락(Walter Block)이다.


월터 블락의 두 논문 "국가주의 범죄책임과 범죄처벌에 대한 자유주의 이론을 향하여(Toward a Libertarian Theory of Guilt and Punishment for the Crime of Statism)" (2011)와 "자유주의 처벌 이론: 국가를 위해 일한 사람 그리고 국가를 후원한 사람(Libertarian Punishment Theory: Working for, and Donating to, the State)" (2009)은 현실에서의 자유주의 실행 방안 중 하나로서 국가주의에 경도된 범죄자들의 처벌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이론적으로 고찰한다. 그의 논지를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국가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비인격적인 주체라는 점에 있다. 국가의 일원으로서 뚜렷하게 묘사할 수 있는 개인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국가의 지위는 아마도 법률상에 정의된 "법인"과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국가는 폭력을 개시할 권리의 영토적 독점권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일반적인 법인과는 매우 다르다. 또한 법인은 자발적인 구성원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책임소지를 식별할 여지가 비교적 많지만 국가는 특정 영토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다.


관건은 이렇게 이해된 국가가 자유주의 즉 리버테리어니즘에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리버테리어니즘은 합법적으로 소유된 재산에 대한 선제 공격을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정치철학이기 때문이다. 라이샌더 스푸너의 "국가는 강도다(No Treason)", 머레이 라스바드의 "국가의 구조(The Anatomy of the State)", "자유의 윤리(The Ethics of Liberty)", "새로운 자유를 찾아서(For a New Liberty)", "권력과 시장(Power and Market)", 그리고 한스-헤르만 호페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A Theory of Socialism and Capitalism)"와 "사유재산의 경제학과 윤리학(The Economics and Ethics of Private Property)"이 이러한 점을 완전하게 증명해냈다고 블락은 주장한다.


자유주의가 사유재산에 대한 침해를 금지하는 사상이라는 것은, 곧 자유주의가 사유재산 침해자에 대한 법적인 강제, 즉 처벌을 집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인자, 강간범, 절도범 등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진 모든 범죄자는 적합한 처벌을 받고 피해자에게 보상해야만 한다. 그런데,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국가는 이런 범죄자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거나 오히려 더 심각한 범죄자이다. 이는 원리적으로 볼 때 국가가 처벌을 받고 배상을 해야하는 피해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월터 블락에 따르면: "정부가 불법침해를 행한다는 사실이 진리임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범죄자들이 정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우리는 모든 책임자들에 대한 대규모의 보복을 감행해야 한다.(given that governments are illicit invasive criminal institutions, and that people who aggress are justifiably punished, we must contemplate retribution, on a massive scale, against all those responsible.)"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이 국가는 비인격적인 주체이다. 그렇다면 자유사회에서 과거의 국가를 대상으로 한 법률적 정의 집행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초보적으로 계산하는 경우에도 국가가 오늘날의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가뿐히 넘어간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학자가 연구한다면 오히려 그 비중은 커지면 커질 것이지 작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이웃들도 국가의 고용되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다분하다. 하물며 사기업 혹은 민간기관에서 근무한다고 해도 그 재정의 상당 부분이 국가로부터 기인하기도 한다. 자유사회가 도래한다면 나의 옆집에 사는 동사무소 직원과 소방공무원들은 범죄자로 기소당해야 하는가? 국가로부터 프로젝트를 수주하여 거대한 이윤을 챙긴 사기업은 범죄적인가?


월터 블락은 국가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유죄라는 발상은 자유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주의적이라고 지적하며, 국가주의 범죄자를 결정할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국가를 위해 일한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듣는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안은 "국가에 의해 고용된다면 그 사람이 정부의 일부분이라는 점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유죄"라는 논리이다. 블락은 이 주장이 터무니없다며 비판한다.


일단 이 제안에 따른다면 소련이나 북한같은 전면적 사회주의 국가의 인민은 전원이 범죄자가 된다. 동시에, 정부의 공식적인 일부분이 아니면서도 국가주의 범죄자에 해당하는 인물들을 간과한다. 또한, 국가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그 직업을 갖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공무원이 되어야 하는 경우(ex: 국방, 치안, 소방, 교육 등)를 무시한다. 톨게이트의 요금징수원, 환경미화원 같은 이들이 범죄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이 제안은 정부에서 일하는 자유주의자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자유주의의 수호자 론 폴(Ron Paul) 하원의원은 정부의 녹을 받았다는 이유로 범죄자로 기소되어야 하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만약 자유주의자가 정부에서 돈을 받으며 그 돈으로 자유주의 활동에 기여한다면, 그것은 납세자들의 세금을 가로채는 도둑질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금들을 "해방"시켜주는 의적 행위에 해당한다. 비유하자면 나치협력자이면서 많은 유대인을 해방한 오스카르 쉰들러와 같다.


따라서, 자유사회가 도래한다고 한들 우리 주변의 공무원 이웃들이 범죄자로 낙인찍혀 감옥에 가거나 전재산을 배상해야 하지는 않는다. 이 점을 명확하게 짚은 후 블락은 "자유주의 계급분석론(Libertarian Class Analysis)"을 국가주의 범죄자의 처벌 기준으로 제시한다. 자유주의 계급분석론은 오스트리아학파의 대표자 한스-헤르만 호페가 제시한 개념인데, 마르크스주의 계급투쟁혁명론을 자유주의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는 일방적인 착취-피착취 구도로 대립한다. 부르주아는 순수한 착최 범죄자이며 프롤레타리아는 순수한 착취 피해자이다. 한스-헤르만 호페는 이 구도를 국가(침해자)-일반국민(피해자)의 구도로 변환한다.


여기서 국가는 일반 공무원을 포함하지 않고 "지배계급(the ruling class)"으로 이해된다. 국가의 지배 기득권층은 도둑, 강도, 살인자, 폭행범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순수한 범죄자이다. 국가경영의 총책임기관, 즉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최고 요직을 차지하는 관료와 국회의원들, 그리고 그들의 사회지배를 보조하는 재계, 예술계, 언론계 기득권층, 정부와의 유착관계 혹은 정부기능을 악용하여 부를 축적한 거부 등이 바로 리버테리어니즘에서 정확히 이해된 "국가" 이다. 공식적인 국립과 민영의 구분은 진정한 국가지배계급이 무엇인지 감추는 연막일 뿐이다. 마르크스주의자 및 기타 좌파들로 가득찬 표면적인 사립대학은 자유주의자 교수를 고용한 국립대학보다 더 범죄적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국세청 직원 등은 상부지배계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범죄자에 해당하다고 블락은 덧붙인다.


자유주의자는 곧 올바르게 이해된 권리 개념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선제 공격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국가는 제도화된 선제 공격과 다름이 없고, 현대 사회는 국가의 영향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자유주의자가 원리 및 원칙을 지키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블락이 지적했듯 국가와 관련된다고 해서 반드시 반자유주의적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자라면 어떤 상황에서라도 자유사회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고 기여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지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 TOP

NO. 제 목 글쓴이 등록일자
15 한광성의 비극과 자유무역의 필요성
김경훈 / 2020-11-26
김경훈 2020-11-26
14 자유주의자는 반자유주의자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김경훈 / 2020-10-29
김경훈 2020-10-29
자유주의자(libertarian)가 공무원이 될 수 있는가?
김경훈 / 2020-09-28
김경훈 2020-09-28
12 정경유착과 부당이익의 문제
김경훈 / 2020-07-03
김경훈 2020-07-03
11 로비와 자유주의
김경훈 / 2020-06-04
김경훈 2020-06-04
10 하이에크 사상의 현대적 조명
김경훈 / 2020-05-11
김경훈 2020-05-11
9 자유사회에서 ‘n번방 사건’은 어떻게 처리가 될까
김경훈 / 2020-04-02
김경훈 2020-04-02
8 성공한 기업가는 자유시장에 해악을 가져올 수 있다
김경훈 / 2020-03-13
김경훈 2020-03-13
7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철학사적 위치
김경훈 / 2020-02-27
김경훈 2020-02-27
6 오스트리아학파 `행동 공리`에 대한 흔한 오류
김경훈 / 2020-02-11
김경훈 2020-02-11
5 경제위기의 ‘보이지 않는’ 원인
김경훈 / 2020-01-28
김경훈 2020-01-28
4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은 유사과학인가?
김경훈 / 2020-01-02
김경훈 2020-01-02
3 저작권은 권리가 아니다
김경훈 / 2019-12-05
김경훈 2019-12-05
2 엄밀한 경제학이 연역과학이라는 것의 의미
김경훈 / 2019-11-28
김경훈 2019-11-28
1 자유주의자의 수행모순
김경훈 / 2019-10-31
김경훈 2019-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