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길라잡이] 곡물법의 뼈아픈 교훈

최승노 / 2020-03-30 / 조회: 3,942

곡물 수입규제→가격 상승→임금인상 압박→경제 악화

…리카도 "자유무역하면 가격도 내려가"…곡물법 폐지 주장


경제학에서 비교우위란 재화나 서비스를 다른 생산자에 비해 더 적은 기회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남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다는 뜻이다. 비교우위 개념을 처음으로 정립한 사람은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이다. 리카도는 당시 영국의 곡물법을 반대하고, 자유무역을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비교우위론을 들었다.


리카도가 곡물법 반대한 이유


곡물법은 1815년에 영국에서 시행된 법으로, 외국 농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밀에 관세를 부과해 일정 가격 이상으로 거래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곡물법에 따르면 밀 1쿼터(약 12.7㎏)당 80실링 이하인 경우에는 외국산 밀의 수입이 금지됐고 법으로 지정한 금액보다 싸게 수입할 수 없었다. 당연히 영국 국민은 법으로 정해진 가격 이상을 주고서야 겨우 곡물을 살 수 있었다. 즉, 곡물법은 영국 정부가 외국의 값싼 곡물에 맞서 자국 내 곡물가격을 유지하고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겠다며 시행한 법으로, 일종의 보호무역이었다.


곡물법은 보호무역


하지만 곡물법은 제정 이후 영국 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이 진행되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나폴레옹 전쟁(1803∼1815년)으로 곡물 수요가 극도로 높아져 있었다. 그런 와중에 외국산 곡물이 제대로 수입되지 않으니, 영국 내 곡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나폴레옹 전쟁 전에는 밀 1쿼터당 가격이 46실링 수준이었지만 나폴레옹 전쟁 중에는 177실링까지 올랐다. 그러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자 60실링까지 내리기는 했으나 곡물법 시행으로 여전히 전쟁 발발 이전보다는 높은 가격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영국 국민은 지주와 농업 자본가들을 위해 비싼 돈을 주고 빵을 사 먹어야 했고, 곡물법은 이들 지주와 농업 자본가들의 이득을 가장 확실히 챙겨 주는 정치적 수단으로 작용했다.


리카도는 영국 국민 대부분을 착취하고 소수에게만 그 혜택을 몰아주는 곡물법에 몹시 분개했다. 리카도는 곡물법이 자유무역을 통해 싼값에 곡물을 살 권리를 박탈함으로써, 임금 노동자와 임금 노동자를 고용하는 산업자본가들을 동시에 괴롭힌다고 보았다. 밀 가격이 오르면 임금 노동자들은 빵 한 조각을 사기도 부담스러워 했고, 이는 산업자본가에게 노동자의 임금 인상이라는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산업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이윤이 낮아지면서 고용과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고, 곡물법의 인위적인 가격 제한은 영국의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자국 농업 보호?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 실제로는 사회분열을 일으키고 경제발전을 가로막다니, 이야말로 벼룩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따라서 영국 내에서도 리카도를 포함해 곡물법을 반대하고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의회에서는 기득권층의 이익을 위해 번번이 곡물법 폐지를 부결시키고 유지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1845년 이후 아일랜드 대흉작으로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자 결국 곡물법은 폐지되고 말았다. 때는 1846년, 무려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돼야 했던 것이다.


곡물법 폐지 이후 영국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무역을 자유화했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대로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경제 운영 방법이라고 생각한 덕분이다.


시계를 만들어서 밀과 교환해야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비교우위에 관한 재미있는 말을 남겼다. 스위스에서 밀을 가장 저렴하게 생산하는 방법은 ‘시계’를 제조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스위스가 비교우위를 가진 시계를 만들어 밀의 대량 생산국인 캐나다에 수출하는 게 가장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서로 상대적인 우위 즉,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를 통해 자유무역을 하는 일은 모두를 이롭게 할 수 있다.


이처럼 비교우위를 통한 자유거래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시장경제에서는 모든 면에서 약자라고 하더라도, 비교우위를 통해 자연스레 거래를 맺고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시장경제는 비교우위를 통해 강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 기억해주세요


곡물법은 1815년 영국에서 시행된 법으로, 외국 농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밀에 관세를 부과해 일정 가격 이상으로 거래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외국의 값싼 곡물에 맞서 자국 내 곡물가격을 유지하고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겠다며 시행한 법으로, 일종의 보호무역이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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