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강아지 관절은 B 동물병원, 귀는 C 동물병원

정소윤 / 2022-05-16 / 조회: 2,885

반려동물 천만 시대!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동네 공원, 유튜브, 인스타그램 피드만 보아도 천만이라는 숫자가 체감될 것이다. 반려동물 인구가 나날이 늘어남에 따라 사회도 발맞춰 변화하고 있다. 반려동물 등록제, 개정된 동물보호법, 의료비 지원 제도 등 다양한 제도가 생겨났고 바뀌었다. 


한편, 이 변화 속 몇 년 간 뜨거운 감자인 제도가 있다. 바로 '동물 병원 표준수가제’다. 


동물 병원 표준수가제란 정부 차원에서 동물 병원의 진료 항목별 진료비를 표준화하는 제도다. 즉, 어느 동물 병원을 가든 접종비가 똑같고, 엑스레이 비용이 똑같은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 보고서에 따르면, 반려견과 반려묘 양육비의 30%가 병원비인 만큼 병원비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들은 표준수가제를 도입하여 병원비 부담을 줄이고, 마음 편히 반려 동물을 병원에 데려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표준수가제가 정말로 더 나은 동물 의료환경을 보장할 수 있을까? 


나 또한 8살 된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견주로서, 더 나은 동물 의료 환경을 지향한다. 그러나 그 환경을 만드는 도구는 표준수가제가 아닌 지금의 시장경제 체제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4년 전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집 근처엔 동물 병원이 두 군데 있었다. A 동물 병원과 B 동물 병원. 우리 집 강아지가 4살이 될 때까지는 주로 A 동물 병원만 다녔다. 심장사상충 약 처방, 기본 검진, 접종 등의 진료만 받았기에 적당한 가격의 A 동물 병원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강아지가 왼쪽 다리를 들고 뛰기 시작했다. 평소 그런 행동을 안 했던 터라 다리에 문제가 생겼나 걱정되어 병원을 데려갔다. 의사 선생님은 다리가 살짝 삔 거라고 며칠 찜질을 해주면 괜찮아질 정도라고 하셨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다리를 들고 뛰는 행동이 계속됐고, 다른 병원도 가보자 해서 B 동물 병원을 찾아갔다. 예상 밖의 진료 결과였다. 슬개골 탈구가 진행돼 있었고 1기도 아닌 3기였다. 슬개골은 한 번 탈구되면 계속 빠지기 때문에 수술이 필요한 상태라고 했다. 


이외에도 여러 병원을 가보았지만, 나와 가족들은 만장일치로 B 병원을 택했다. 의사 선생님의 많은 수술 경력과 그에 걸맞은 높은 가격에서 다른 병원들보다 신뢰가 갔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두 다리로 잘 걷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동물 병원은 여러 곳을 가봐야 한다는 걸 느꼈다. 한 번의 진료는 반려동물의 건강과 직결되는데 그 진료 수준이 병원마다 천차만별이니 말이다. 각 병원마다의 수술 경력, 의료장비, 수술비를 비교해 택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다행이었다. 


만약 내가 찾은 병원의 수술비가 모두 똑같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B 동물 병원이 동네에서 슬개골 수술을 가장 많이 진행한 병원인지도, 유일하게 수술 후 모니터링까지 해주는 곳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높은 가격에 대한 병원의 설명이 더는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이 경쟁 우위 요소들을 못 본 채 아무 동물 병원에서나 수술을 받았을 것이다. 소비자로서 누려야 할 선택권도 없이 말이다.


동물 병원 입장도 생각해보자. “이 범위 안에서만 진료비를 받도록 하세요.” 제한하게 되면 누가 그 가격 이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할까? 옆 병원과의 경쟁을 위해 자기 개발을 하는 일도, 최첨단 의료 장비를 마련하는 일도 없을 테다. 전체적인 동물 병원 의료 시장의 질이 점점 낮아질 것이다. 극단적이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럼 시장경제 체제에서 돈이 없는 사람의 반려동물은 치료도 받지 못하느냐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진료 항목별 진료비를 고정하게 되면, 더 낮은 비용을 주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 또한 없어지게 된다. 무조건 낮은 수준의 가격으로 표준화된다는 보장이 없으니 말이다.


'작은 질병은 값싼 병원에서, 높은 실력이 요구되는 수술은 비싼 병원에서’, '저 병원은 수술비가 너무 싸니 이유가 있을 거야’, '이번 달만 해도 검사비가 얼마야? 저렴한 병원 좀 찾아봐야지’… 이렇듯 가격은 소비자가 주체적으로 동물 병원을 평가하도록 하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현재의 시장경제를 유지하여, 전국 모든 반려동물 주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줘야 마땅하다. 또한, 병원 스스로 의료수준에 맞춰 다양한 가격을 형성할 기회를 주어 동물 의료서비스의 질을 지켜야 한다. 만일, 의료 수준과 동떨어지는 가격의 병원이 있다면 표준수가제보다 병원별로 진료비를 공개하는 '진료비 공시제’로 제재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동물 병원의 시장경제 덕분에 나는 반려동물의 다리를 지킬 수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닌 건강을 책임지는 동물 병원인 만큼, 모든 조건을 비교하여 신중히 병원을 택하고 싶다. 합리적인 선택이 가능하고, 의료서비스의 발전 가능성이 존재하는 시장.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더 나은 동물 의료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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