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 신화와 현실

도서명 재벌-그 신화와 현실
저 자 공병호, 김정호
페이지수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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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이야기 시리즈 30


상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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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재벌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몇 가지 사실들을 비판하려 한다. 그것들은 단지 신화일 뿐 사실과는 다르다.


신화1: 재벌은 정부 특혜의 산물인가?


역사가 짧은 몇몇 재벌들은 정부의 특혜를 받아서 재벌 특유의 기업형태를 갖추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진입제한이나 수입제한, 또는 산업정책적 지원 등 특혜의 대상은 재벌만은 아니었다. 거의 모든 산업분야가 진입제한의 대상이었고, 거의 모든 것들이 높은 보호관세와 비관세 장벽의 보호를 받았다.


재벌은 다른 기업들과는 달리 수많은 규제를 받았다는 사실도 해외의 전문가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여신규제를 받았고, 은행, 방송, 중소기업 고유업종 등 여러 산업분야로의 진출이 억제되기도 했다. 상호출자나 상호지급보증,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정제도 등에 의한 규제도 있다. 따라서 재벌에 대한 지원과 규제의 화폐가치를 비교해보기 전까지는 재벌이 특혜를 통해서 성장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신화 2: 독과점인가?


재벌 계열사들이 진출해 있는 분야에 있어 경쟁사의 숫자가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해당 산업 내에 기업의 숫자가 적다고 해서 그것이 독과점의 형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는 기업의 숫자가 하나일 경우에도 잠재적 경쟁이 존재한다면 경쟁적인 형태가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


재벌 기업들 간의 경쟁이 치열했다는 사실은 이번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빅딜 이후 기업들이 취하고 있는 가격정책을 보면 알 수 있다. 결합이후 생산량이 줄고 가격이 높아지면 독점력을 위한 결합이며, 가격이 낮아지고 생산량이 늘면 효율증진을 위한 결합이다. 한국의 빅딜은 전자에 속한다. 이것은 역으로 과거의 체계가 경쟁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결과이다.


비록 재벌 계열사들 간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하더라도 시장이 닫혀 있다면 그러한 경쟁을 완전한 경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분야들이 국제경쟁에 노출되었다. 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는 더욱 더 국내 시장에서 기업의 숫자가 몇 개인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신화 3: 문어발식 다각화/비관련 다각화


주력업종과 별로 관련이 없는 분야에 진출함으로써 스스로 경쟁력을 낮출 뿐 아니라,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축소함으로써 경쟁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한국기업의 다각화의 중요한 원인은 신뢰가 부족한 사회적 환경과 높은 거래비용 때문이다. 필자들은 한국에서 계약으로 일을 처리하기가 어려움을 여러번 몸으로 겪었다.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외부인에 대해서 매우 배타적이었던 데다가 산업화 이전 사회의 구성원들이 대개 그렇듯이 돈 계산에 정확하거나 대등한 입장에 있는 사람끼리 약속한 것이 정확히 이행되었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례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조직을 통한 업무성과가 대등한 입장에 있는 계약자들의 계약에 의한 업무성과보다 낫다. 한국에서 다각화된 대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이었다. 은행에 대한 정부규제가 대개의 기업들이 금융업이나 유통업 등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산업에 진출하기를 원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신화 4: 높은 부채비율


재벌은 부채비율이 높다는 비난이 있다. 하지만 높은 부채비율은 주식시장이 제대로 발달되어 있지 않은 경제, 그리고 산업화 초기의 경제에 있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부채비율이 낮은 미국과 영국의 경우 주식시장의 규모가 크고, 주식시장의 규모가 작은 독일 기업들은 부채비율이 높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신화 5: 낮은 수익률과 무모한 투자


실질자기자본비용에 관한 실증분석결과는 한국 재벌의 수익률이 낮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만약 한국 재벌의 수익률이 낮았더라면 그처럼 높은 금융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의 투자가 실패한 경우들이 속출했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사업 실패는 재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 와중에서도 재벌은 가장 안전한 기업조직이었는지도 모른다.


신화 6: 가족지배구조/소유와 경영의 미분리/전횡


30대 재벌의 경우 이미 부도를 겪은 기아를 제외하면 모든 기업들이 지배주주인 창업자나 그들의 2세에 의해 경영되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전문경영인 체제는 지배주주 체제에 비해 더 많은 대리인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적대적 M&A체제가 없다면 똑똑한 전문경영인보다는 무능한 지배주주의 경영이 더 효율적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현재의 재벌체제는 어쩌면 적대적 M&A가 뿌리 내리지 못한 사회적 환경에 대한 적응의 산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결론


기업은 그것이 속한 사회의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해 간다. 글로벌 캐피털리즘이 된다고 해서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이 다 같아져야 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지리적으로 통합되어 나라 안에서도 다양한 소그룹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각 소그룹들은 나름대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다양함이 사회발전의 원동력 역할을 한다. 하물며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있는 다른 나라의 국민 사이에는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차이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그 각각의 사회가 가진 법과 제도, 비공식적 관습, 사고방식 등에 적응해야 하는 기업들의 구체적 형태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재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된다. 재벌이 좋은지 나쁜지는 알 수가 없다. 사전에 좋다 나쁘다를 예단하는 것은 `치명적 자만`일 뿐이다.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정부라는 강압조직으로 하여금 그것의 도산을 막아주거나, 경영권을 보호해 주거나, 규제하는 등의 개입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일 뿐이다. 그 이후에 재벌이 소멸된다면 재벌은 규제와 지원의 산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제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런 형태의 기업조직이 생존한다면 재벌에 대한 우리의 비난은 무모한 일이었다고 스스로 자성해야 할 것이다.