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시장과 교사의 전문직업성

배민 / 2020-10-12 / 조회: 253

의사들은 신문이나 대중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의료 견해를 밝히고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때때로 자신의 병의원 홍보에 그런 전문적인 이미지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결코 폄하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치료 술식이나 장단점을 가지므로, 의료에 대한 의사 개인의 견해에 있어서 명확히 어떤 견해가 더 옳거나 그르다고 판단 내리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상이한 쟁점에서 항상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는 부분은 환자에게 그 술식이 더 혜택이 가는지, 위해가 가는지 여부이다.


즉 A 치료방식이 B 치료방식에 비해 가지는 장단점을 논하는데 있어서 A치료방식을 주장하는 의사의 의견이 상대편 의사의 입지를 좁히는 발언을 하게 될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논쟁점은 환자가, 즉 일반인이 그 치료를 받는데 있어서 받는 혜택 혹은 위해 여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가령 치의학에서 임플란트 도입 초기에는 많은 치과의사들의 시각이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임플란트 시술의 큰 장점은 환자의 자연치아 삭제량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었고, 임플란트 도입을 지지하는 쪽의 입장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기존의 치과의사들은 환자의 자연치아를 많이 삭제하는 술식을 고집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이 기존의 치과의사들은 환자를 위하지 않는다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의료인의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한 논쟁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는 환자에게, 일반인에게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어떤 점에 논쟁의 초점을 두고 의견을 개진하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릴 뿐이다. 


마찬가지로 교사로서의 나는 현재의 학교 현실 속에서 수업 및 평가 그리고 입시제도가 완전히 따로 놀고 있는 비효율과 불공정한 모습을 매주 중요하게 인식한다. 그리고 많은 부분 이는 입시 제도의 문제 이전에 현재 학교 교사들에게서 보이는, 공교육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자각의 부족에 기인한다고 본다. 


어느 집단이나 내부 비판적 (whistle blowing) 시각에 대해 따뜻하고 열린 태도로 맞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집단 구성원 다수의 눈치를 보다 예민하게 의식하도록 요구받는 한국사회와 같은 집단주의적 성격이 강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현행 입시 제도 하에서 교사가 그리고 학교가 어떠한 교육적 접근을 하는 것이 모든 학생에게 보다 공정하게 혜택이 가게 되는지는 다양한 이견이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이며, 필요하다면 열린 토론과 논쟁이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는 이런 논쟁적 사안에 대해 토론하길 즐겨하지 않는다. 토론할 지식과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불편해서’이다. 자신의 자유로운 생각이 집단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좁힐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사들 간의 상이한 시각을 논의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시각은 교사나 학생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시각과 상반될 수 있다. 가령 현재의 고등학교에선 학생부가 중요해졌으니 교사가 더 열과 성을 다해 학생의 세부특기사항(소위 ‘세특’)을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 입시 전략을 보다 정밀하게 세워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며 지배적이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 입시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은 '교사가 학생을 더 인기 있는 명품대학에 보내려고 노력하는 만큼 입시는 공정성을 잃게 된다'라는 것이다. 다소 극단적으로 들릴 수는 있지만, 그렇게 보는 중요한 이유는 현재 한국의 고등학생과 대학교의 관계는 이미 학력시장의 양상을 가지는 단계에 와있다고 나는 보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교가 사회에서 수행하는 연구 기능의 중요성을 무시할 순 없지만, 학부 수준의 교육 기능과 관련한 대학교의 의미는 일정한 사회적 가치를 지니는 해당 대학교 졸업장의 판매가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의 가치 판단과 별개로) 그 현실적인 본질이다. 학생이 구매자이고 대학교가 판매자인 이와 같은 학력시장에서 교사가 그 경쟁의 과정에 개입하려고 들게 되면 결과적으로 입시의 공정성이 담보되기 힘들게 된다. 


(나이 어린 청소년이 대상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독립성이 강조되고 그 개인의 선택에 간섭을 자제하는, 보다 리버럴한 사회문화적 환경을 가진 유럽 특히 영미권 사회에서, 학생의 학습 과정에 대한 교사의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관찰이 신뢰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그러한 문화적 맥락과 관계가 깊다. 학생과 교사가 부모와 자식처럼 인정으로 엮여져 있고 수직적 상하질서의 인간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국 사회와의 문화적 차이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결국 집단주의적 성격의 한국 사회에 개인주의적 서구의 제도를 수입한 현실의 학교 현장에서, 최소한 학생부 내용은 입시를 위한 전략적 기재가 아닌 객관적 기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의 본질은 (교육부에서 학생부 내용 입력에 글자수를 제한한 것 등의 지침을 잘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아닌) 교사로서의 전문직업적 거리(professional distance)에 대한 자각(self-awareness)에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수업에 있어서도 수능 문제 풀이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닌, 학문과 교육에 대한 교사의 순수한 열정 및 그의 교육철학에 기반을 둔 수업이 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고등학교가 입시 대비 기관이 아닌 자체 완결적인 교육기관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 역시도 교육부의 학력 경쟁 완화 지침을 잘 따라야 한다는 피상적 의식이 아닌, 공교육의 역할에 대한 철학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교사와 학교가 전문직업적 태도와 그 존재 의미를 상실하고 표류하게 될 때 그 결과는 비단 교사 개인의 자존감 하락으로 끝나지 않고 학생에게도 결국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게 된다. 


원래 전문직업성의 핵심이기도 한 자율성(professional autonomy)은 외부의 (정치적, 경제적) 압력이나 간섭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일정한 ‘거리’에서 나온다. 한국인들은 전문직의 자율성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흔히 권력기관의 압력을 떠올리지만, 전문직의 역사(history of professionalism)에서 보다 중요하게 작용해온 장애물은 고객(학교의 경우 학생이나 학부모)의 이기적 욕구이다. 거침없는 시장 현상으로부터 전문직업적 윤리(professional ethics)를 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의료와 교육은 어느 사회에서나 (수요에 즉각적, 자동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민간 시장의 영역이 아닌) 공공영역에서 큰 비중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지금은 교육청이 나서서 고등학교 교사가 입시 전략가가 되길 부추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이것 자체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입시제도가 가진 모순된 부분도 원인 제공을 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교사의 자각이 부족해 보인다. 즉 교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과연 공교육의 본분에 합당한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이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상이한 교육적 접근을 하는 교사들의 상반된 시각을 편견을 갖고 보기 이전에, 모든 교육 논의의 기본 전제인 교사가 기본적으로 학생을 위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교사에 의한 교직 사회에 대한 비판 역시도 현재 학교 교사들이 학생을 위하는 마음이 없다, 학생을 사랑하지 않는다를 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비판 역시도, 한국의 많은 교사들이 학생을 마치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돌본다는 현실을 직시하여 이루어진다. 단지 그러한 행동이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는 학생에게 학부모에게, 교사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부작용이 초래될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의사나 교사나 모두 선의(good will)를 바탕으로 환자와 학생을 다룬다라고 하는 기본 명제를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한 전제가 없다면 환자의 배를 가르는 의료술식이 정당화될 수 없고, 학생들을 매일 학교로 불러 모아 수업을 듣게 하고 평가하는 교육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일방적으로 환자들 뜻대로 수술을 해주고, 학생들 뜻대로 학교 규정을 만들어주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Professionalism (전문직업성)의 핵심은 바로 그러한 선의를 바탕으로 무엇이 객관적이고 장기적으로 클라이언트(client)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인지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고민하고 논쟁하는 데 있다. 수많은 논문과 학회 활동들은 바로 그러한 논쟁의 산물이자 영역일 것이다. 


결국 교사는 자신의 전문직업성을 보다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입시제도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도 그러한 나의 교직관의 연장선에 있다. 물론 교직관 자체도 논쟁의 영역에 있다. 하지만 교직관이든, 입시 제도든, 교사와 학교의 역할이든, ‘비판적이고 열린’ 사고가 억압받지 않는, ‘논쟁이 살아있는’ 사회가 보다 더 성숙한 사회일 것이다. 교직 사회도 이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숭의여고 역사교사 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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