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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외교를 정상화하자

신범철 / 2021-08-31 / 조회: 1,988

한일관계는 역사문제로 인한 감정싸움 이상의 국익이 존재한다. 최근 수년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우리의 국익에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문제는 역사문제대로 풀어가되 안보협력과 경제협력은 동시에 진전시켜나가는 ’투-트랙(two-track)‘ 외교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특히 상황에 따라 국내정치적인 이유에서 한일관계를 활용하려는 접근을 버려야 한다. 한일관계는 왜 중요하고, 현재 어떤 상황이며, 정상화를 위해 정부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짚어 본다. 


한일관계의 중요성


한일 양국은 가치, 경제, 안보적 차원에서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다. 그 결과 역사적 갈등이나 지리적 근접성 외에도 지정학적 이해관계 차원에서 역내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역 질서, 인권, 법의 지배 등의 분야에 있어 중국의 공세적 외교에 대한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일 양국은 경제분야에서도 매우 밀접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 경제에 있어 일본은 수출은 5위, 수입은 3위 국가이며, 일본에 있어 한국은 수출은 3위, 수입은 4위에 해당한다. 무역량의 규모가 중국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양국의 경제에 있어 서로가 매우 중요한 국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안보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한일 양국은 북한으로부터 핵위협을 받고 있으며,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있다. 미국은 북핵 위협 억제를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일본이 보유한 유엔사 후방기지는 한반도 유사시 핵심적인 지원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경쟁에도 한미일 안보협력을 활용하고자 하는 모습이 목격되는데, 이를 위해 한일 양국 모두에게 관계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한일관계의 현황


하지만 지난 4년간의 한일관계는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역사문제로 인한 갈등이 누적되었음에도, 양국 정부는 문제의 해법보다는 갈등을 방치해 왔기 때문이다. 그 사이 국내에서는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판결 이행을 위해 일본 기업의 자산을 동결했고, 일본은 이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로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감행했으며, 다시 한국 정부는 GSOMIA 종료 및 번복으로 맞받았다.


그러는 사이 한일 양국에서 서로에 대한 인식이 악화되었는데, 아래의 <그림 1,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국 ‘동아시아연구원과 일본 言論NPO’의 여론조사(2013-2020)에 의하면, 양국 모두에서 서로에 대한 평가에 있어 긍정적 인식보다는 부정적 인식이 높게 나오는 상황이다.


 <그림 1> 한국의 일본에 대한 인상과 한일관계 평가


※ 출처: EAI-言論NPO. ‘한일국민상호인식조사’ (아산정책연구원 최은미 박사 정리)


<그림 2>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인상과 한일관계 평가


※ 출처: EAI-言論NPO. ‘한일국민상호인식조사’ (아산정책연구원 최은미 박사 정리)


대일외교 정상화의 필요성


작금의 동북아 상황은 신냉전의 길목에 접어들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고, 냉전기에 존재했던 북중러 연대가 부활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한국에 엄중한 외교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데, 과거 한국 외교의 자산이었던 한일관계의 악화로 인해 한국의 외교적 공간은 더욱 좁아지고 있다. 한일 양자관계는 물론이고 전통적인 한미일 협력마저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연계성이 높은 한일 양국은 미국, 중국, 북한,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양자 및 다자적 측면의 다양한 사안에서 상호 중첩되어 있다. 그 결과 하나의 외교사안이 복합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상황이 빈번해 지고 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쿼드(QUAD) 가입과 관련해서는 미국은 희망하고, 중국의 경우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냉소적 태도를 보인다. 과거라면 쿼드 가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중국의 반발만 무마하면 될 일이지만, 이제는 일본을 설득하는 일도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한국이 직면한 외교 사안과 관련하여 다양한 국가들이 관여하며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 외교 관계의 상호연계성을 고려할 때, 한일관계가 단절될 경우 한국은 동북아에서 단절된 고리가 되어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같은 이유에서 북핵 문제도 한일관계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효율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에 대한 억제력 강화에는 한미일 안보협력이 필요하고,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어느 정도 중요성을 부여할 것인지에 따라 북한 비핵화 협상의 속도가 좌우될 수 있다. 일본은 미국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협상의 조건에 납치자 문제를 포함시키려 할 것이고 미국의 입장에 따라 비핵화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를 남북 또는 남북미중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되며, 일본 요인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중국의 공세적 외교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관계를 개선할 필요성도 크다. 한중관계는 그간 한국의 경제적 번영에 커다란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적 성장에 따라 한중 경제협력 관계는 상호 보완적인 영역보다 상호 경쟁적인 영역이 더 많아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성장한 중국이 한국을 한 수 아래의 주변국으로 내려다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외교 관행을 바로잡지 못하면 한중관계의 수직화 현상이 나타나 중국에 끌려갈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16년 사드(THAAD)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 상황이 앞으로 반복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국 뿐만 아니라 가치를 공유하는 국제사회와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러한 연대를 추진함에 있어 일본과의 협력을 고민해야 함은 물론이다.


글로벌 차원의 한일협력 요구도 무시할 수 없다. 한일 양국은 G20, OECD 등 선진국의 반열에서 함께 참여한 국제기구도 많고, 다양한 영역에서 글로벌 의제를 공유하고 있다. 작금의 국제사회가 직면한 팬데믹, 기후변화, 재난‧재해, 테러리즘 등과 같은 문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한일 양국은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지향하는 한일 양국이 협력을 강화할 경우, 국제사회의 리더로서의 위치를 자리매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일외교 정상화를 위한 정책 과제


양국간 국익의 공감대가 큼에도 국내정치적인 이유에서 관계 회복을 이루지 못한다면 국익에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행동은 없이 말로만의 ‘투-트랙’ 접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안보와 경제 분야의 협력을 이루어 낼 방책들을 준비해야 한다. 동시에 한일 양국 국민들의 서로에 대한 인식을 우호적으로 바꾸어 나가며 장기적인 관계 발전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풀어가야 한다.


첫째,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을 구해야 한다. 강제징용 문제는 인권의 시각에서 보면 여전히 미해결의 영역이지만, 한일 청구권협정이라는 국제법적 관점에서 보면 이미 한국이 배상을 받은 영역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면서도 정부나 민간기업 차원의 해법을 마련해서 그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없이 압류된 일본 자산을 현금화할 경우 한일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 될 것이다.


둘째, 위안부 문제의 안정적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2015년에 이루어진 합의를 기반으로 한일간 추가적인 해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문재인 정부 역시 위안부 합의를 인정한 상황이기에, 기존 합의를 무실화 하기 보다는, 그 기반하에 갈등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 동시에 협력의 범위를 위안부 문제를 넘어선 전시 여성·인권문제로 승화시킴으로써 한일 양국이 함께 협력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셋째,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일본이 수출규제를 풀도록 해야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부당한 행동이었으며, 한일관계 복원을 위해 일측이 이를 해결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물론 수출규제로 인한 우리의 경제적 피해가 당초 우려보다 높지 않아 수출규제 시행 이전으로 돌리는 일이 그리 시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출규제는 ‘실리’보다 ‘명분’이 더 문제다. 한일관계 악화의 상징과도 같은 일본측의 부당한 수출규제를 풀지 않고는 한일관계의 개선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넷째,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본 당국은 별다른 환경 피해가 없다고 발뺌을 하고 있지만, 과학적으로 충분한 입증이 이루어진 주장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면밀한 과학적 검증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러한 정보를 관련국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민‧관 전문가가 참여한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다섯째,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및 복원 과정과 같이 한국 스스로 안보협력을 저해하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 오히려 북한 핵위협이 고도화 되는 점을 고려하여, 한미일 정보 교류의 질적 수준을 높여나가야 한다. 동시에 동해지역에서 수행해왔던 수색 및 구조 훈련이나 북한 잠수함 탐지 훈련과 같이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영역의 군사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북한에게 ‘도발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한일관계 개선은 정부가 추진하기에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소위 ’인기 없는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급변하고 있는 작금의 동북아 상황에서 한일관계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개선 노력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국내정치적 인기에만 영합하는 대일정책은 외교력 약화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국내정치적 재앙을 가져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다음 정부에서 한일관계 복원을 기대한다. 


신범철 /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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