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조범수 / 2020-09-24 / 조회: 1,507

"조금 편하게 살아보려고 했던 게 저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1일 여의도에서 열린 '조세저항 국민운동' 집회에서 보라색 카라티에 반바지 차림으로 연단에 오른 구 모씨(57)가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남편과 함께 33년간 쉬지도 않고 자영업을 하며 모은 돈으로 빌라를 매입해 전세를 놓았는데, 정부에 '시세교란세력'으로 몰려 거액의 징벌적 세금을 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재산 몰수법"이라고 칭했다. '조세저항'이라는 현수막 아래 6분간 이어진 연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며 반향을 가져왔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말이 있다. 백성들에게 가렴주구의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무서운 것이라는 뜻이다. 탐관오리의 횡포를 피해 옮겨간 거처에서 시아버지와 남편, 큰아들이 차례로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했는데도, 가혹한 세금 때문에 다시 살던 곳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한 여인을 보고 공자가 한 말이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세금'이라는 표현은 여기서 유래했다. 그런데 사실 세금을 두려워해야 하는 건 백성만이 아니라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영원한 권세를 누릴 줄 알았던 역사의 많은 권력자들이 세금으로 몰락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영국에서 자유를 향한 대규모 투쟁은 아주 예전부터, 주로 세금 문제에서 시작되었다”고 평했다. 영국 역사에만 국한되는 사실이 아니다. 프랑스 혁명도 역시 부조리한 세금 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그 불씨가 되었고, 미국은 애당초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구호 아래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건국된 공화국이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세금은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갈등의 격화가 언제나 성공적인 개혁이나 혁명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불합리한 조세 제도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시민들이 세금 문제에 이토록 민감한 이유는 간단하다. 조세가 본질적으로 소유에 역행하는 탈취(theft) 행위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소위 '사회계약론’이라는 그럴싸한 개념이 시민들에 대한 공권력 행사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배웠지만 사실 그러한 계약이란 존재하지도, 존재한 적도 없는 허구다. 세금 징수가 기본적으로 합의(consent)가 아닌 강제에 의해 이뤄진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때문에 조세의 본질은 '탈취’이고, 소유에 대한 제약이다. 즉 세금을 둘러싼 갈등은 곧 소유에 대한 투쟁일 수밖에 없다. 


정당하게 취득한 자신의 소유물을 빼앗기는 데 대한 인간의 반응은 생각보다 본능적이다.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인간은 자신의 소유가 침해당할 때 모종의 불쾌감을 나타내는데, 이 불쾌감은 어떤 추상적 사유의 산물로 단정하기 어렵다. 파이프스가 책에서 강조하듯 이는 인간이 자신의 인격과 육체, 그리고 그로부터 창조된 것들을 소유하려는 충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로크가 데카르트의 진술을 빌려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소유한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다. 인류학은 인간이 '소유권’이라는 것을 몰랐던 사회를 찾을 수 없었다. 소유가 특정한 시기에만 나타나는 사회적 구조물이 아니라 인간 문화에 보편적인 '자연적 제도’라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많은 지식인들은 소유를 부도덕의 원천으로, 사회적 악으로 매도해왔다. 물론 소련과 동유럽, 남미의 사회주의 실험이 예외 없이 실패로 끝나면서 소유 제도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호소력을 잃어갔다. 하지만 이러한 반 소유 담론은 곧 '복지국가론’이라는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재도약하게 된다. 이들은 대신 '소유보다 나눔’을 실천하라거나 '공공선’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비교적 온건하고 모호한 주장으로 소유에 대한 국가의 억압을 정당화한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이러한 수사를 즐겨 사용하며 시민들의 소유를, 그들의 자유를 짓밟고 있다.


역사는 소유를 경시한 권력의 초라한 말로를 수없이 예시한다. 정부가 '조세저항’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시민들과 구 모씨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스스로 그 또 다른 예시가 되기를 자진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해 마지않는 '촛불 정신’의 본질도 역시 시민의 저항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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