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유인을 고려한 환경보호

남찬영 / 2020-12-08 / 조회: 4,213

나는 카페에 갈 때 항상 개인 텀블러를 지참한다. 빈손으로 가볍게 가도 될 카페에 굳이 번거롭게 텀블러를 들고 가는 것이 귀찮지 않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꼬박꼬박 텀블러를 손에 쥐고 카페로 향한다. 그 이유는 내가 환경 문제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플라스틱 조각을 먹고 죽어있는 해양 생물들의 사진을 보았고, 그 사진들이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그날 이후로 텀블러를 구매해서 들고 다니게 되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플라스틱과 기타 쓰레기들은 해양 생물들의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도 하지만, 인간에게도 치명적이다. 재활용 또는 소각되지 못한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매립되거나 아무렇게나 버려진다. 이것들은 그대로 지하수 그리고 해양으로 흘러 들어가 미세 플라스틱이 된다. 이를 생선 같은 해양 생물들이 먹게 되고, 이 생물들이 우리의 밥상에 올라오게 되면서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내가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은 환경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런 개인적인 행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뒷받침해 주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내가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 중 하나인 ‘경제적인 유인’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스타벅스는 음료 한잔을 마실 때마다 별(도장)을 하나씩 적립해주는데, 이 별 12개를 모으면 무료 음료 쿠폰 한 장을 받을 수 있다. 즉, 열두 잔을 마시면 한 잔이 공짜라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 텀블러를 지참하고 음료 한 잔을 마시면 별 두 개를 적립해준다. 즉, 여섯 잔을 마시면 한 잔을 공짜로 마실 수 있게 된다. 쿠폰을 이용하여 소비자에게 텀블러를 지참할 유인을 주고 있는 것이다.


카페 음료 가격이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나와 같은 개인 경제주체의 행위는 이러한 시장의 경제적 유인에 따라 변화한다. 환경보호를 위한 생각으로 텀블러 사용을 시작했지만, 이러한 경제적 유인이 없었다면 꾸준하게 텀블러 사용을 지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일회용품 사용 관련한 새로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바로 2022년에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시행된다는 것이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란 커피 전문점 등에서 소비자가 음료를 플라스틱 컵 등과 같은 일회용 컵으로 주문하면(테이크아웃을 하거나 카페에서 마시다가 남은 음료를 외부로 가지고 나가는 경우에 해당) 일정 금액의 보증금을 부과하고, 컵을 다시 반납할 때 보증금을 돌려주는 제도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제도가 이미 지난 2002년에 시행되었다가 2008년에 폐지되었다는 점이다. 일회용 컵 사용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다르게 회수율이 턱없이 낮았고, 실효성 논란이 일면서 결국 폐지되고 말았다. 자원을 절약하고 재활용을 촉진하겠다는 좋은 취지로 도입된 이 제도는 왜 실패로 끝났을까? 


그 이유는 사람들은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환경적인 이슈만을 앞세워 무리하게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행동을 할 때 비용과 편익을 고려하여 순편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선택을 한다. 따라서 일회용 컵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이상, 환경뿐만 아니라 경제주체들의 경제적 유인도 고려하여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 제도를 시행할 당시, 소비자들에게 패스트푸드점은 100원, 카페는 50원의 보증금을 받은 뒤 컵을 다시 가지고 올 경우 환불해 주었다. 그러나 컵을 반납한 뒤 보증금을 찾아가는 소비자들은 거의 없었고, 이는 곧 낮은 일회용 컵 회수율로 이어졌다. 100원 남짓한 돈을 돌려받기 위해 수고롭게 컵을 가지고 매장에 방문하느니 그냥 버리는 게 소비자 입장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 제도가 폐지된 후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은 일괄적으로 책정된 보증금을 주고받는 형식이 아니라, 보다 더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소비자 개인이 텀블러를 가지고 매장에 방문하면 도장을 하나 더 적립해 주거나 가격을 깎아주는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내가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 텀블러를 들고 카페에 가는 것도 바로 이 시장의 경제적 유인에 이끌린 것이다. 시장의 경제적 유인이 개인의 자발적인 텀블러 사용을 이끌어내었고, 이는 소비자에게 효용을 가져다줌과 동시에 일회용품 사용을 줄임으로써 환경보호까지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폐지되었던 보증금 방식의 제도가 부활한다. 환경부는 본격적인 정책 시행에 앞서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했다고 한다. 분명히 이전과는 달라진 보완된 제도를 들고나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롭게 부활한 이 정책이 과연 과거와 다른 결과를 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컵을 반납하고 보증금을 돌려받는 과거의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여전히 이 정책에 경제적 유인보다 환경적인 이슈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는 정책이 시행된 후에 알 수 있겠지만, 과연 이전과 다르게 유의미한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한 정책을 수립할 때 단순히 환경적인 요소만을 고려하면 기대한 성과를 얻기 힘들 것이다. 환경 이슈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경제적 유인에 반응하여 행동하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환경 문제도 결국 합리적인 사람들과 관련되어 발생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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