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별 재정권한, 재정준칙으로 관리해야

옥동석 / 2021-09-09 / 조회: 7,876

정권별 재정권한, 어디까지인가?


국회의원 총선과 달리 대통령 선거에서는 국가재정이 투입되어야 할 공약들이 더 많이 남발된다. 총선에서는 대개 후보자들이 지역구 발전을 위해 국가재정을 더 많이 끌어오겠다고 공언하기에 공약 남발의 부작용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가재정의 사정을 핑계로 댈 수 없기에 공약 이행에 대한 정치적 압박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대통령의 임기로 표현되는 특정 정권의 재정권한에 대해 그 적정 규모를 생각해야만 한다. 과연 우리는 한 사람의 대통령에게 어느 정도의 재정권한을 부여해야 할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현행 헌법 어디에도 이와 관련된 규정을 찾을 수 없다. 다만 국가재정법 제18조에서 “세출은 국채·차입금 외의 세입을 그 재원으로 한다. 다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국회의 의결을 얻은 금액의 범위 안에서 국채 또는 차입금으로써 충당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법규 상으로는 국회의 의결만 뒷받침된다면, 대통령은 국채 또는 차입금을 통해 또는 엄청난 세금인상을 통해 거의 무제한적 규모의 재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국회 의결은 헌법 제49조에 따라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회 동의하에 대통령은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을 자신의 공약에 얼마든지 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5년 단임의 대통령에게 무제한적인 재정권한을 부여할 수는 없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가재정의 지속가능성은 무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통령 당선자는 자신의 공약과 정책의지를 자신의 임기와 무관하게 오래도록 지속하도록 다양한 제도적 장치로써 대못을 박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교체되고 국회의 의석이 변화하면 이 대못은 빠지고 또 다른 형태의 대못이 등장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런 누더기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5년 단임의 정권에 어느 정도의 재정권한을 부여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치인을 견제했던 재정원칙들


19세기말 근대적인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서유럽 선진국들은 짧은 임기의 정권들이 무제한적인 재정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재정운용의 원칙들을 발전시켜 왔다. 그 대표적인 원칙이 수지균형의 재정준칙이다. 정부의 경비를 조세수입으로 충당하도록 하여 국채와 차입금이 세출 재원이 되지 못하도록 하였다. 국가채무는 현재의 예산제약을 무력화시켜 무제한적인 재정권한으로 연결될 수 있기에 엄격하게 제한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단년도 예산주의’ 원칙도 정권별 재정권한을 제한하고자 도입하였다. 이는 우리 헌법 제54조에 “정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하여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로 표현되고 있다. 이 원칙은 국회가 1년 단위로 예산을 의결하도록 함으로써 매년의 국회가 매년 예산권한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두 개의 원칙은 현재의 정권이 다음 정권의 재정운용을 제약하지 못하도록 19세기 말부터 확립되어 온 재정원칙들이다.1)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와 케인스 경제학이 등장하면서 수지균형의 재정준칙은 폐기되고 말았다. 경기대응을 위한 정부기능이 강조되며 국가채무를 통한 정부지출이 당연하게 간주되어 정치인들의 지출 욕구를 억제하였던 수지균형의 재정준칙은 무력화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경제사회의 발전에 따라 정부행정의 모든 영역에서 법률과 계약에 의한 정부의 장기약정(commitment)이 늘면서 ‘단년도 예산주의’도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법률로 규정된 의무지출 형태의 복지급여 증가, 정부 정책의 장기적 약정에 따른 경직성 경비의 증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국회의 매년도별 예산심의권을 더 많이 잠식하기 시작하였다. 

1) 영국에서는 1860년대에 재무상과 수상을 역임한 글래드스톤(William E. Gladstone)의 정부개혁을 통해 수지균형의 재정준칙이 확립되었다. 단년도 예산주의의 원칙은 1871년에 출범한 프랑스 제3공화국에서 확립된 원칙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1960년대에 중기재정계획이 도입되었다. 5년 단위의 중기재정계획을 수립하면 중기적 관점에서 정부지출이 조정됨으로써 재정운용에 대한 정치적 여론이 건전하게 형성될 것으로 보았다.2) 그러나 이 계획은 법적 구속력이 약하여 매년 변동하였기에 지출증가에 대한 정치적 유혹을 충분히 견제하지 못하였다. 점차 많은 전문가들이 공공선택이론(Theory of Public Choice)을 이해하면서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하여 끊임없이 정부지출 확대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위기를 거치며 정부지출과 국가채무가 급증하자, 선진 각국들은 정치인들의 적자편향(deficit bias)에 대한 고삐를 잡기 위해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수준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2) 1961년 영국에서는 플라우덴(Plowden) 보고서에 따라 범부처적 지출검토 위원회를 통한 중기재정계획이 도입되었다.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의 한도 설정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재정준칙의 형태는 1993년 유럽연합(EU)이 채택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3%, 국가채무 60% 한도준수’이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이 준칙에 따라 매년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의 한도를 준수해야 하는데, 법적 수단을 통해 이의 준수여부를 확인하고 위반시 제재하는 절차까지 확립하였다. 1993년부터 발효된 이 재정준칙을 실제로 적용하는 과정에서는 상당한 우여곡절이 나타났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유럽연합은 2000년대 이후에 EU기능조약(Treaty on the Functioning of the European Union), 식스팩(Six-Pack), 투팩(Two-Pack) 그리고 신재정협약(New Fiscal Compact) 등 세련된 제도들을 추가로 정비하기 시작하였다.3) 

3) 박언경, “유럽연합 재정준칙 제도: 현황 및 시사점,” 재정혁신지원법제연구 이슈페이퍼 20-05, 한국법제연구원, 2000 참조. 


근래에 와서는 인구고령화와 그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가 40∼50년 이후의 복지지출과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밝혀지며, 재정운용을 세대간 형평성(generational equity)의 문제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 점에서 가장 모범적인 재정준칙을 운용하는 국가로는 독일을 들 수 있다. 독일 연방정부는 고령화의 인구구조 변화, 그에 따른 복지지출 증가를 세대간 형평성의 관점에서 해결하고자 2009년 헌법을 개정하여 재정준칙을 명문화하였다. 이의 내용은 실질적으로 7가지 요소로 구성되는데, ①수지균형의 원칙, ②투자지출을 위한 재정적자 0.35%(GDP 대비) 허용, ③경기대응용 재정적자 0.35%(GDP 대비) 추가 허용, ④연도별 허용한도 초과적자에 대한 의무적 통제, ⑤비상상황에서의 예외허용, 그리고 재정준칙의 준수여부를 감시하는 ⑥재정 안정위원회 구성 및 ⑦사법적 통제 등과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국회예산정책처와 기획재정부의 장기재정전망 결과가 속속 발표지며, 사회보장제도와 일반재정이 장기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이러한 위기감에서 기획재정부는 2015년에 이어 2020년에도 재정준칙의 입법화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전세계 92개국이 재정준칙을 운용하고 있고, 선진국 중 한국, 터키만 재정준칙 도입 경험이 없다”는 치욕적 실정을 지적하는데도4), 우리나라의 정치권 특히 정부 여당의 정치인들은 이 문제를 절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재정준칙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나 통용되던 재정정책 기조’라거나, ‘재정준칙 도입은 전 세계적 추세도 아니다’고 강변하며 의도적으로 진실을 외면한다. 

4) 기획재정부, “재정의 지속가능성 유지 위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추진,” 보도자료, 2020. 10. 5 참조.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자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정치인들의 유인구조를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당선되면 온갖 권력을 누리지만 낙선하면 모든 것을 잃고 소리없이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과정에서는 온갖 감언이설로 유권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과도하게 자신한다. 유권자들 일부가 혹시라도 느낄 수 있는 미래세대에 대한 죄책감을 어떻게든 해소하려고 여러 이설(異說)들을 동원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념과 여야 그리고 지역에 상관없이 -개인별로 염치의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정치인들에게 적용된다. 


민주화를 이룩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현상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전형적 결점인 포퓰리즘 또는 ‘재정의 공유지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5)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여 대한민국을 전세계 모범적인 국가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국가적 목표에 모든 국민들이 매진하던 시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당시에는 많은 정치인들이 이타심, 희생, 헌신이라는 가치를 스스로 존중하였기에 국가채무의 증가를 죄악시하는 풍조가 있었다. 그렇기에 역대 정부는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을 하면서도 미래의 재정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다음 정권의 재정역량을 침해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집권 여당 내에서 이러한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5) 국가재정은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이 나타나는 대표적 영역이다. 이익집단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재정이라는 공유지를 약탈하는데 혈안이 되어 결국 공동체의 파멸을 초래한다.


우리는 정치인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정치인은 미륵불도 아니고 메시아도 아니다. 도덕적으로나 사명감으로나 유권자들보다 더 못한 인간들이 언제든 주목받는 정치인으로 등장할 수 있다. 생산이라는 절대적 성취보다 권력이라는 상대적 성취에 더 많이 취해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정치인 집단에 얼마든지 섞여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재정-정치에서 반드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확립해두어야 한다. ‘먹고 튀는’ 전략으로 일생을 살아온 사람들도 얼마든지 우리의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이들의 방만한 재정운용을 막을 수 있도록 독일 헌법에 준하는 재정준칙을 반드시 마련해야만 한다. 


옥동석 / 인천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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