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초콜릿 상자, 정부는 샤워기 꼭지

오유민 / 2022-08-24 / 조회: 6,466

이제 갓 대학생이 된 나는, 두 가지 비유에 딱 떨어지는 일을 겪었다. 하나는. “인생은 초콜릿 상자야. 열어서 꺼내기 전까지 무엇을 가질지 알 수가 없거든.” 내가 좋아하는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영화 대사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샤워기를 갑자기 틀면 차가운 물이 나오는데, 그러면 샤워실의 바보는 수도꼭지를 온수 쪽으로 돌리고 뜨거운 물이 나오면 깜짝 놀라서 다시 꼭지를 냉수 쪽으로 돌리고 다시 찬 물에 놀라는 과정을 반복한다. 여기서 샤워실의 바보는 섣부르게 개입하는 정부를, 꼭지는 정부 정책을, 찬물과 뜨거운 물은 경기에 등락을 말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샤워실의 바보를 통해 정부의 부적절한 시장개입을 지적한 것으로, 나는 이 말을 하루 한 번씩 되새기게 된다. 샤워할 때마다. 그러면서 지난 일을 떠올린다.


우리 가족은 올 초에 서울에서, 경기도 외곽으로 이사했다. 부모님은 집주인에게, 내가 수능을 마칠 때까지 전세 기간 연장을 간곡히 부탁했고, 내가 수능을 마치자마자 주말이면 아침부터 밤까지 여기저기 발품을 팔면서 집 구하기에 나섰다. 동생 학교를 생각해서 어떻게든 가까이 있어 보려고 했지만, 결국 우리 가족은 눈이 펑펑 오던 한 겨울, 이삿짐을 싸야 했다.


이때까지 나는 이 사회의 모순을 알지 못했다. 내게 주어진 세상은 집과 학교였고 나의 일은 공부뿐이었다. 한창 집을 구하러 다닐 때 부모님을 따라나선 적이 있었는데, 당시 우리와 동행한 부동산중개업소 아주머니의 얘기는 충격이었다. “아직 집도 안 사고 뭐하셨어요? 차라리 지금이라도 사세요. 정부에서 집 사면 폐가망신이니 쪽박을 차니 뭐니 할 때부터 알아봤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때 대출 끼고 다 샀어요.”


우리 부모님은 평범하고 순진했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 10년 동안 전세로 살았는데 전세 계약을 갱신할 시기가 오면, 긴장하던 부모님의 모습이 어린 나에게도 전해졌다. 차라리 무리해서 살까 말까, 망설이던 부모님은 정부의 확고부동한 ‘서민을 위한 부동산 대책’을 신뢰하면서, 몇 년간 겨우 모은 돈을 전세보증금 올려주는데 소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 전세보증금이면, 집을 사고도 남았다는데... 정부에서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사람들은 둘로 나뉘었다. 정부를 신뢰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그 결과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기이한 결과가 발생했을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똑똑한 엘리트 관료들이 국민을 위해서 부단히 고심해서 만들어낸 정책이 오히려 국민을 실망하게 하고 좌절하게 만드는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답은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에 있었다. 정부는 샤워실의 바보였다. 프리드먼은 경기에 고정과 저점을 판단하는 게 쉽지 않고 설령 경기 판단이 정확해도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은 오랜 시일이 필요해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는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보라’는 케네디 대통령의 명연설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참된 자유인이라면 자신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오히려 정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에 대한 가장 큰 적은 권력의 집중이며 정부는 우리로 하여금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권력이 정치에 손에 집중되면 정부는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변하게 되며, 경쟁적 자본주의는 경제적 자유의 체제이며 정치적 자유를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정부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또한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서 내지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그 어떠한 명분과 이름으로 포장됐어도 개인의 올바르게 선택할 자유를 침해했을 때 반드시 부작용이 발생하고 처음 제시됐던 명분과 목표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나는 “자유보다 평등을 앞세우면 평등과 자유, 어느 쪽도 얻지 못한다.”는 문장에 형광펜을 칠하고 또 칠했다. 이보다 더 당연하고 선명한 문장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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