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로 포장된 기준을 경계해야 한다.

이소원 / 2022-12-06 / 조회: 1,390

우리는 쉽게 좋은 의도로 추진되는 일은 결과 또한 좋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경제는 살아 숨 쉬는 생물과 같아서 선의로 만든 경제 규제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가 선의로 포장된 기준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선의로 포장된 기준은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상대적으로 쉽다. 초과 생산된 쌀의 정부 매입 의무화를 골자로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찬성이 61%로서 반대 25%보다 2배 이상 높은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22.11월 언론 발표 기준). 이러한 특성 때문에 우리는 선의로 포장된 기준을 경계해야 한다. 좋은 의도로 추진되는 일이니 당연히 결과 또한 좋을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이 시장경제를 교란하고 많은 비용을 발생시키는 시장실패를 가져올 수 있다.


본 개정안에 따르면 정부는 쌀 초과 생산량이 2.5% 이상이거나 가격이 4% 넘게 하락하면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한다. 취지는 쌀 가격을 안정시킴으로써 벼 재배 농가의 지속 가능한 영농활동을 도모하고자 함이다. 쌀 한 톨에 농부의 땀이 7근 배어있다는 얘기를 들어 봤을 것이다. 그만큼 농부의 노고 덕분에 우리가 쌀을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고마운 농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쌀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니 반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기준 설정은 조심해야 한다. 우리들의 선한 의도와는 정반대로 흘러갈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1차년도에 쌀 가격이 4% 하락해 정부가 96에 쌀을 의무매입하였다. 그러면 2차년도에 많은 사람들은 쌀 가격이 96을 넘기는 쉽지 않다고 예상한다. 만약 쌀 가격이 100이 되면 4.2%나 상승한 것이 된다. 그러면 쌀만 놓고 봤을 때 물가가 4.2%나 오른 것이다. 정부는 서민을 위해서 물가를 안정시키려 1차년도에 매입한 쌀을 시장에 풀 것이다. 쌀 가격은 다시 하락한다. 즉, 2차년도에 수요에 맞게 적정량의 쌀을 생산하더라도 1차년도 가격인 96 이상의 가격을 받는 것은 불확실하다. 이렇게 불확실성이 있다면 최대한 많은 양의 쌀을 생산하는 것이 유리해진다. 정부가 쌀을 매입해 줄 것이기 때문에 쌀 가격은 2차년도에도 92 이상이다. 이건 확실하므로 최대한 생산을 많이 해 92 가격에 파는 것이 위험 없이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다. 이렇게 농부는 계속해서 쌀을 과잉 생산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된다. 쌀 가격도 지속적으로 하락한다. 농부는 열심히 일해서 생산량을 극대화하는데 점점 개인 경제 상황은 악화된다. 물론 여러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은 불확실한 것을 싫어 하기 때문에 확실한 결과가 있는 선택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올해 쌀의 최소 가격이 정해져 있다면 그 가격에 최대한 많이 파는 것이 농부 입장에선 합리적 선택이다. 농부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전년 가격 대비 4%에 매입한다는 기준이 결국엔 농민의 생활을 점점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처럼 선의로 포장된 기준은 우리 일상 곳곳에 찾아볼 수 있다. 법정 최고 금리 20% 제한도 한 예이다. 법정 최고 금리 상한이 만들어진 이유는 대부업자들의 과도한 착취와 폭리로부터 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금리의 상단이 생기면서 저신용자들은 대출 시장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최고 금리 20%의 의미는 신용이 낮아 산정된 금리가 20%가 넘는 사람은 대출을 받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정부에서는 다양한 저신용자 정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추가적인 보완책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는 선의로 포장된 경제적 기준이 마련될 때 경계해야 한다. 특히 그 기준이 어떤 의무를 발생시키면 더 많이 고심해야 한다. 만약 앞에서 언급했던 기준들이 의무가 아니 권고였다면 오히려 원래 취지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신호로 발송되어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이를 고려해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격과 수량을 결정해 자유로운 경쟁을 제한하면 취지와는 다른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진다.


좋은 의도에 동참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시장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쉽게 동참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 TOP

NO. 수상 제 목 글쓴이 등록일자
56 대상 혁신과 규제의 길목에서: 플랫폼법과 독과점을 둘러싼 논쟁
안혜성 / 2024-05-10
안혜성 2024-05-10
55 대상 우리 경제의 뿌리를 지키는 작은 거인
박현서 / 2024-05-10
박현서 2024-05-10
54 대상 사마천의 사기에서 읽어낸 오늘의 경제
김가연 / 2024-05-10
김가연 2024-05-10
53 대상 자유 경쟁 시장의 이점 – <라면 상점>
송미주 / 2024-05-09
송미주 2024-05-09
52 최우수상 정부, 시장을 이기려 들지 마라
김수만 / 2024-05-10
김수만 2024-05-10
51 최우수상 어머니의 백화점 라이프는 시장경제 덕분
강하윤 / 2024-05-10
강하윤 2024-05-10
50 최우수상 동남풍에도 세금을 매길 것인가?
장성진 / 2024-05-10
장성진 2024-05-10
49 최우수상 스포츠토토 규제 완화
김창민 / 2024-05-10
김창민 2024-05-10
48 최우수상 쿠팡이 내게 가르쳐준 시장경
조용균 / 2024-05-10
조용균 2024-05-10
47 최우수상 시장경제원리를 생각하며 창업을 준비하다
정재완 / 2024-05-10
정재완 2024-05-10
46 최우수상 코레일의 적자, 정녕 기업의 탓인가?
안성주 / 2024-05-10
안성주 2024-05-10
45 최우수상 `경쟁`하는 화장품 유통시장, 소비자에겐 이득!
김서진 / 2024-05-10
김서진 2024-05-10
44 최우수상 공짜 야구 시청의 시대는 끝났다
박지현 / 2024-05-10
박지현 2024-05-10
43 우수상 국민연금 시장경제로 개혁하자
최민호 / 2024-05-10
최민호 2024-05-10
42 우수상 합리적인 자원 배분 전략 - 영화 관람료 차등
류한석 / 2024-05-10
류한석 2024-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