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 지원금이 아니라 원비대납이다

김정호 / 2018-10-24 / 조회: 12,268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도둑으로 몰리고 있다. 교육당국은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유치원 돈으로 명품백을 사고 해외여행을 간 것을 업무상 횡령으로 보아왔다. 교비계좌라는 공금을 사적으로 썼으니 횡령이라는 것이다.


사법부는 같은 사건을 무죄로 판결했다. 2012년 울산지법은 모 사립유치원 원장에 대한 2심 판결에서 교비횡령 혐의가 무죄라고 선고했다. 2015년에는 서울서부지검과 북부지검이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교비 횡령 고발 건에 대해 각각 무혐의 처분을 했다. 급식비 명목으로 받은 돈을 다른 용도로 쓴 경우 사기죄가 유죄로 인정되는 경우가 있지만 교비계좌의 일반자금을 사적으로 쓰는 것은 횡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은 교비계좌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검사들과 판사는 교비계좌가 횡령범으로 고발된 사립유치원 원장의 소유라고 봤다. 교비계좌의 돈을 가져다 썼다 하더라도 결국 자기 돈을 가져간 것이니 횡령이라 할 수 없다. 반면 교육당국은 유치원 원장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돈으로 상정을 했다. 구체적으로 누구의 돈이라는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아마도 국가의 돈임을 상정하고 있는 듯하다. 넌센스다. 일단 사립유치원에 지불이 완료된 이상 그것이 국가의 돈이 아니라 사립유치원 소유다. 나는 교육당국이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거라고 본다.


그들도 자기들끼리 횡령이라며 적발한 행위가 법원에 가서 엄밀히 따지면 무죄가 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웬만하면 검찰에 고발하지 않고 ‘언론 플레이’만 하고 만다. 그것을 통해서 사립유치원장들을 망신주고, 자신들은 마치 정의의 사도가 된 듯 행세한다. 이런 것이 현대판 인민재판이다. 무고한 사람들을 인민재판으로 범죄자로 만들고 있으니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바로 교육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 자신이다.


업무상 횡령이라고 적발은 해놓고 막상 형사처벌은 못하는 상황에 그들도 곤혹스러웠던 것 같다. 그래서 횡령이 아닌 것을 법을 바꿔서라도 기어이 횡령으로 만들겠다고 나섰다. 즉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바꾸겠다는 발표가 그것이다.


여기서 지원금이니 보조금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가 사립유치원에 지급하는 돈을 아이교육을 잘 시키라고 주는 정부지원금 또는 보조금이라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려면 <아이행복카드>의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유아교육법 제24조는 ‘무상... 유아교육... 비용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되, 유아의 보호자에게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무상보육에 필요한 비용을 유치원에 직접 주지 않고 아이의 보호자에게 지급하라고 규정한 것이다. 즉 정부는 부모가 부담할 유치원비를 대신 내주겠다는 것이다. 구체적 방식으로 보호자에게 현금을 줄 수도 있고 카드를 줄 수도 있을 텐데 우리 정부는 카드 방식을 택했다. <아이행복카드>는 정부가 학부모가 내야 할 유치원비를 대납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수단이다. 학부모가 유치원에 가서 아이행복카드로 결제를 하면 정해진 월22만원 또는 29만원이 유치원에 지급된다. 이 돈은 사립유치원에 대한 ‘지원금’이 아니다. 비록 최종적으로는 그 돈이 정부에서 사립유치원에 직접 지급되지만 그 거래의 성격은 학부모가 부담할 원비를 정부가 대납하는 것이다.


즉 정부가 아이행복카드를 매개로 사립유치원에게 지급하는 돈은 지원금도 보조금도 아니다. 지원금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학부모에 대한 지원금일 뿐이다. 그래서 사립유치원장이 그 돈을 사적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국가 돈을 횡령한 것이 아니다. 대법원의 판결취지도 필자의 견해를 지지한다. 대법원은 2014년 어린이집의 아이사랑카드 부정결제 사안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보육에 필요한 비용을 교부 받은 자는 어린이집 운영자가 아니라 영유아 보호자이기 때문에, 아이사랑카드(아이행복카드의 초기 이름)로 결제한 금액은 어린이집 보조금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사립유치원장이 학부모로부터 받은 유치원비를 어떻게 쓰든 죄가 될 수 없듯이 정부로부터 대납받은 돈을 사적으로 쓴다고 해서 문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당사자인 사립유치원들 조차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교육당국은 소위 현재의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바꾸겠다는 말들을 흘리고 있다. 보조금이 되면 정부가 돈의 용도를 지정해서 유치원에 직접 지급하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그 때부터 사립유치원들은 자신의 고객의 고객이 아이와 학부모가 아니라 공무원이라고 서서히 인식을 바꾸기 시작할 것이다. 공무원에게 잘 보여야 수입이 생길 테니 말이다. 유아교육법 제24조가 무상보육을 위한 비용을 사립유치원이 아니라 부모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규정한 이유는 학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보조금으로의 전환은 학부모를 사립유치원의 주변인으로 밀어낸다. 사립유치원 원장들을 억지로 형사처벌하기 위해 아이와 학부모들을 주변부로 밀어내는 짓을 하지 않기 바란다. 그것으로 이득을 볼 사람은 공무원 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조금으로 바꾼다고 해서 문제의 근원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법으로 사립유치원 원장들을 재판정에 세워 유죄판결을 받게 만들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유아교육을 좋게 만들 수는 없다. 아마 사립유치원의 폐업만 촉진할 것이다. 전재산을 투자해 놓고 자신의 인건비 외에 한 푼도 가져갈 수 없는 상황을 견뎌낼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나는 투명한 회계는 필요하다고 본다. 학부모의 선택을 돕기 위해서다. 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사립유치원 설립자/원장의 투자에 대하여 적절한 수익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회계를 투명하게 한다고 해서 지출 자체를 통제해서는 안된다. 즉 투명한 수익, 투명한 경영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어떤 유치원이 좋을지는 교육부 공무원이나 시민단체가 아니라 학부모가 판단할 몫이다.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대표, 전 연세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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