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 없는 시장경제

이종무 / 2020-06-11 / 조회: 635

아이가 공휴일에 배탈이 나서 난감했던 적이 있다. 집에 안전상비의약품을 갖추고 있다면 그나마 안심하겠지만 그마저도 없다면 큰일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약국은 일정 구역을 당번제로 운영한다. 하지만 아이가 아프다는데 어느 부모가 전국 2만 천여 개의 약국 중 당번 약국을 찾겠는가? 그래서 도입한 제도가 약국 외 판매 안전상비의약품이다. 그런데 막상 편의점에 가보면 필요로 하는 의약품은 없기 마련이다. 편의점에서 판매를 하고 있는 약국 외 판매 안전상비의약품은 14종이었다. 파스가 3종, 감기약이 2종, 소화제가 4종, 두통・해열제가 5종이다. 아이가 필요로 하는 약은 없다. 그러면 아이는 계속 설사를 하거나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다행히 필요한 약을 구했지만 뭔가 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국에서만 필요한 약을 파는 것이 정당한가의 논리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보건복지 정책이 오히려 국민 건강에 역행하고 있다는 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시장 경제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물론 국민의 건강이 우선이냐, 시장 경제 우선이냐의 문제는 해묵은 갈등이다. 아이가 아프고 나서 생각하니 약국의 이익이 우선인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의약품을 독점하겠다는 것으로 밖에는 이해가 안 되었다. 만약 국민 건강이 우선이라면 의약 분업에 따라 의사의 진단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안전상비의약품의 경우 미국의 사례에 비추어 편의점, 마트 등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아이처럼 배가 아파 고생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약을 먹지 못한다면 오히려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기도 하다. 


이를 경제적으로 본다면 독과점에 해당된다. 자유 시장 경제 체제 하에서 국민 안전을 볼모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 경제 체제는 누구든 어떤 것이든 자유롭게 상업이 형성되어야 한다. 의약품도 예외는 아니다. 단지 전문적인 물품의 경우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수용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법을 만들어 판매처, 규모와 방식을 정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약국 외 판매 안전상비의약품을 팔 경우 일정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물론 규정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약국의 진열대에서 의약품을 보관하면 괜찮고, 똑 같은 약을 그 옆집 상점의 진열대에서 보관하면 문제가 되어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 법이라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약국에서는 파리약, 모기약, 바퀴벌레약도 약이라서 팔 수 있다. 마스크도 판매를 한다. 심지어 어린이 영양제라고 해서 과자도 팔 수 있다.


그렇다면 약국에서는 과자를 이름과 성분만 살짝 바꾸어 팔면 시장 경제의 원리에 부합하는 것이고 반대로 일반 상점에서 가정용 상비약을 팔면 위법이라는 것인가? 이는 법을 떠나 국민 건강이라는 원칙에도 위배된다. 약국은 국민 건강을 볼모로 독과점적 지위를 구축하고 시장 경제를 훼손하고 있다. 바나나를 수입하는 업체도 독과점법의 적용을 받고 있다. 컴퓨터나 핸드폰의 운영체제도 독과점법의 예외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배달 시장에서조차 독과점법의 적용을 받는다. 이는 시장경제 체제의 장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독과점의 폐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각종 법과 규제를 만든 것이다.


아이의 배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약이 없어 화장실을 들락날락한다면 어느 부모가 세상을 원망하지 않겠는가? 권력도 독점해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약이라고해서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약사회 유관 연구기관인 의약품정책연구소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최근 1년간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의약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68.9%였다고 밝혔다. 약사회 스스로도 약국에서만 약을 판매하는 것이 국민의 정서에 반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를 내놓고 있다. 영국은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처방약, 약국에서만 살 수 있는 약국약,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는 자유판매약의 세 가지로 나누어 판매를 하고 있다. 시장 경제의 원류라고 말하는 영국에서조차 독과점으로부터 국민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 일본은 2009년에 '등록 판매사' 제도를 도입해 약사가 아니라도 감기약, 해열제, 진통제까지 팔 수 있게 했다.


상비약의 판매는 국민 안전이라는 대원칙에 근거하여야 한다. 그래서 의사가 있고 약사가 있는 것이다. 의약품 판매라는 것 역시 어느 한 집단의 부를 위한 독과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관계자들은 상비약의 불필요한 오남용을 막고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까지는 약국은 약을 독점 판매해 왔다. 시장경제에서는 사실상 독과점인 셈이다. 그 때문에 정작 상비약이 필요한 우리 아이는 독과점의 피해를 본 것이다. 물론 한 면만을 본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제도는 약이라는 특수성만을 폭넓게 인정하고 시장경제라는 측면을 도외시한 면이 많다. 시장경제는 소비자의 선택권이다. 특정 집단의 부의 축적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건강이 보장되어야 한다. 법에 따라 상비약도 판매가 되어야 하겠지만 그 어떤 것도 시장경제에서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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