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의료시장과 건강보험

배민 / 2020-08-19 / 조회: 532

최근 정부에서 의대 정원을 연차적으로 증가시킬 계획을 발표했고 소위 공공 의대 신설 계획까지 발표했다. 의사협회에서는 반발하고 있고, 일부 지자체에선 찬성하고 있다. 이 정책의 명분을 떠나, 과연 어떠한 결과가 초래될까?


역사적으로 의사 집단은 의료 행위에 있어서의 전문직업적 독립 및 자율성 (professional independence and autonomy)을 확보하기 위해 분투해 왔다. 물론 이는 한국의 예가 아니라 영국이나 미국 등 서구 근대의료사의 예이지만 그다지 오래전 역사는 아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영국의 한 의사는 자신의 책에서 '의사들이 어떻게 연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하였다. 그는 '생계를 위한 의사의 투쟁은 모든 합리적이고 발전된 각성을 힘들게’ 하며, 특히 젊은 의사들이 이러한 상황에 더욱 취약하다고 보았는데, '의대를 갓 졸업한 이들은 단지 생계를 위한 투쟁에 자신을 던져 넣는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적고 있다. 당시 영국 의료시장(medical markets)은 완전 개방에 가까웠다. 즉, 누구나 (자신이 의료라고 생각하는) 시술 행위를 할 수 있었으며 환자들은 자신의 경제력에 따라 그런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었다.


19세기 초까지 이러한 완전개방에 가까운 의료시장에서 영국의 의학이 나아갔었던 방향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도시의 길드화된 Royal College들을 중심으로 시장의 고급 상품 판매자인 자신들을 스스로 통제하는 쪽이었다. 지금도 런던이나 에딘버러에는 과거의 번성했던 그러한 기관들이 사실상 박물관화되어 남아있다. 즉 성공하지 못했고 그 결과 현재는 역사적 명예에 의존한 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 운명의 분기점이던 19세기에 의학교육 시장에서 학생(구매자)들은 점차 그들을 외면했으며, 의료시장에서도 점점 그들이 누리던 우월한 지위(prestigious status)가 사라져 갔다. 가격 대비 상품가치가 낮았던 이유도 있겠으나 의료시장에서 의대 및 그 졸업생들에 밀린 탓이었다.


두번째 방향이 바로 대학(university)을 구심점으로 삼아 대학 교수진을 의료 엘리트의 상징화하면서 엄격한 의학 커리큘럼을 구축하고 의료시장에서 판매자 집단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의학의 실제 학문 발달 수준과 상관없이, 산업혁명 후 19세기 의료시장의 이례적인 확장 속에서 대단한 성공으로 이어졌다. 의과대학은 의료시장의 잠재적 판매자인 학생을 사로잡는데 성공하게 되고, 이후 지속적으로 커리큘럼의 수준을 높여나감과 동시에 입학수준을 높여나갔다. 수업료의 상승은 부차적인 결과였다. 하지만 의료시장에서 환자들은 의과대학을 나온 의사를 선호했기에 학생들은 의대 교육에 투자가치를 부여했다.


이후 19세기말부터 여러 차례의 의료법 (Medical Act) 개정을 통한 국가의 개입 및 비슷한 시기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현대 의학’의 수많은 획기적인 성과들에 의해 의사들은 자신들의 의료행위에 대한 사회적 권위를 확고부동하게 인정받게 되었다.


서양 의료가 걸어온 위의 스토리에서 의사의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과 관련해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19세기말부터 시작되는 결말부분이지만, 그 이전에 일어난 의료시장의 확대와 의과대학들의 시장 전략, 이를 통해 형성되어 나간 의료행위의 가치(value)가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의사의 전문직업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애초에 발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즉 의사의 전문직업성은 의료시장과 그 속에서 의료행위의 가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시장의 관점에서 의료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시장의 본질이 돈이나 상품의 교환이 아닌, (인간의 주관적, 상대적 관념을 반영하는) 가치의 확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의료행위의 가치 및 의료 전문직업성은 영국에서와 같이 시장에서 길고 긴 시행착오를 통해 다양한 기관(institution)들 사이의 경쟁 속에서 확립되어 나간 것이 아니라, 의과대학이라는 서양 근대 의료 기관이 도입되면서 자연히 이식된 측면이 있다. 물론 20세기 후반 이래로 한국의 의사들도 자신들의 의료행위의 가치 및 전문직업적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쳤다. 일반 상품 시장과 달리 저질 상품이 비도덕적으로 판매되지 않도록 규제되어야 한다는 의료시장의 특수한 성격을 한국의 의사들은 인식하고 있었다. 공급되는 상품의 질에 대한 엄격한 관리는 시장에서 그 상품의 가치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의사들은 공급되는 상품의 양을 증가시키는 것에 집중하는 정부에 대항해 힘겨운 싸움을 지금껏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산업화 시절에 의료 시장을 지지해줄 수 있는 구매력 있는 중산층의 성장과 더불어 형성되어갔던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90년대에 와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되기에 이르는데, 그 본질은 사실상 환자를 위한 의료비 할인이었다.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는 수요의 확대를 의미했는데 이는 상품 가치 대비 가격이 너무 높아서 구매를 못했던 많은 수요자가 시장에 참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국가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시장에 수요가 많아졌기에 시장에서 공급되는 상품의 양이 늘거나 공급자의 수가 늘어나야 했는데, 당시 이 둘 사이의 타협책은 저수가 의료비와 의대 정원 제한이었다.


그 결과 한국의 의사들은 영국처럼 의사가 국가 주도의 의료체계에 상당부분 포섭되어 공무원화되는 길을 걷거나 미국처럼 국가와 거리를 두고 의료시장의 자율성을 선택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 중간 즘에 자신을 위치시키게 되었다. 이 정책은 이후 급속한 한국의 의료시장 팽창 과정에서 국가가 모든 비용을 감당하느라 영국처럼 심하게 재정 압박을 받을 필요가 없었던 점에서 사회적으로는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기본 진료에 대한 국가의 의료비 할인의 의미가 점점 상실되는 상황에서 의사들은 저수가 의료비를 팽창하는 비급여 진료의 수익으로 보완해 나가게 되었다.


혹자는 의문이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애당초 건강보험의 전국적 실시와 함께 대대적인 의대 정원 증가가 있었으면 의료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훨씬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지 않았겠냐고. 만약 그랬다면, 시장의 수요와 공급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 제도 자체가 진작에 무너졌을 확률이 높다. 지금껏 그럭저럭 유지되어온 한국 의료의 중요한 전제 중 하나가 바로 적정한 의사 인원 수의 유지였으며 이는 정부의 개입으로 인한 시장의 수요와 공급 변화 속에서 건강보험제도의 안정적 유지와 직결된 문제였다.


즉,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국가가 사실상 환자 의료비의 할인 구매를 보장한 제도였기에 애초에 이 제도가 재정적으로 건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의사들의 전문직업적 윤리 (professional ethics), 특히 불필요한 과잉 진료를 환자에게 요구하지 않는다는 설정이 중요했다. 이를 위해서는 19세기 초 과포화 된 영국 의료 시장에서와 같은 의사들 간의 과다 경쟁이 벌어지지 않아야 했다. 사람들은 늘 누리는 것은 당연시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한국의 근대 (서양) 의학사에서 영국 의학사에서 볼 수 있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한 사회적 비용 없이 의료행위의 가치가 순탄히 확립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의대라는 사회적 기관을 통해 많은 것들이 자연 이식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료행위의 가치가 의료시장에서 다시 불안정한 상황이 되면 의사의 전문직업적 윤리를 지금처럼 계속 기대할 수 있을까?


이러한 한국 의료시장과 의사의 전문직업성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최근 정부의 공공의료 강화 정책, 특히 의대 정원의 대폭 증가와 같은 방식의 개입은 한국의 의사와 건강보험제도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높으며 정부의 의도 대로 결과가 따라 주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지금까지 교육이나 부동산 관련 정책에서도 그러했다. 각각 입시제도와 세금제도를 무기로 학력 시장과 부동산 시장에 개입한 정부의 정책은 개입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매번 초래했고 정책 관련 지침이나 규제 조항만 복잡하게 잔뜩 양산했을 뿐이었다.


좌파적 사고를 가진 정책 입안자들은 공공의료가, 경쟁 없는 교육이, 1인1주택이 선()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유치한 선과 악의 양분법적 믿음은 서양사에서 19세기 낭만주의와 집단주의 광풍 속에서도 유행했다. 불행히도 당시 대중들은 경제학에서 동시대에 발표된 한계 혁명 (marginal revolution)의 핵심 철학인 가치의 주관성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한국의 대학생들 역시 칼 맑스는 알아도 칼 맹거(Carl Menger)는 모른다. 집단 감성의 인플레이션 속에서 고독한 개인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 시장의 가치 체계를 교란시키는 무지한 정책은 필연적으로 초래된다. 나는 좌파 정치인들이 특별히 독선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들을 지지하는 대중의 머리 속에 있는 좌파적 생각, 즉 복지와 평등, 공동체 등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선’ (사회주의적 목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그 자체가 독선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시급히 인식되길 바랄 뿐이다.


숭의여고 역사교사 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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