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열정을 만든다

조정환 / 2019-12-03 / 조회: 1,167

'야, 너무 열심히 하지 마.’


의무경찰로 복무하던 2016년 여름, 울산 지역의 수해 복구 작업에 동원된 적이 있었다. 비가 계속 내리는 와중, 한 식당에 가득 찬 진흙을 후임과 둘이 퍼 내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근처에 있던 공무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으며 시선을 회피했다.


계속 물어보러 다니던 내가 미련해 보였는지, 혹은 안쓰러워 보였는지 머리가 희끗한 한 공무원이 나에게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결국 근처에서 작업 중이던 포크레인 기사님께 부탁해 일을 해결하긴 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열심히 하지 마’라는 조언을 들었기에 그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혐오스러웠다. 어떻게 젊은 청년에게 그런 조언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맡은 지역에 수해가 났는데 어떻게 다들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있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열정적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제대를 하고, 한 공유경제 스타트업의 창업 멤버로 합류해 일을 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일을 하긴 했지만, 밤 9시, 10시까지 사무실에 남아 일을 하며 젊은 열정을 아낌없이 쏟았다. 운이 좋게도,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뤄내 수천만원의 투자금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언제나 열정이 가득한 삶을 살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1년 뒤, 미국 유학을 오게 되었다.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학교에서도 재고 관리 시스템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 정도 지나니, 이상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 중 상당수가 퇴근하기 전 출퇴근 기록기 앞에서 서성거리며 짧게는 삼십 분, 길게는 한 시간 가량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시급으로 수당이 지급되기 때문에, 시간을 더 늘리기 위해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던 것이었다. 공립 대학의 특성 상, 아무도 감독하는 사람도 없고, 근무자 간 고과 경쟁도 없어 그런 풍토가 형성된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나 자신 또한 출퇴근 기록기 앞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던 내 자신이 그런 집단에 편승하는 것을 목도하고 나니, 크나큰 충격이 몰려왔다.


몇 년 전, 그 공무원들의 모습이 나에게 중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무런 경쟁도 일어나지 않고, 성과에 따른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곳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발한 경쟁과 성과에 따른 보상이 있는 시장 경제 체제만이 사람들의 열정을 북돋을 수 있다는 교훈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사실, 역사적으로 봐도 시장 경제가 사람들의 일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혁신을 촉진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해방 후, 북한에 비해 훨씬 부족했던 인프라를 가지고도 우리나라가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의 시장 경제 체제 안에서 이병철, 정주영을 위시한 1세대 창업가들이 기업가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을 보면, 우리의 큰 장점인 시장 경제 체제를 스스로 버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미 차량 공유 서비스가 전 세계로 확대된 와중에 타다를 규제하는 정부의 행태가 가스등을 끝까지 고집하다 전기 산업을 키울 기회를 놓친 19세기 영국 정부를 보는 것 같아 답답할 따름이다.


연암 박지원이 19세기에 청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와 쓴 열하일기에는 조선의 부족한 상업 인프라와 발전되지 않은 시장에 대한 아쉬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10년 후, 20년 후에 또 다른 박지원이 나오기 전에, 시장이 열정을 만든다는 자명한 진리를 이해하고 시장 경제 체제를 더욱 공고히 다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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