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소장했던 미술품으로 열린 기획전을 봤다. 정선의 인왕제색도부터 모네의 수련까지, 정말 미술 교과서에서만 보던 거장의 작품들을 내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렇게나 유명한 작품들을 한 전시에서 볼 수 있어 더 믿기지 않았다. 새삼 전 세계적으로 '이건희 컬렉션’이라고 불릴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삼성재단 명의도 아닌 개인 소장품을 통 크게 기부하겠다는 결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왜 이 작품들을 다 기부했을까. 그 안엔 뉴욕의 모마미술관, 영국의 테이트미술관처럼 세계적인 명성을 갖는 현대미술관을 한국에도 만들겠다는 이 회장의 포부가 자리 잡고 있다. 언뜻 기사에서 읽은 삼성가의 어마어마한 상속세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술품을 상속세로 낼 수 없다. 미술품이나 문화재를 상속세로 내는 물납제가 한국에선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속세를 내려면 이를 처분해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만약 한 작품에 감정가가 2조 원이 넘기도 하는 미술품이 처분됐다면 해외로 반출돼버렸을 것이다. 천문학적인 상속세 앞에 내가 보고 있는 작품들이 생전 메세나에 관심이 많았던 이 회장의 소유가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과연 대중의 문화로 향유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었다.
2022년 4월 삼성에서 발표한 이 회장의 총 유산 규모는 26조1000억원이다. 이에 대한 상속세는 약 12조원이다. 총재산의 약 절반가량을 상속세로 내야 하는 상황이다. 아무리 삼성가라 하더라도 유산의 절반에 달하는 상속세를 현금으로 납부하기엔 부담이다. 삼성가는 2026년까지 매년 2조 원씩 상속세를 낸다고 발표했으며 분할해 납부한다 하더라도 삼성 주식으로 받는 배당금 외에 8000억 원이 부족하다. 실제로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1차 납부 당시 삼성가는 부족한 부분에 대해 대출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부담은 비정상적으로 크다. 전 세계로 봐도 상속세율은 이례적으로 높다. 직계비속에 대한 상속세의 최고세율은 50%이다. 이는 OECD 평균 최고세율인 25.3%의 두 배에 달한다. 거기다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 상속인이 최대주주라면 주식 평가액에 20%의 할증평가를 적용해 과세를 한다. 결론적으로 최대주주 주식 할증과 기존 상속세를 적용하면 최대 60%의 세율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정당한 사유가 없음에도 할증을 매겨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상속세 역시 최고 상속세율에 주식 평가액의 20%까지 할증했다. 세금을 자진신고 해 3% 공제받는다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세율이다.
일부 독자들은 그래도 삼성이니까 그만큼 내야하는 것이 사회 정서상 옳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삼성과 같은 대기업도 대출을 받으며 간신히 낸다. 법으로 정해진 상속세는 모든 기업에 평등하게 적용된다. 중견기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실제로 우리가 아는 기업들 중 높은 상속세율을 감당하지 못해 기업 계승을 포기하고 매각하거나 파산한 경우가 많다. 식품보관용기로 왕년에 '국민템’으로 불리며 유명했던 락앤락은 높은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 하고 2017년 홍콩계 사모펀드 어퍼너티에 경영권을 매각했다. 현재 락앤락의 지분가치는 6300억원에서 2900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사회적으로 공평하게 재분배하자고 정해놓은 세금 정책이 성장하는 기업을 죽인 셈이다.
높은 상속세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기업의 유산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식에 대한 상속세는 책정 방식까지 불합리하다. 최대주주 할증평가 과세 조항으로 인한 과도한 상속세뿐만 아니라 주식에 대한 상속세 평가액의 평가 시점이 문제인 것이다.
피상속인의 사망 시점의 주가로 평가하는 방식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로 뽑히기도 한다. 상속세를 납부한 뒤 시가가 크게 변동할 경우 그만큼 상속인이 손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주식 상속세는 피상속인 사망 시점의 전후 2개월 동안 공표된 일별 최종 시가의 평균액을 기준으로 한다. 그렇기에 이 시점을 기준으로 주가를 떨어뜨려 상속세를 줄이고 이후에 시가를 올리면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터무니없이 높은 세율에 그 평가기준마저 현 시점에 유효하지 않은 우리나라 상속세는 기업을 쇠퇴시키고 비정상적인 주식시장 저평가 현상을 만든다. 표면적으로 부의 재분배를 위해 도입된 상속세는 부를 창출하는 주체를 위협함으로써 그 목적까지 훼손하고 있다.
과도한 상속세를 최소한 국제 수준으로라도 낮춰야 한다. 주식의 경우 상속 시점이 아닌 처분 시점에 상속세를 매기는 자본이득세를 고려해봐야 한다. 기업을 안정적으로 승계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고 투자까지 활성화 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드는 게 상속세의 근본적인 취지와도 맞는 일이 아닐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근시안적인 정책이 아니라 조화로운 경제의 숲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할 때다.
조소희 자유기업원 인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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