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의 곰은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노예의 길>

이규종 / 2022-02-25 / 조회: 1,047

“곰은 겨울을 나기 위해 겨울잠을 잔다. 가을 동안 최대한 살을 찌우고 잠으로 에너지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여 겨울을 이겨낸다. 영리한 곰의 모습이 감탄스럽기는 하지만, 지루하게 잠만 자는 녀석이 어쩐지 안쓰럽다. 코로나로 인해 겨울 스포츠나 축제를 즐기지 못하는 갑갑함을 떠올려 보면, 곰도 겨울잠 자는 것을 좋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곰의 ‘행복’을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


곰의 습성을 연구하고 실험을 통해 최적의 조건을 찾아야한다. 몇 번의 실패는 모든 곰들의 환경개선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다. 완벽한 계획이 세워지고, 사육사의 보살핌을 받는 동물원의 곰은 더 이상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활발하게 움직이며 자유롭고 행복하게 겨울을 보내는 곰의 모습을 보니 뿌듯함이 느껴진다.”


유치하고 잔인한 발상이지만, 이것이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계획의 현실이다. 그들은 언제나 자의적으로 목적을 설정한다. 목적이 정해지면 사회 전체를 조직하는 계획을 통해 실행에 옮긴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중요하게 여겨졌던 가치들은 불가피하게 무시된다.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거나,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처벌한다. 목적이 달성 될 때 까지 이 과정을 반복한다. 목적에 대한 비판은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선한 의도로 추구하는 목적은 언제나 옳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 사회가 이룩한 아름다운 가치들은 사라지고 목적이 단 하나의 가치 있는 것이 된다. 


“하나의 사회적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사회의 목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행동이 분명 비정상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평화로운 상태에서는 비정상이라고 여기던 행동들을 평화가 파괴된 상태에서는 자발적으로 행하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정부는 승리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사회전체를 조직하는 정책을 취했다. 정부 내에서도 국민적 저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반발은 예상외로 적었다. 심지어 다수의 국민들이 사회의 목적(승리)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에 고무된 사람들은 “다른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후(戰後)에도 정부가 주도적으로 사회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펴게 된다.(전체주의에 맞서 승리한 사회에서 전체주의를 요구하는 아이러니.) 그중에서 전후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계획경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지지를 얻고 있었다. 

 

하이에크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는 대신 진실을 알리는 용기 있는 선택을 한다. <노예의 길>에서 하이에크는 가격이라는 사소해 보이는 비인적 정보가 경제발전을 결정하는 본질이라는 것을 논증한다. 


부의 생산은 경제계획을 통해 이루어지고, 계획은 가격정보를 기초로 하기 때문에, 올바른 정보가 없으면 부의 증가 또한 없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가격정보 생성이 불가능한 계획경제는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없으며,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이상(理想)은 실현 불가능한 허구라는 것을 밝혀낸다.


부의 생산을 개인이 통제하는 제도(경쟁경제)는 소비자 각자의 기호를 바탕으로 하는 자생적 가치질서가 시장에 형성된다. 이 질서를 바탕으로 생산자는 생산할 상품의 종류와 양을 결정하게 된다. 새로운 상품은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주고, 선택의 변화는 새로운 가치질서를 형성한다. 이런 과정이 실시간으로 반복되며 시장을 가격이라는 하나의 가치단위로 조율하게 된다. 가격만 보면 누구나 시장의 변화를 쉽게 알 수 있는 이유이다. 이것은 경쟁경제에서 가격이 본질적 가치정보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의 생산을 계획당국이 통제하는 제도(계획경제)에서는 계획을 바탕으로 하는 인위적 가치질서가 시장에 형성된다. 이곳의 가격은 계획당국의 의도를 제외한 어떠한 정보도 없다.  가격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는 누구도 경제계획을 세울 수 없다. 소위(所謂) 사회주의 경제계산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생산자의 우연한 선택이 소비자의 기호와 우연히 일치하기를 기도하는 것뿐이다.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를 통해 이미 증명됐다. 계획경제에 대한 환상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경제문제를 정보문제가 아닌 생산문제나 분배문제로 인식하는 경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계획적으로 생산하거나 분배하자는 주장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필자 또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경제문제는 생산과 분배의 문제라고 인식해 왔다는 것을 고백한다.” 


우리는 올바른 정보 없이는 부의 생산도 없고 생산 없는 분배는 지속될 수 없다는 하이에크의 지적을 명심해야한다.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전쟁과 질병만이 아니다. 경제문제로 인한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전에 시장의 자유도를 높여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평화가 파괴된 곳에서 피어나는 사회주의를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우리 경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려야 한다. 필자는 결코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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